<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36화 백화점 사기꾼, 그 진실을 마주하다

by Wren

성훈이 왔다.
성인 조운이 전화했고, 성훈이 왔다. 재킷을 입고. 손에 파일 하나를 들고.
거실에 앉았다. 성인 조운. 성훈. 열한 살 조운. 세 사람이었다. 하온은 방에 있었다.
성훈이 파일을 탁자 위에 놓았다. 잠깐 멈추었다. 그러고는 열었다. 서류가 있었다. 사진이 있었다. 오래 모은 것들이었다. 37년이 여기 있었다.
남자였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이종창이야."
성훈이 말했다.
열한 살 조운이 그 사진을 오래 보았다. 마장동의 기억이 돌아왔다. 창고였다. 박민철이 있었다. 그 옆에 이 남자가 있었다. 반지를 끼고. 담배를 들고. 열한 살 조운이 그 기억을 눌렀다. 손목이 기억하고 있었다. 화상 자국이. 그 자리에서.
열한 살 조운이 말했다.
"나 그 사람 봤어."
성인 조운이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어디서."
"마장동. 박민철 옆에 서 있었어. 반지 끼고 있었어. 용 새긴 놋쇠 반지."
성훈이 파일을 넘겼다. 사진 하나를 꺼냈다. 열한 살 조운 앞에 놓았다.
"이 반지야?"
열한 살 조운이 그것을 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성훈이 파일을 꺼냈다. 탁자 위에 펼쳤다. 이름이 있었다. 이종창. 세 글자가 서류 곳곳에 있었다. 박민철 옆에. 거래 문서 아래에. 증인 란에. 서명란에. 37년 동안 이 남자가 거기 있었다는 증거가 종이 위에 있었다.
"지금 어디 있어?"
"청량리 쪽. 부동산 사무실 하나 운영하고 있어. 홍파초 근처야."
홍파초. 열한 살 조운이 다니는 학교였다. 열한 살 조운이 멈추었다. 그 학교 앞을 매일 지나갔다. 이종창이 거기 있었다. 37년 동안 거기 있었다.
성인 조운이 서류를 넘겼다. 거래 내역이었다. 1989년부터. 2025년까지. 날짜가 있었다. 금액이 있었다. 이름이 있었다. 박민철이 죽은 해가 있었다. 그다음 해부터 이종창 단독으로 되어 있었다. 혼자 계속했다는 것이 숫자로 보였다.
"만날 수 있어?"
열한 살 조운이 물었다.
성인 조운과 성훈이 동시에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왜."
"봐야 해. 직접."
성인 조운이 성훈을 보았다.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이었다.
청량리였다. 세 사람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성인 조운. 성훈. 열한 살 조운. 2층 건물이었다. 유리창에 글씨가 있었다. 부동산 사무소. 이름이 있었다.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세 사람이 말이 없었다. 성인 조운이 건물을 보았다. 성훈이 파일을 들고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골목을 보고 있었다.
남자가 나왔다.
이종창이었다.
오십 대였다. 정장이었다. 핸드폰을 보면서 걸어왔다. 세 사람 쪽으로.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성인 조운이 성훈을 보았다.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종창이 고개를 들었다.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이종창이 멈추었다. 완전히 멈추었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처럼. 핸드폰을 내렸다.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열한 살 조운이 이종창을 보았다. 1988년의 마장동이었다. 창고 앞이었다. 그 아이가 여기 있었다. 이종창의 얼굴이 굳었다.
이종창의 눈이 좁아졌다. 그 눈이 열한 살 조운에게 멈추었다. 오래. 너무 오래.
피하지 않았다.
열한 살 조운이 그 눈을 보았다. 마장동에서 본 눈이었다. 박민철 옆에서 본 눈이었다. 1988년의 그 눈이었다. 지금 2025년에서도 같은 눈이었다. 37년이 지났는데. 같은 눈이었다.
이종창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성인 조운을 보았다. 성훈을 보았다. 그러고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빠르게.
검은 차가 있었다. 이종창이 그 차에 탔다. 문이 닫혔다. 차가 출발했다.
세 사람이 그 차를 보았다.
37년이 저 차 안에 앉아서 사라지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채로.
열한 살 조운이 그 차를 보았다. 사라질 때까지. 골목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골목이 조용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기에 방금 37년이 앉아있다 사라진 줄 몰랐다.
"기억했어."
열한 살 조운이 말했다.
"응."
"나를."
성인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됐어."
성훈이 파일을 들었다.
"고소장 접수하자."
세 사람이 걸었다. 청량리 거리를. 봄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열한 살 조운이 앞을 보았다. 발밑을 보지 않았다. 똑바로 걸었다. 성인 조운이 그 모습을 보았다. 조금 전보다 걸음이 달랐다. 조금. 하지만 분명히.
37년 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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