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서 온 나의 11살 아빠>

제35화 소년과 어른이 함께 먹은 저녁

by Wren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
성인 조운의 집이었다. 하온 엄마가 차려놓고 이모와 함께 있었다. 식탁에 음식이 있었다. 된장찌개가 있었다. 나물이 있었다. 생선이 있었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집밥이었다.
세 사람이 앉았다. 성인 조운. 열한 살 조운. 하온.
엄마가 부엌에서 국을 더 가져왔다.
"많이 먹어."
열한 살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저를 들었다. 먹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성인 조운도 먹었다. 하온도 먹었다. 숟가락 소리만 들렸다.
식탁이 조용했다. 된장찌개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1988년의 제기동에서도 이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건강하던 시절에. 이 냄새가 나면 저녁이었다. 밥 먹을 시간이었다. 그 냄새가 여기 있었다. 37년이 지나도 같은 냄새였다.
1988년에도 이런 저녁이 있었다. 아버지가 아프기 전에는. 가족이 같이 앉아서 먹는 저녁이. 말이 없어도 조용하지 않은 저녁이. 그 저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밥 먹는 소리. 형이 수저 내려놓는 소리. 엄마가 국 떠주는 소리. 그 소리들이 다 거기 있었다. 지금도 기억했다. 사라지지 않고.
열한 살 조운이 국을 마셨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가슴 안쪽으로 내려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바람 때문이었다.
"맛있어?"
"응."
"더 먹을 거야?"
"응."
엄마가 밥을 더 떠주었다. 열한 살 조운이 그것을 받았다. 받으면서 엄마의 손을 보았다. 2025년의 엄마였다. 지금 제기동에 있는 엄마보다 손이 컸다. 더 많은 것들을 들었을 것이었다. 37년어치의 것들을. 밥솥도. 국 냄비도. 무거운 것들도.
열한 살 조운은 밥을 먹었다. 다 먹었다.
열한 살 조운이 숟가락을 놓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이 냄새를. 이 온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1988년으로 돌아가서도. 이 저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성인 조운이 그 모습을 보았다. 눈을 감은 열한 살 조운을. 이 아이가 이 저녁을 기억할 것이었다. 오래. 1988년의 골목에서. 아버지 병실에서. 이 저녁이 있었다는 것을.
아직 만들지 않은 것들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열한 살 조운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이었다. 손목 안쪽에 화상 자국이 있었다. 박민철의 담뱃불이었다. 그 자국이 37년 뒤에도 남아 있을 것이었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별처럼.
성인 조운의 손목에도 있었다. 같은 자리에.
열한 살 조운이 그 자국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렸다. 그러고는 차를 마셨다.
열한 살 조운이 말했다.
"이 집 내가 산 거야?"
성인 조운이 말했다.
"응."
"이 동네. 제기동에서 멀어?"
"멀지 않아. 개운산 너머야."
열한 살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창밖을 보았다.
하온이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열한 살 조운이 식탁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됐다. 하온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그릇 쪽으로. 그러고는 정리를 시작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성인 조운이 차를 끓였다. 하온이 그릇을 정리했다. 열한 살 조운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창밖이 어두웠다. 서울의 밤이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있어. 근데 잘 안 보이는 거야. 조수현 누나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성인 조운이 차를 가져왔다. 앞에 놓았다. 열한 살 조운이 그 잔을 보았다.
"고마워."
성인 조운이 멈추었다.
"여기 데려와줘서. 제주도도 가고. 롯데월드도 가고."
성인 조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봤어. 형도 봤어. 누나도 봤어."
열한 살 조운이 잠깐 멈추었다.
"아버지가 살아있었어."
그 말이었다.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하고 나서 입을 닫았다. 눈이 약간 흔들렸다. 참았다.
성인 조운이 의자에 앉았다. 열한 살 조운을 보았다.
"나도 고마워."
열한 살 조운이 올려다보았다.
"뭐가."
"네가 여기 있어줘서."
열한 살 조운이 그 말을 들었다. 오래 들었다.
세 사람이 차를 마셨다. 아무 말도 없었다. 그냥 마셨다. 차가 따뜻했다.
한참이 지났다.
열한 살 조운이 창밖을 보았다.
"나 언제 돌아가야 해?"
하온이 멈추었다. 성인 조운이 멈추었다. 몰랐다. 둘 다 몰랐다.
"아직은 아니지?"
"아직은 아니야."
열한 살 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차를 마셨다.
아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밤도. 이 식탁도. 이 온기도. 지나간다. 그래서 남는 것과 남기지 못한 것이 나뉜다.
성인 조운이 창밖을 보았다. 개운산이 어두웠다. 저 산 너머에 37년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37년이.
성인 조운이 차를 내려놓았다.
"있잖아."
열한 살 조운이 올려다보았다.
"우리 한 가지만 더 하고 돌아가자."
열한 살 조운이 기다렸다.
"이종창."
잠깐 멈추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열한 살 조운이 그 이름을 들었다. 이종창. 마장동. 박민철 옆에서 반지를 끼고 있던 그 남자가.
지금도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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