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캔, 새벽을 깨우다.
어젯밤, AI로 시각화한 '성공의 이미지'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브런치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나, 옷장에 가득 걸린 캐시미어 니트,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일상. 그 장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내 미래를 미리 본 듯한 기분으로.
하지만 새벽 2시. 갱년기 발열로 첫 번째 잠에서 깼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4시에 또 한 번, 4시 반에 또 한 번. 세 번째 깨고 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물을 마시다가, 무심코 유튜브를 켰다.
어제와 비슷한 영상들. 긍정 확언,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의 힘. 재생 목록을 쭉 내리다 보니 벌써 여섯 시였다. 한 시간 반을 허공에 달려 보낸 기분이 들었다. 그때, 침대 옆 테이블 위의 몬스터 캔이 눈에 들어왔다.
그 검은 글씨가 눈을 찔렀다.
"일어나라 나아가 도전하라."
평범한 세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 그 말이 비웃는 것 같았다. '도전? 너는 새벽에 땀 흘리며 유튜브나 보고 있잖아.'
대충 세수를 하고, 짜증 반 자포자기 반으로 밖으로 나섰다. 산책이라도 해야 잠이 올까 싶어서.
젖은 낙엽 위에서
덕동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다. 어젯밤 내린 비로 공기는 촉촉했고, 흙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운동화 밑창으로 전해지는 젖은 낙엽의 감촉. 이파리에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처음 10분은 그냥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데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본 시각화 영상 속 나는 이미 성공해 있었다. 여유롭게 웃고, 깔끔한 옷을 입고, 모든 게 정돈된 사람.
그런데 지금 이 산을 오르는 나는 헐떡이고, 땀 흘리고, 발목도 좀 시큰거렸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상상만으로 이루어진다면, 나는 벌써 성공했어야 한다. 작년에도 비슷한 영상들을 봤으니까. 그런데 변한 게 뭐가 있나.
오히려 지금, 이 젖은 낙엽을 밟으며 오르는 이 순간이 더 진짜 같았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아프고, 그래도 한 발 한 발 올라가는 것. 이 불완전하고 투박한 움직임. 이게 변화라면 변화일까? 잘 모르겠다.
정상 근처에서 잠깐 쉬면서 생각했다. '시각화는 방향을 알려주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화면 속 이미지일 뿐'이라는 멋진 문장이 떠올랐다. 브런치에 쓰면 좋겠다 싶었는데, 동시에 '이것도 결국 클리셰 아닌가'싶기도 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이 산책이 다음 주 화요일에도 이어질까 하는 거다.
상상과 행동 사이의 불확실성
산에서 내려오면서 작게 다짐했다. 매주 화요일아침, 덕동산을 오르자. 다음 달엔 도자기 공예 수업을 등록하자. 유튜브 시각화 영상은 가끔 하나만, 그것도 아침에만 보자.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런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작년 봄에도 비슷한 비슷한 계획을 세웠다. 요가 수업 등록하고, 아침마다 스트레칭하고, 한 달 갔나. 그래도 오늘은 했다. 그게 중요한 건가? 아니면 '지속'이 중요한 건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게 기분 좋았다. 냉장고에서 두유를 꺼내 마시면서 달력을 봤다. 화요일 칸에 볼펜으로 작게 적었다.
"덕동산?"
물음표를 붙였다. 확신이 없어서. 그냥 솔직하게. 끌어당김의 법칙이 진짜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 아침, 몬스터 캔 문구에 자극받아 나간 그 산책은 진짜였다. 완벽한 동기도 아니고, 거창한 결심도 아니었다. 그냥 짜증이 나서, 잠이 안 와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나간 것뿐.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완전한 출발이, 어제 본 완벽한 시각화 영상들보다 더 내 것 같았다.
몬스터 캔이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여전히 놓여 있었다. "일어나 나아가 도전하라." 그 문구가 더 이상 비웃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은 했다. 캔 하나가 준 작은 자극으로, 새벽의 젖은 산길을 올랐다.
그게 변화의 시작일까, 아니면 그냥 오늘 하루의 일탈일까.
다음 주 화요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
지금은 몰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