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쿄고쿠 토모히코 京極朋彦 (일본)
무대 위에서 떠드는 무용수가 있다. 그가 하는 말을 관객들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다. 이것을 일본어로 '데타라메'(デタラメ)라 한다. 엉터리로 떠들고,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화되지 않은 그의 말은 그의 몸짓을 보는 순간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음역대가 높은 그의 음성은 뜨거운 숨과 함께 관객에게 대화를 건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라 온몸으로 '말을 거는' 행위이다. 쿄고쿠 토모히코가 학부생 시절부터 완성시킨 <카이로>는 2010년 초연을 통해 5개 국가 11도시에서 상연되었다. 그는 2018년부터 도쿄를 떠나 효코현의 산속 깊은 곳에 거주하면서 어린이부터 고령자에 이르는 지역주민 커뮤니티와 댄스 교실∙워크샵 작품을 만들고 있다. 오늘, 그의 세계를 만나보시길.
안무가 쿄고쿠 토모히코라고 합니다. 주로 무대를 중심으로 댄서와 연출가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을 딴 쿄고쿠 워크스(京極WORKS)라는 이름의 단체를 이끌며, 그때그때마다 출연자를 모집하면서 프로젝트마다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거점을 깊은 산속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일은 이전보다 적어졌지만, 효코현(兵庫県)내의 유치원이나 고등학교, 혹은 고령자의 건강복지를 위한 워크샵을 하거나, 최근에는 댄스 이외의 현장에서 댄스를 활용한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댄서와 뮤지션의 콜라보 야외극, 거리에서 관객이 걸어다니면서 감상하는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만듭니다. 테마는 매번 바뀌고, 그때의 흥미에 따라서 작품도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고 조용한 아이었습니다.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스스로 발화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마치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통해 세상을 관조하는 감각이었어요. 저는 큰 극장의 객석 한가운데에 앉아 있고, 세계는 스크린 속에서 흘러가는데, 저 자신은 거기에 참가하지 못한 채로 바라볼 뿐인 그런 감각. 하지만, 맨처음 연극과 만나서 제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버린 순간에,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바라보고만 있던 세상 속에 참가할 수 있다는 감각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든가 삶의 괴로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댄스나 무대를 통해 제가 경험한 것을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극과 전혀 관련이 없지만, 원래는 초∙중∙고등학교까지 농구를 했습니다. 연극이나 댄스를 접할 기회는 매우 적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매우 독특해서, 매년마다 모든 클래스가 참가하여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드는 연극제를 열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처음으로 배우를 맡아서 무대에 섰는데, 왠지 제가 하던 농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각각의 포지션이 정해져 있고, 그룹의 성과를 위해서 함께 하나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에요. 거기에다, 관객이 무대를 보러오고, 플레이어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시합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갑자기 배우가 되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요. 입시를 생각하던 중에, 쿄토조형예술대학(현 쿄토예술대학)의 영상과 무대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영상무대예술학과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무사히 그곳으로 진학해서 연극∙영화를 공부하게 되었지요.
저도 처음에는 댄스를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니, 하나의 전공을 집요하게 파헤치기 보다는 예술 전반을 배울 수 있게 권장하는 학부더군요. 촬영이나 영상편집부터 시작해서 음향, 조명, 무대미술까지 두루두루 학점을 따야했어요. 그중에 무용 수업도 있었고요. 발레나 재즈댄스 등의 각이 잡힌 무용장르가 아니라 즉흥댄스에 가까운 수업이었는데, 스텝을 외우거나 갖춘 형태를 만들기 보다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법을 배웠어요.
연극보다 댄스가 감상(鑑賞) 면에서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극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대사와 연출이 있어서, 그게 끝날 때까지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요. 특히 일본어는 문법적으로 한국어와 비슷하게 마지막까지 들어보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게 단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일지라도요. 관객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나, 대사를 듣고 기다리는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댄스의 경우에는 순간적으로 엄청난 정보량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동작도 음악과 연출의 조화로 다양한 의미 전달이 가능하지요.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댄스에 빠져버렸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늦게 댄스를 시작하다보니, 기술이나 몸에 축적된 경험 면에서 적수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무언가 임팩트를 남길 만한 것을 찾던 와중에, '목소리'를 댄스의 하나의 요소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형태를 띈 작품이 바로 <카이로>입니다. '데타라메'(デタラメ: 엉터리로 말함, 또는 그런 방식)로 말하는 것인데, 사실은 저의 어린시절과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에요. 제가 세상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나의 생각을 말로 하거나 의견을 말하는 것이, 때로는 틀린 것을 말해버리거나 다른 사람을 상처를 주거나 반대로 내가 바보 취급을 받거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때문에 발화하는 것에의 공포감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엉터리'로 말해버린다면, 그건 엉터리니까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도 없고, 오히려 평범하게 말하는 것보다도 나의 진심을 직접적인 언어가 아닌 형태로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디어(!) 한국무용을 시작했습니다. 쿄토에 한국무용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한 달에 한 번씩 한량무의 안무를 배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와서 배울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세요. 원래부터 한국무용에 흥미가 있어서 리서치를 시작했는데, 직접 몸을 움직여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재미있더라고요. 아직 잘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음악과의 관계성이라든가 삼박자 리듬, 특히 "장단"이라는 독특한 리듬이 있어서 그것에 따라 움직임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 또, 호흡의 종류가 여러가지라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한량무를 보러 갔을 때가 기억나는데, '대체 저 몸은 어떻게 되어 있는거지?'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마치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바깥 쪽은 상당히 부드러우나 안쪽은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걸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되니 더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십대 때는 말하자면 무용계의 유명한 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업계에서 인정하는 정점을 찍는 것이 목표였는데요. 물론 지금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있어요. 하지만 일단 거점을 효고 현으로 이주를 한 뒤로는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물리적으로 도쿄의 댄스신과 많이 멀어진 것도 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극장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이곳에 오니까 다른 풍경이 있더군요. 살면서 한 번도 극장에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나 고령자들은 제가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예전엔 하나의 '정상'(頂点)만이 있다고, 그게 전부일 거라고 믿어왔던 게 뒤바뀌어서, 그게 유일한 길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각각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장애인사회복지를 하고 있는 단체와 광고대리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아웃사이더 아트 전람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분들과 함께 신체 워크샵을 가졌는데, 바닥에 커다란 천을 한 장 깔고 그 위에서 색칠놀이를 하거나 구르거나 찢거나 천을 주름지게 해서, 그 디자인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댄스를 통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라는 기회를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일본 문화청의 신진예술가해외파견사업의 예술 연수생으로 발탁되어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해외의 댄서들과 만나 작업을 했는데, 서로 언어소통은 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일본에서 작업을 하는 것보다도 한결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마도 그건 제가 모국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언어의 문제, 이미 언급한 하나의 '정점'을 목표로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해외에서는 작용되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독일인 2명과 폴란드인 1명, 오스트리아인 1명 그리고 제가 참여한 '언어'에 관련된 <Talking about it>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일본에서는 늘 콤페티션(대회)을 의식해야 해서, 20분 이내라는 제약이 있어요. 제도에 묶여버리는 거죠. 그런데 해외에서는 대강의 틀만 있고 그 안에서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언어'에 속박되지 않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기에 지금까지도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무언가의 역할이 주어져서, 세계에 참가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는, 저 자신이 댄스에 의해 굉장히 살기 편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추상적인 것을, 형태가 없기 때문에야말로, 전혀 다른 것을 연결시키거나, 보통은 쉽게 지나치거나 들리지 않는 것이 보이거나, 들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바이러스와 아트라는 것은 사람의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점에서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에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 상상력을 날려버리거나, 모두로부터 공감을 얻는 등의 역할을 담당해왔던 예술이, 지금 코로나 상황으로 전세계 모두가 공통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되거나,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말이에요. '실체가 없어서 잘 알 수 없는 것'이 지금까지는 예술의 약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의해 그러한 인식도 변해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SF영화나 프랑스의 실험영화 같은 영상을 좋아해서 종종 보곤 하는데, 그건 아마도, 지금 있는 장소에서부터 다른 장소로 저를 데려가주는 감각 때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대체로 그러한 느낌이 있는 부류입니다. 스킬이나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세계관을 갖고 있어서, 그대로 몰입해버리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갖고 있어요. 무용계에서 말하자면, 이토 키무 씨(伊東キム). 보이는 풍채에서부터 픽션 같은 느낌이 나는데 (웃음) 현실과의 비교조차 될 수 없어요. 저의 선생님이신 야마다 세츠코 씨(山田せつ子)도,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관객을 무대 위의 세계로 데려가 주는 듯한, 순간적으로 현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장치를 갖고 있는 분이세요. 또, 한량무도 저에게 있어선 무용수가 체중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에 SF적이네요.
혹시 형태적 측면에서 무대예술의 온라인 발신이 다시 오프라인 무대로 돌아가거나, 무대영상이 새롭게 진화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은, 아마도 사람들의 인식은 지금의 시대를 거쳐서 상당히 변화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극장까지 직접 찾아오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영상과 스크린 저편에서는 파악할 수 없게 되는 불편함도 있지만, 물론 다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평소에 무대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사람이 온라인 발신을 통해 새롭게 무대를 볼 가능성도 있어서,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활동이 만들어져서, 많은 사람과의 만남의 가능성이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작년 4월 즈음부터 '자숙'(自粛)이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불리기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극장에 가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영상 발신 워크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ZOOM 등의 영상회의 어플을 통해서 "온타임"으로 댄스의 워크샵을 하게 되면, 기술적 문제로 영상이나 음성에 아주 작은 갭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비디어 레터' 같은 형식으로, 제가 사전에 촬영한 영상을 매주 발신하는 기획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강자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영상을 볼 수 있고, 또 잘 모르는 부분은 몇 번이라도 다시 돌려볼 수 있는 점이 장점이라 생각했어요. 물론 실제로 만나서 워크샵을 하는 것이 더 현장감이 있고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러 단점도 있고요. 오프라인 이외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ZOOM이나 영상통화가 기본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지만, 반대로 좀더 아날로그적인 방식의 '편지'를 교환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습니다. 편지를 쓸 때는, 상상력이 동원되는데, 예를들어 상대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죠. 예를들어 어떤 봉투에 편지를 넣을까, 어떤 문장을 써서, 어떻게 나의 감정을 전달할까 등, 온전히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지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그만큼 상상하는 시간도 늘어나는 것. 그래서 이번에 사이노쿠니 토요하시 예술극장(彩の国さいたま芸術劇場) PLAT 댄스레지던시 2020의 성과발표 중에서,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일본과 한국의 두 여성 댄서가 영상으로 편지를 교환하는 크리에이션을 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국제공동제작에도 사용될 수 있을 거고, 일본인끼리도 한국인끼리도 편지롤 주고받는 행위의 예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괴로움이 많았어요. 방법론으로서의 어떤 예술을 배우면, 하나의 방식을 고집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저의 경우는 그런 것이 전혀 없어서 제 안에서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왔습니다. 10년 넘게 춤을 췄는데, 이제 겨우 자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방법을 즐거워하는지 '언어'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이 시작지점일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누구나 결국 "어라,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그걸 점점 해나가는 사이에, "아!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거죠. 실은, 그것이 가장 자신이 바라고 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기에 겨우 다다르기까지 지금까지 어떻게 해왔는지를 되돌아보면, 또다른 방법이 제 스스로의 안에서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시골에서의 생활은 자신에게 있어 안정적이고, 여기에 거점을 두면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특히, 댄스작품 창작을 통해,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데에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어_에디터 김희진
쿄고쿠 토모히코 댄스기획(京極WORKS) 대표. 2007년, 쿄토조형예술대학 영상∙무대예술학과 무대예술코스 졸업작품이 학장상을 수상. 졸업후 국내외 다양한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 솔로댄스 <카이로>(カイロー)를 2010년 초연부터 5개 국가 11도시에서 상연. 2012년부터 댄스 쇼케이스 <KYOTO DANCE CREATION>을 쿄토 아틀리에 극연의 공동주최사업으로서 3년간 프로듀스.
2020 사이노쿠니 토요하시 예술극장 PLAT <댄스 레지던스2020> 레지던스 아티스트
2019 서울 댄스 센터 레지던시 아티스트 선발, 현지 리서치 및 발표
2019 도쿄예술제 기획 프로그램 APAF(아시아 무대예술 인재 육성) Exhibition <ASIA/N/EES/ES> 공동연출
2017 쿄토예술센터X서울무용센터 Artist-in-Residence Program 안무가 선출
2017 효고현(兵庫県) 이주
2016 멕시코 시티 퍼스트 인터내셔널 컨템포러리 댄스 페스티벌 초청
2015 문화청 신진예술가 해외파견사업 연수원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수
2015 오스트리아 빈 댄스페서티벌 Fifoo Program 레지던스 아티스트 초청 등
참조_https://heejinkim.link/tomohiko-kyogo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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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원문은 공식 홈페이지(https://linktheart.com/100-tomohiko-kyogoku/)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