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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상 Jul 25. 2023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행진

들국화 - 행진




 



MBTI 로 보면 나는 전형적인 J형 인간이다. 머릿 속으로 오늘 뭘 할지 생각해보고 할 일 들을 하나씩 리스트에 적는다. 갑자기 주간, 월간 단위의 계획까지 세우고 뿌듯해 한다. 일의 실행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계획을 세우는 행동 자체와 그걸 하는 나 자신이 좋을 뿐이다.



열심히 세운 것에 비해 계획은 쉽게 수정된다. 매일 진심을 담은 글 한편 쓰고 싶 것 뿐이었는데 갑자기 장이 아프거나 지하철이 고장나고 날씨가 맘에 들지 않는다. 커뮤니티의 잡다한 글이나 숏폼 영상에 시간을 쉬이 써버린다.


사소하고 하찮은 변수이지만 그건 좋은 핑계가 되어 일을 그르친다. 마치 평행인 두 선이 약간만 경로가 수정되어도 영원히 만날 수 없는것 처럼 말이다. 머릿 속으로는 해야 할 것들이 한가득 생각하나 몸은 소파에 처박혀 늘어진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그 계획이 완벽하게 수행되길 원해서 아예 시도 조차 하지 않는다. 내 통제 아래에서 모든 일이 진행 되었으면 해서 작은 실패도 용납 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그렇게 될까봐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시작은 항상 창대하나 시간과 노력을 더해야 하는 단계에서 나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만들어 할 일을 미루고 문제에서 벗어나려 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그게 딱 나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나는 나에 대해 적잖히 실망하고 몇번이고 좌절한다.



들국화의 곡 '행진'은 그저 행진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외친다. 그것도 27번 씩이나. 근데 그것이 자기 확신에 꽤나 도움이 된다. 희망차고 조금은 비장한 전주가 끝나면 그의 과거가 어두웠으며 미래도 밝을 수만은 없고 역시 힘이 들 것임을 말한다. 하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어 소리칠 수록, 인정할 수록 그가 발을 더 힘차게 내딛게 하는 연료가 되는 것 같다.


두둥두둥 진격하듯 두드리는 드럼, 선동적인 신디사이저와 기타솔로, 거칠지만 뜨거운 보컬의 목소리에 맞춰 조금씩 전진한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리며 그저 몸을 움직여 '행진' 하는 것이다.



여전히 폰을 보고 시간을 써버리던 나는 이 곡을 들으며 깨달았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한다. 이것이 싫고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냥 몸을 움직여서 해내야한다. 작심삼일이 망하면 3일마다 계획을 다시 세우라고 누가 말했다. 내가 계획을 세우기 좋아하니 그 좋아하는걸 멈추지 말고 하면 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인정하니 외려 편한 마음이 든다. 계획과 실패를 반복하되 이걸 두려워 하지 않고 계속 행진 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행진을 내 스스로 응원해본다.





- LP 앨범명  : 들국화 1집 행진

- 발매년도 : 1985 /  구매년도 : 2018

- 구매처 : 온라인 샵

- 구매 가격 : 36,100원

- 포스팅 추천곡 : 들국화 -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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