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던 엔씨소프트의 결말이 보인다.
올해 초 100만 원을 넘겼던 엔씨소프트의 최근 주가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현재 장중 60만 원이 붕괴될 정도로 주가가 하락해 있는 상태인데요. 문제는 이 엔씨소프트의 주가 하락이 일시적 하락이 아니라 기업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오늘은 리니지, 블래이드앤소울 등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내던 엔씨소프트가 최근 흔들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엔씨소프트의 주요 게임인 리니지하면 어떤 게 가장 떠오르시나요? 전국의 수많은 ‘린저씨’들을 탄생시킨 대한민국 1세대 온라인 게임, 이후에 등장한 한국의 MMORPG 장르의 게임들에게 영향을 준 대단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9년 등장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엔씨를 먹여 살리는 게임인데요? 그러나 최근 악명과도 같던 엔씨소프트의 과금 시스템 그중에서도 가챠 확률 시스템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결국 올해 있던 여러 역풍들에 맞아 폭발해버렸습니다.
시작은 8월 26일 엔씨소프트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았었던 블레이드앤소울2가 리니지의 악독한 과금 방식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으로 ‘이름만 바꾼 리니지 아니냐’라고 하는 소비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면서인데요.
올해 국내 게임 시장을 뒤바꿔 놓았던 넷마블, NC, 넥슨 3N 사를 향한 확률형 아이템 조작 논란에 이은 트럭 시위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사전 예약자 700만 명을 기록했던 블소2가 논란이 있었던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이 ‘이번에는 다를 거다.’라는 기대감에 차있었던 게이머들 돌아서게 만든 것이죠.
이러한 소비자의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인한 영향 때문인지, 주가 차트에서 볼 수 있듯이 블래이드앤소울2를 출시했던 26일 기준으로 무려 15%의 급락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급락은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락 중인 상황입니다.
넥슨, 넷마블에 이어 대한민국 게임 3사의 구성원으로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엔씨소프트를 벼랑까지 내밀게 된 확률형 아이템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들 어렸을 때 문방구 앞에서 캡슐 뽑기를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동전을 넣고 레버를 한 바퀴 돌리면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봤던 추억, 이제는 대한민국의 어떤 게임에서나 통용되는 시스템인데요. 이를 전문 용어로 가챠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가챠 시스템의 ‘가챠’라고 하는 용어는 일본의 캡슐 토이 자동판매기인 가샤폰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 가챠 시스템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상품 자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뽑을 기회를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두 번, 세 번 끊임없이 레버를 돌려야 할 수 없는 실정이죠.
문제는 이 엔씨소프트의 가챠 시스템이 단순 캡슐 뽑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확률에 확률을 더한 시스템으로 단일 아이템을 구매하는 확률에 끝나지 않고 아이템별 조합을 통해 강화하는 확률까지 진화된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이 도입되었다는 건데요.
게임을 잘하지 않은 사람들에 한해서는 이 시스템이 무슨 말인지, 또 무슨 이유로 해서 악독한 시스템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보다 더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확률에 확률을 더한 시스템? 쉽게 예를 들자면 어릴 적에 하곤 했던 빙고판을 생각해 보시면 되는데요. 숫자를 지워나가며 줄을 완성시키는 빙고 게임은 ‘누가 더 많이 줄을 만들었냐’에 대한 기준으로 승리가 좌우됩니다.
이 말은 상대방이 숫자를 더 많이 지워나갔다고 해도 줄을 완성시키지 못했다면 게임이 진다는 뜻인데요. 게임의 세계에서는 줄을 완성시켜야만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바뀝니다.
위에 사진은 한 번의 뽑기를 누르면 하나의 숫자가 체크되는 컴플리트 가챠의 대표적인 예시인데요. 이처럼 한 번의 뽑기만으로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 없고 한 줄의 빙고판을 완성시켜야만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그마저도 랜덤인 경우가 수두룩)
잠깐 생각만 해도 극악의 확률을 가진 컴플리트 가챠, 수치로 따져보면 얼마나 희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빙고판 시스템 컴플리트 가챠의 경우, 5x5 25개의 확률 아이템을 모두 얻어야 희귀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평균 96번의 아이템 뽑기를 해야만 그토록 원하는 희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디다. 이 수치는 경우의 수를 50개로 올린다면 255번, 100개로 올린다면 519번으로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죠
물론 이 수치는 평균적인 경우입니다. 만약 뽑기 아이템의 확률 모두 다 동일하지 않다면, 그 확률 자체는 훨씬 더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가챠 시스템은 아이템 등급마다 차등적으로 확률이 분포됩니다.
가챠 확률이라고 하죠? 뽑기를 하면 ‘몇%의 확률로 아이템이 나온다.’
지난번에 국내 게임 업계를 발칵 뒤엎었던 확률 조작 논란 사건은 이 확률에 대한 공지가 게이머들에게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화선이 된 것인데요. 더 좋은 아이템이 더 적게 나오는 일은 경험적으로 당연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확률을 공개하고 나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확률 표에 적혀있는 바에 따르면,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던 옵션 세트가 아예 확률 상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나타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해당 콘텐츠가 출시되고 약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이 로또에는 1등이 없다는 공지한 것과 같았죠.
이처럼 모두가 원하는 아이템은 뽑을 확률이 매우 희박하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국내의 거의 모든 게임 업계 매우 당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의 확률 예시 표를 보시면 이 사실을 더욱더 공공연하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사진은 국내 유명 모바일 게임 세븐나이츠 2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 표인데요. 전설 아이템의 획득 확률은 0.0733%, 그리고 최종 등급 전설+의 획득 확률은 0.0100%으로 극악의 확률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엔씨소프트는 확률형 아이템 판매로 이어지는 수익을 바탕으로 큰 성장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아예 분기 실적 발표 자료를 공개할 때에 아이템 매출 내역은 아예 감춰놓고 매출 공시를 했었는데요.
최근 엔씨소프트의 분기별 전체 영업 이익이 감소된 부분들로 미루어 봤을 때 최근 논란으로 인해 엔씨소프트의 아이템 매출이 함께 감소 중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논란이 지금보다 거세지 않던 작년 초만 해도 분기 영업 이익이 2000억 원을 훌쩍 넘던 부분들이 올해 1분기 때에는 급격히 하락하였고 2분기 때는 일정 부분 어느 정도 회복하긴 했지만 3, 4분기의 전망은 그리 밝지는 않은 추세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JP모간이나 맥쿼리, 씨티 같은 외국계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 엔씨소프트 목표 주가도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감 때문인지 엔씨소프트는 부랴부랴 ‘신작 블소2에 대한 보상체계를 개선해 나가겠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세간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견해가 팽배하며 이는 엔씨의 주가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 수 있죠.
흔히들 가챠는 콘텐츠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입장 차이에 있어서 일상에 부담 가지 않는 선에서의 지출은 어느 정도 게임을 즐기는 행위라고 볼 수 있겠지만, 국내 게임 업계에서 출시하는 캐시 패키지를 볼 때 이미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라고 보입니다.
게임의 재미는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어느새 돈놀이가 되어버린 가챠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베이스에 깔려있는 국내 MMORPG의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생각되죠.
특히나 국내 게임 업계가 최근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콘솔 게임의 정액 아이템 시스템과도 매우 대조적인 상황이라는 게 더욱 의아함을 자아내죠. 대부분의 콘솔 게임의 경우 게임 타이틀만 구매하면 추가 과금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만약 아이템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액으로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는 여느 국내 게임들처럼 돈과 더불어 필요한 운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원하는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걸 뜻합니다.
8월 26일, 엔씨소프트의 급락하던 날 재밌는 현상이 일어났는데요. 반대로 주가가 급상승한 기업이 있었습니다. 그 기업은 바로 펄어비스였는데요.
엔씨가 블래이드 앤 소울 2를 출시하던 날 펄어비스는 신작 게임 도깨비의 플레이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도깨비는 남녀노소 할 거 없이 협동 플레이를 하는 방식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현한 어드밴스 게임인데요.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에 엔씨소프트 논란이 확증되자 도리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죠.
도깨비는 아직 과금 구조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는 없으나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에 절여져 있던 국내 게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게임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에 게이머들이 환호했고 이는 주가에서도 반영 중입니다.
지금 이러한 양상으로 보았을 때 현재 국내 게임 게이머는 기존 리니지의 과금 방식을 가지는 게임보다 과금 걱정 없는 게임, 그러니까 게임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진짜 게임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죠.
이번 엔씨소프트의 주가 급락은 향후 국내 게임사에 적지 않은 파장을 줄 것으로 보여집니다. 심지어 세계적인 흐름도 가챠 시스템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이고 있는데요.
최근 가챠 시스템의 원조하고 볼 수 있는 일본 내에서도 사행성이 높다는 이유로 게임 내 가챠 시스템을 금지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또 국내에서도 이런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는 법안이 올해 국회에서 입법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리니지의 성공 이후 너도 나도 따라서 아류작을 만들어냈던 게임회사들은 점차 시장에서 게임 유저들의 외면을 받고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소비자를 이길 수 없는 회사는 없다’고 합니다.
게임을 소비하는 게이머들이 먼저 앞다투어 가챠보다 게임성을 우선으로 둔 게임을 선호하고 즐긴다면, 업계에서도 자연스럽게 착한 게임들을 출시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가 다시금 게임 강국에 한 발짝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