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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정 May 05. 2024

보배 같은 친구의 여행계획

여행처럼 영원히 움직이는 동사가 있다면 그것은 우정이 아닐까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친구들과의 여행을 좋아한다. 그리고 바다보다는 산을 더 좋아한다.

그렇지만 여행 계획? 나는 절대로 계획 같은 거 세우지 않는다. 일정이 잡히면 사무실에 연차 신청만 하면 된다. 기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도 친구가 알아서 한다. 여우회(여고생들의 모임이라는 뜻) 단톡방에 여행 날짜와 장소에 대한 안건이 올라오면 시간이 되는 친구들은 함께 하면 된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100% 참석 확정인 모임이다.


여행사 친구냐고 물어볼 수 도 있다. 아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성격 인지라 시간만 생기면 여행 계획을 세운다. 1년에 한 번씩 겨울 방학에 해외여행을 계획한 것도 그 친구다.  <한나라 돌아보기>라는 주제로 우리들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

동유럽, 포르투갈, 터키, 몽골, 인도, 남 프랑스를 다녀왔고 2025년 1월에는 이탈리아 소도시가 예약되어 있다. 환갑에는 산티아고 여행 일정이 잡혀 있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시간 내서 여행 다녀오고, 또 열심히 일하고, 건강만 지키면 된다. 친구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아프면 안 데리고 다닐 거니까 아프지 마라! 건강은 각자 알아서 챙기자 잉!"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함께 건강하자, 서로 챙겨 주자.'는 목표로 한 달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트레킹을 하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 트레킹을 다닌 지 1년이 되었다. 여행을 계획하는 친구가 신청을 하고 우리는 참석만 하면 된다. 토요일 새벽 1시에 출발해서 새벽 5시 30분에 제주도에 도착하면 올레 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일출을 보면서 걷고 일몰을 보면서 육지로 나온다.  제주도에서 오후 4시 30분 배를 타고 목포로 나오는 코스를 1년 넘게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제주에서 걸으면 보통 15,000보~20,000보 정도 걷는다. 그리고 가끔 서울에서 좋은 공연이 있으면 또 공연 예약을 한다. 금요일 반차를 내고 서울에 가서 공연을 보고 토요일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거나 공원이나 성곽을 트레킹 하는 코스의 여행도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을 계획하면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우리 친구가 대단하지 않은가.


보배 같은 친구다. 친구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있다. 양파 같은 친구라고! 까도 까도 매력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귀차니즘이 있는 나는, 만약에 이런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한다면 여행을 갈 수 없을 것이다. 계획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에 사는 친구 4명이 함께 움직이고 서울에 친구들이 6명이 있어서 다 모이면 10명의 여고 친구들이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가 우리가 서울로 간다고 하면 다 같이 모인다.

"아야, 서울에 사는 우리보다 지방에 사는 너희가 서울을 더 많이 아는 것 같다야. 너희들 덕분에 서울을 더 많이 알게 된다야. 보배다, 보배여!"


이처럼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적 운명이다. 특히 우리 친구들 같은 친구는 없을 것이다. 계획하고 진행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운전해 주고, 숙소를 대여해 주는 친구가 있고, 웃음을 주는 친구가 있고, 꼼꼼하게 챙기는 친구가 있고, 그럼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친구들은 나에게 비주얼 담당이라고 해 준다. 얼마나 역할이 없으면 그럴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커피를 챙겨간다. 원두와 핸드드립 도구를 챙겨서 여행 가서 아침에 커피를 내려 친구들과 모닝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내가 나름 친구들을 위해 찾은 나의 쓸모인데 괜찮지 않은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든 얹혀서 가는 사람도 있고 아롱이다롱이가 모여 사는 것이 인간 세상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더 나이 들어서도 함께 영원할 친구들의 우정을 약속하며 5월의 제주도 트레킹을 기다려 본다. 좋은 친구 덕분에 내가 수고하지 않아도 항상 여행지가 계획되어 있고 떠날 수 있는 경제력이 되어주는 직장이 있어서 감사하다. 신은 각자의 능력을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사는 우리 친구들 덕분에 나의 삶 또한 풍성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


요즘 산에 가면 꽃이 지고 난 뒤에 나오는 어린잎들이 너무 예쁘다. 여름 햇살이 닿지 않은 여린 잎들이 주는 연두 빛 눈부심은 소녀들의 두근거리는 설렘 같다. 여리고 부드럽지만 그 속에 감춰진 진한 초록 기운을 알기에 청춘이 그리운 걸까.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여름이 성큼 와버릴 것 같다. 우리들의 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백일백장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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