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빠른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게 얼마 전이었는데 성미 급한 사람들은 벌써 5차 산업혁명을 얘기한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우리 일상은 그야말로 확 바뀌었다.
변화를 즐기든, 꺼리든 간에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은 역사의 저편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매일 실감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대전환이 일어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조금만 한눈팔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질 수밖에 없는 숨 가쁜 세상이다.
“폭풍은 지나갈 것이고 인류 대부분은 살아남을 것이지만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유발 하라리(역사학자)
특히 코로나 팬데믹은 ‘비대면의 일상화’를 불러왔다. 팬데믹을 건너오면서 우리 모두는 비대면 세상을 오롯이 경험했다. 면접에서도 그러하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채용 방식으로 자리 잡은 화상면접이나 ‘AI면접’이 대표적이다. 벌써부터 자칭·타칭의 취업전문가들이 바뀐 면접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며 앞다퉈 꿀팁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취업전문가들 가라사대. 화상면접이나 AI면접이라는 새로운 채용 트렌드에 대한 특별한 대응 방법이 필요하단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조명을 밝게 하고 화각(렌즈가 담을 수 있는 이미지의 각)을 잘 맞추라, 캠의 렌즈를 보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라, 목소리를 크게 내라, 면접관의 말에 더욱 집중하라, 최대한 말이 끊기지 않게 대답하라, 습관이나 무의식적인 산만한 행동들에 주의하라 등의 뻔한 조언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취업에 목마른 청춘들은 무슨 금과옥조처럼 머릿속에 집어넣기 바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대면 면접에 대비할 수 있다는 학원까지 생겨나고 있다. 취업 사교육의 범람은 비대면 시대, 새롭게 출현한 면접 방식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를 웅변해준다.
하지만 취업을 향한 타는 목마름은 잠시 접어두고 찬찬히 따져보자. 화상면접은 그저 면접이 랜선 세계로 넘어갔을 뿐이다. 코로나 19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주무대가 바뀐 숱한 삶의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다양한 랜선 라이프에 비춰보면 화상면접도 딱히 특별할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취업 트렌드세터’ 인양 행세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슨 뾰족한 합격의 답이 있겠나.
또 요즘 확산되고 있는 ‘AI면접’은 자기소개와 질의응답(Q&A), 간단한 성향분석·게임·맞춤형 질문 등을 통해 지원자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서류전형에서 지원자의 성향·역량평가 등으로 점차 활용도가 높아지는 추세지만 면접관이나 면접 장소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기존의 면접방식과 다를 게 없다.
무엇보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경우 AI면접 결과는 실제 평가(점수)에 반영하지 않고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고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지원자 별 AI면접 결과 자료를 면접관에게 ‘참고용’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확인 여부는 면접관 각자의 판단이다. 십중팔구는 말 그대로 ‘참고’만 한다. 그냥 쓱 훑어보는 정도라는 의미다.
필자도 처음에는 면접 시작 전에 AI면접 결과를 꼼꼼히 확인했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AI면접 결과가 아니라 자기소개서를 한번 더 들여다본다.AI면접(결과)을 별로 신뢰하지 않아서다.
특히 인공지능 말대로라면 도저히 뽑아서는 안될 ‘인재(人災)’가 분명한데 실제 면접에서 만나보니 오히려인재(人材)인 경우도 적잖았다. 왠지 속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지원자에 대한) 괜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필자도 ‘참고’만 한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 AI면접이 공정하고 신뢰도 높은 채용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어디까지나 필자만의 생각이지만 인공지능이 면접의 룰을 송두리째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AI면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면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것을 대체할 것 같은 기세다.
이제 우리 주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는 인공지능을 빼놓고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 성싶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인공지능의급속한 발전은자연스레오래된질문들을다시꺼내들게만든다. “인공지능은어디까지발전할까?” “과연 AI가인간을대체할까” 물음표(?)가정답이아닐까싶다. 누구도 확언하기 어려운 문제일 테니까.
물론많은 사람들이날로발전하는인공지능이머지않아인간을넘어설때가올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역설하는 사람들조차도 AI가 인간의 공감능력은 모방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공감 능력이 인류 생존의 열쇠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육체적으로 가장 연약했던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은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우세한 종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이세계를지배하는종이된것은뛰어난공감능력을가졌기때문이다”- 제러미리프킨(미래학자)
공감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과 차별화되는 인간만의 본질적인 가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빠르게 발달해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영역만큼은 대체 불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오감으로 느끼고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자리인 면접을 어떻게 인공지능으로 오롯이 대체할 수 있을까?
과연 인공지능이 지원자의 얘기를 듣고 표정이나 감정까지 읽어내서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누구를 뽑을지에 대한 판단을 오롯이 인공지능에만 맡기는 게 바람직할까? 필자의 생각은 불가능하고 또 가능한 일인지를 떠나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면접관은 평가(Evaluation)하는 사람이다. 평가는 어떤 대상에 가치(價値)를 부여하는 행위다. 대상을 저울 위에 올려서 값어치를 매기는 일이다. 그래서 평가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판단력(Judgement)이다. 즉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출 수 있느냐에 따라 AI면접관의 성공 여부가 좌우될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면접에서 평가의 대상은 사람이고,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정확한 평가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면접관은 눈앞에 보이는 지원자의 현재 역량뿐만 아니라 숨은 잠재력까지 간파하는 통찰력(Insight)을 가져야 한다. 또 역량을 평가할 때는 하드 스킬(Hard Skill)은 물론이고 휴먼(Human) 또는 피플(People) 스킬이라고 불리는 소프트 스킬(Soft Skill)을 함께 봐야 한다.
하드 스킬은 학위·자격증·외국어 능력 등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요건(Technical Requirement)을 말한다.
소프트 스킬은 소통과 협업, 팀웍 등 (인간) 관계적인 측면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으로 요즘 기업들이 지원자를 평가할 때 가장 중시하는 역량이다. 회사에서 일이란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당연히 소프트 스킬은 공감능력 없이는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런데 공감능력과는 거리가 먼 AI면접관이 이런 역량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팬데믹이일깨워준하나의사실은면접에서무엇보다중요한건 ‘대면’을통한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감정의 교류와공감이라는 거다.
단언컨대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세상이 오더라도 사람 면접관은 사라지고 AI 면접관이 채용을 결정짓는 모습은 가까운 미래에는 보기 힘들 테다.
십수 년 면접관을 해본 깜냥으로 보면 면접을 AI한테만 믿고 맡기는 세상은 적어도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먼 미래의 애기일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면접만큼은 인공지능(AI)의 인간지배론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면접에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성싶다. AI 면접에 대한 필자의 짧은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드래곤의 노래 <삐딱하게>에 나오는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가사처럼 최근 핫한 AI 면접이나 화상면접 등 채용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아무리빨리바뀐다고해도 본질은 결코 달라지지않는법이다. 아무리 최첨단 디지털 세상이 오고 채용 방식이 상상할 수 없이 바뀌더라도 우리회사와 (채용하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Right People)’ 인가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채용의 근본 원리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