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계절에 쌓이는 잡념을 배출하는 최고의 방법
2024.04.25
2025.03.05
또 돌아온 경칩.
어김없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감정을
휘어잡느라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이는 잡념들을
무너뜨리기엔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
행복이란 단어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이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중에도 우울이라는
시한폭탄은 마음 한편에 언제나 폭발할 준비가
되어있는 듯, 나를 괴롭힌다.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이 되면 내 시한폭탄도
스멀스멀 깨어 날 준비를 한다.
겨울보다도 유독 봄에 우울해진다.
누구나 설레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이 계절의 바람은 내 머릿속을 환기라도 시키고 싶은 것일까.
한 해 동안 열심히 다잡고 정리해 놓은 감정들을
한바탕 뒤집어 놓는다.
겨우 숨겨 놓은 어두운 생각들이 다시 떠올라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숨이 너무 벅차,
그냥 이대로 멎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것도 시시때때로.
자기 전 따뜻하게 목욕을 하고 좋아하는 로션을
바르고 거울 앞에서 이쁜 척도 한번 해본다.
침대에 누워 기분 좋게 이불까지 덮고 잘 준비를
하는 그 순간 기도한다.
‘이대로 숨이 끊어지게 해 주세요. 심장이 멈추게 해 주세요 ‘ ,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도록 해주세요 ‘ 가장 평온한 그 순간이 마지막이길.
나의 우울은 이렇다. 나를 닮아 조용하고 한결같다.
그렇기에 무서워졌다. 매년 버티고 이겨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이 녀석이 언젠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살고 싶지 않지만 죽고 싶지도 않다.
참 웃기고 어려운 사람이다.
작년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버텼다.
봄을 지나 편안하고 감사한 일상을 보냈고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하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나를
조롱하는 듯한 우울감.
분명 이겨냈다 생각했는데, 나를 믿었는데 또 졌다. 이 패배는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맛있는 걸 먹고 예능을 보며 웃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오빠와 함께 하는 순간을 모두 즐기지만 돌아서면 무의미하다 느껴진다.
무기력과 무의미만 외치는 이 악마의 주문을
이겨내야 한다.
나는 이제 나를 믿지 않기로 했다.
이유 없이 처져 있을 때마다 있는 힘껏
안아주는 그를, 함께 찍은 사진만 봐도 웃음이 나는 그들을, 나를 위해 힘들게 살았을 그녀를 믿고 다시 지내보자.
매일 우울했다. 라는 말에 우울 말고
매일에 초점을 맞추자.
어차피 당해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 무너지겠다.
우울이라는 감정 또한 나의 결과물이라 생각하자
인생의 이유를 찾고 평온을 원하며 이상을 빛내기 위한 나의 최선이 잠시 휴식을 위해 우울을 데려 온 것이라 생각하면 이 감정 또한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명사[우울:반성과 공상에 따르는 가벼운 슬픔]
어김없이 따라오는 가벼운 슬픔의 공상들을 영원히 끊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았다. 365일 같을 수 없고 나의 평온은 애초에 길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그럼에도 이렇게 30년을 버티지 않았는가.
나는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고통에 허덕이면서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은 나는 죽어도 배부른 돼지는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역시 인정이 가장 빠른 길이다. 뭐든 인정하면 조금 가벼워진다.
인정을 위해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객관적 시각은 정리된 감정에서 출발하며 감정 정리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공감을 얻으려 포장하지 말자.
나에게 글쓰기와 그림은 그저 배출의 한 방법일 뿐이다.
조금 더러운 비유지만 장에 음식물이 쌓여 독소가 배출이 되는 자연스러운 이치처럼
내 머릿속에 쌓이는 공상들은 배출해야 할 똥오줌 같은 독소 정도가 아닐까. 깔끔하게 배출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기까지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역시 돌고 돌아 나에겐 그림과 글뿐이다.
이것들을 방패 삼아 다시 쌓고 정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봄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