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앙 이후의 세상
도시는 죽었다.
아니, 도시라고 불리던 것들이 자연이라는 이름의 장례식 속에 삼켜졌다.
초여름의 공기는 차갑고, 대기는 질식할 듯 습하며,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먼지와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폐 속을 파고들었다. 태양은 짙은 회색 구름 뒤에 숨어 있었고 그 대신 흐릿한 빛줄기가 콘크리트 잔해 위로 내려앉았다. 무너진 빌딩들, 부서진 가로등, 녹슨 철골, 그리고 철거되지 못한 광고판이 세월의 무게를 말없이 짊어진 채 서 있었다.
여기는 제3 구역 잔재지대, 2029년에 마지막으로 인간이 거주했던 도시였고 2041년에 태양폭풍과 극지빙붕 붕괴로 인한 제1기후붕괴사건으로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지금은 간신히 바다의 침식을 피해 남은 고지대에, 녹슬고 바스러진 건물들이 그저 ‘과거’라는 유령처럼 남아 있다.
길 위에 도보란 개념은 없었다. 잡초가 바닥을 뚫고 올라와 길을 덮었고 도로 중앙에는 나무뿌리가 아스팔트를 찢고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풍경은 놀라울 만큼 ‘살아 있었고’, 오히려 인간이 이곳의 침입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유시아는 폐허 위를 조용히 걷고 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붉은 먼지와 식물 줄기 사이로 부드럽게 발을 옮겼다. 그녀의 부츠는 오래되었지만 단단했고 무릎 옆에 찬 검은 칼집은 바깥 세계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않게 했다.
“... 여긴 아직도 살아 있어.”
작은 소리로 중얼이며 그녀는 허리춤의 작은 디지털 지도기를 켰다. 전력이 부족한지 지도기는 깜빡였고 화면엔 ‘좌표 미확정’이라는 글자가 떴다. 전파는 도시 전체에 끊긴 지 오래였다.
“또 멈췄어?”
뒤에서 안지후가 다가왔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어깨에는 무전기 겸 조난 신호기를 메고 있었다.
“우린 도시에 너무 깊이 들어왔어. 이 근방엔 통신기지 하나도 없어.”
지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늘 그래왔다. 감정이 메마른 게 아니라 감정을 쓸 여유가 없는 시대에 길들여진 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이쪽이 안전해.” 유시아가 말했다. “여긴… 글로리아 쪽 영향이 덜하거든.”
그녀들이 두고 온 과거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연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몇 킬로미터 전, 그녀들은 글로리아 부대와 교전 직전에 빠져나왔다. 조직은 “질서”를 위해 존재한다고 외쳤지만 그 질서는 항상 총구와 피 위에 세워졌다. 글로리아는 영토를 넓히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무장되지 않은 생존자조차 ‘자원’으로 수용했다.
그에 반해, 스페츠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나마 ‘희망’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유시아는 아직 그 둘 사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폐허 사이, 유시아는 멈춰 섰다.
한때 도서관이었을 것 같은 건물, 입구 위엔 무너진 기둥이 사선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녀는 그 아래로 들어갔다. 벽면엔 여전히 책장들이 무너져 있었고 젖은 종이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과거의 기억이 아스라이 피어오른다.
책을 읽던 시간, 종이 위에 손가락을 따라가던 순간들,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지 않던 시절’의 조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렁인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중얼인다.
“무너진 건 도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세계야.”
밖에서 박주은이 손을 흔든다.
“시아야! 여기에 뭔가 있어. 나와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부서진 도로 한가운데로 향했다.
거기엔 땅속에서 반쯤 드러난 금속함이 있었다. 덩굴에 휘감긴 채로도 금속의 광택이 살아 있었고 그것은 명백히 이 시대의 것이 아니었다.
유시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 순간, 하늘이 울었다.
먼 하늘, 폭풍 전야처럼 번개가 흩어졌고 하늘은 또다시 울음을 예고했다.
2065년.
우리는 아직 살아 있었고, 동시에 모든 것을 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