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도시, 살아남은 자들.
도시는 완전히 무너졌지만 사람들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건물의 뼈대만 남은 아파트, 절반쯤 꺼진 도로 위, 무너진 지하철 터널, 오래된 빗물 저장소.
문명이라고 불리던 것의 잔해 속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만들었다. 이곳에선 더 이상 “집”이라는 말도 사치였다. 그것은 벽과 지붕이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들키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여야 했다.
유시아 일행은 오래된 공장지대를 지나고 있었다. 녹이 슬어 붉게 변한 철문 위엔 “접근금지”라는 안내판이 바람에 덜그럭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바닥을 누비는 전선, 건물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약한 불빛, 창틀마다 걸린 철제 방울들. 이것은 ‘경고용’이었다. 바람이 불면 방울이 흔들리고, 누군가가 접근하면 소리가 난다. 소리가 나면, 숨어있던 이들이 자동으로 ‘은신 상태’에 들어간다.
그리고, 가장 아래. 지하 통로엔 철문 너머로 낡은 천막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 천막 안에 ‘그들’이 있었다.
생존자들.
이곳의 생존자 대부분은 조직에 속하지 않은 비등록자들이었다. 누구도 신분을 증명할 수 없고 누구도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한 이들. 그들끼리는 서로를 ‘별명’이나 ‘번호’로 불렀고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진짜 이름조차 몰랐다.
“거기 누구야.”
철문 너머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지후가 손을 들고 말했다.
“우리야. 어제 양전지 교환해 줬던 팀.”
잠시 침묵이 흐르고 녹슨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마른 체구에 얼굴 절반을 천으로 가린 중년의 남자였다.
“식량 있어?”
“말린 사과 두 개랑 캔 하나.”
“좋아. 그거면 돼.”
남자는 뒤를 돌아 천막 사이를 지나갔다. 그의 발자국 뒤로 아이들이 조용히 고개를 내밀었다. 눈동자가 크고 어둠에 익숙한 눈. 세상이 이렇게 된 뒤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언니, 전지 있어요?”
그 질문을 들은 유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작은 배터리 하나를 꺼냈다. 아이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 작은 전지는 아이의 손전등이 며칠간 더 켜질 수 있음을 의미했고 그것은 곧 밤의 공포에서 버틸 수 있는 희망이었다.
“이제 진짜 끝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아?”
박주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시아는 고개를 돌렸다.
“뭐가?”
“이 도시 전체. 점점 숨을 잃고 있어.”
실제로도 그랬다. 도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 ‘숨’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북쪽으로 더 높은 고지대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자리를 조직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글로리아는 이 폐허들을 ‘재정복지구’라 부르며 하나씩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란 곧 ‘비등록 생존자 제거’를 의미했다. 스페츠는 그런 글로리아의 방식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지만 정작 스스로의 손으로 그들을 보호하지는 않았다. “희망은 있다”고 말하면서도 손을 내밀어주는 자는 거의 없었다. 유시아는 이 모순된 세상 속에서 언제나 질문을 하나 품고 있었다. 희망은… 정말 있는 걸까?
그날 밤, 유시아는 아이들과 함께 천막 바깥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반쯤 구름에 가려 있었고 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희미하게 북서쪽 하늘에 노란 섬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글로리아, 또 하나 지대를 삼켰나 봐.”
“거기… 사람들이 있었을까?”
“있었겠지.”
누구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가 도시를 다시 감싸기 시작했다.
밤은 길었고 생존은 고통스러웠지만 이들은 살아남았다. 무너진 도시 위에서도 아직 사람은 사람으로서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