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2021년 5월 7일 KBS 시사직격에서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 청년 고독사 보고서’편을 보고 쓴다. 방송에 소개된 고 김동수(가명)님과 박영호(가명)님과 그 외에도 이름은 모르지만 외롭게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빈다. 무거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쓴다.
나는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동물, 자연보다는 사람이 나오는 다큐를 즐겨 보는 편이다. 주로 유튜브로 보는 데 몇 달 전 청년 고독사와 관련한 다큐를 보았다. KBS에서 방영하였는데 청년 고독사에 대한 주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나도 이 다큐를 보기 전까지 고독사는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발생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에 고독사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보통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고독사는 청년이란 단어와 합쳐져 ‘청년 고독사’라는 합성어를 만들어 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청년이란 단어와 고독사란 단어가 어색하게 붙어 있다. 고독사의 발생 원인은 연령대별로 다양하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 문제를 심화시키는 공통적 이유는 경제적 불황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연령대에 있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며 고독사 문제는 부각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고독사는 1,717건이었는데 2019년엔 3,704건 2020년엔 4,196건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1년과 2022년의 통계는 모르지만 추세로 보았을 때 줄진 않았을 것이다. 금리가 상승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제 불황의 추세를 감안하면 고독사 건수는 증가했을 것이다. 방송에서 나온 자료에서는 고독사 비율 중 절반은 수도권 대도시에서 발생하고 고독사 연령의 10% 이상은 20~30대 청년들이다. 문제는 청년 고독사의 경우 타 연령층과 달리 자살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11명이 넘는 사람이 세상과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은 대체로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에서 발견되는 데 처음 발견하는 사람은 대부분 집주인이다. 그들의 집은 전기, 수도, 가스 등 각종 공과금이 밀리고 독촉이 되다 납부하지 못해 끊기게 되고 몇 달치 월세가 밀려 집주인이 찾아갔을 때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견되었을 때는 집은 쓰레기가 방치되어 정리가 안되어 있다. 식사는 주로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식품으로 하며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는지 알 수 없다. 각종 이력서, 수험서적, 어학 및 자격증 서적, 정장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유서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유서라도 있다면 그들의 삶을 추적해 볼 텐데 없다면 그의 삶의 기록도 함께 사라진다.
제작진은 이번 편을 제작하며 총 22건의 죽음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저마다 사연이 있지만 그중 두 사람의 삶을 밀착취재 하였다.
먼저 나온 사람은 89년생 김동수님(가명)의 삶이다. 그는 건설노동자로 오랜 기간 일했다고 한다.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20세 이후부터 건설현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고아원에서 자란 삶은 고단 했겠지만 그는 잘 성장하여 열심히 살았다. 회사에서는 노조활동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다치게 되는 순간부터 그의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하필 코로나가 발생한 시기라 건설경기가 많이 위축되었다. 몸이 멀쩡해도 일할 곳이 없었는 데 몸이 성치 않았으면 오죽했으랴. 경제적 어려움이 그의 삶을 벼랑으로 밀었을 것이다.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손 잡을 곳도 없었다. 수도, 가스, 전기는 죽기 두 달 전부터 끊겼다고 한다. 그는 그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방에는 쓰레기가 많이 쌓여있고 온기는 없다. 냉장고에는 언제 먹었는지 모를 치킨이 있었다. 특수청소 전문업체에서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고인의 증명사진을 발견했다. 유쾌한 인상의 30대 남성. 방에서 발견된 배달음식을 주문한 메모에는 주문 요청사항에 ‘조심히 와주세요:)’라고 되어있다. 살아생전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의 메모는 따뜻하지만 메모의 발견은 차갑다. 그는 여의도에서 가장 큰 빌딩의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한다. 그가 지었던 빌딩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지만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30대 젊은 청년은 그렇게 잊힌다.
두 번째 이야기는 박영호(가명)님의 이야기다. 고인은 시흥의 공단지역 주택가에서 발견되었다. 다른 고독사 발견 사례와는 달리 집이 깨끗하고 집에 있는 물건이 단출하다. 수북한 약봉지, 면바지 하나 청바지 하나 정장 슈트 한 벌. 그가 가진 옷의 전부였다. 그는 1984년에 태어나 지방의 한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 거제로 향했다고. 당시 국내 조선산업은 최고의 호황이었다. 그는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하지만 조선경기는 2016년부터 크게 휘청하기 시작하며 그의 삶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에는 조선소에서 일하다 낙상사고를 당해 두 차례 큰 수술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일할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었는데 조선소에서마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오랜 기간 돈을 벌지 못했다. 빚을 져야 했다. 이후 몇 달 더 거제에서 머무르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게 위해 평택으로 향했다. 그는 두 달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방송에서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소개해 주었다. 그의 고용보험 가입내역을 확인하니 31번이 가입되고 삭제되었다. 짧게는 며칠에서 몇 년. 31이라는 숫자가 그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산재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노동현장에서 다쳤기 때문에 산재 신청하면 되었다. 하지만 왜 산재신청을 하지 못했을까? 조선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노동자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떤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게 될 경우 회사에 속칭 산재노동자로 ‘찍히기’ 때문에 동종업계에 다시 취업하기 힘들다고 한다. 조선경기가 불황인 상황이라면 더 할 것이다. 당장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빚이 아닌 산재를 택했을 것이다. 그는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몸이 낫는다면 다시 일을 했을 것이다. 나중엔 일부 산재처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마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그분의 누나와도 연락이 닿아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누나는 동생의 죽음을 경찰을 통해 알았다고 한다. 먹고사는 게 힘들어 서로 연락조차 쉽지 않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례식장 고인의 지인에게 들었는 데 3천만 원 정도의 빚이 있었다고 한다. 고작 3천만 원에 젊은 생이 포기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며 한스럽게 울었다. 그의 유서에는 ‘나이도 나이지만 자격증도 없고 산재 환자로써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 산업재해법을 강화해 주길 바란다.’ 고 적혀 있었다. 그의 누나는 마음이 단단한 동생이지만 다치면서 산재환자로 취업이 어려웠고 일을 해도 통증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일을 오랫동안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너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과연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그래서 살아야 하는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감히 그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까. 어렵고 착잡하다.
나는 가벼운 유튜브 안에서 무거운 죽음을 보았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삶이 박제되어 있다. 수 없이 박제된 삶은 우리가 타인의 삶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잊힌 사람들의 삶과 죽음은 스쳐가는 이야기로도 들리지 않는다. 잊힌 사람의 이야기는 과거의 우리의 이야기였으나 잊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단체일 땐 너무나 강하지만 개인은 약하다. 인간이 자연의 먹이사슬 정점에 서서 거대한 문명을 이룰 수 있던 이유는 연대라는 이름의 사회성에 있다. 살아있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벽은 갈수록 짙고 두터워진다. 하나의 벽은 나와 타인 두 사람을 고립시킨다. 외로움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나 혼자 사는 고독생이 증가한다. 고독생의 증가 일정 비율은 고독사의 증가로 이어진다. 방송에서는 홀로 살며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20대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녀는 인터뷰 도중 힘든 순간이 생각났는지 울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매일 홀로 방에서 외로운 싸움을 했다. 인터뷰를 보는 동안 매일매일 처절하게 싸우고 버텼을 그녀가 보였다. 외로움은 그녀에게 갑작스레 찾아왔고 정신 차렸을 때 유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청년 고독사 문제를 ‘이력서, 수험서, 면접용 정장’ 등 취업과 관련된 경제적 어려움으로만 한정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나타내는 이런 키워드들은 극적 효과가 크다. 면접을 위해 샀지만 입지 못한 정장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같은 문구처럼 신파가 있다. 언론은 죽음을 신파로 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청년 고독사를 심화시키지만 근본적 원인은 고독생에서 기인한다.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는 사람들이 홀로 떨어져 지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개인이 고립되지 않도록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연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복지의 논의는 늘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전통적 취약계층에 있다. 젊은 층에는 관심이 없다. 젊은이들도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언론에 비치는 ‘청년 고독사=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위험하다. 청년의 죽음은 경제적 어려움만 극복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어려움은 ‘노오력’을 하면 된다. 미디어에서는 젊음의 경제적 어려움은 노동을 통해 극복할 수 말한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코인이나 주식 같은 인생 한 방을 통해 경제적 자유까지 이루고 파이어족이 될 것이라는 달콤한 말들을 속삭였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라떼이론’은 진부하지만 강력하다. 이들에게 외로움은 젊음을 빛내는 낭만일 뿐이다. 이러한 주류의 인식은 문제에 대한 논의를 찾지 못하게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일부 청년에게 있지만 청년들에겐 가능성이 더 크다. 일부의 문제이기에 ‘이력서’나 ‘면접용 정장’도 개인의 신파가 된다. 고독생과 고독사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섰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다. 내 손이 필요할 땐 언제든 내주어야 하고 타인의 손을 잡을 때도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 전 세계 유목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법칙이 있다. 초원이나 사막에서는 갑자기 손님이 집에 오더라도, 그 사람이 설령 나의 원수라도 며칠간 묵게 해 주고 음식을 내주어야 한다. 불문율이다. 드넓고 황량한 땅에서 그들이 수 천년을 넘게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용감하고 강해서가 아니다. 그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음식을 내주고 잠자리를 빌려주는 사회적 합의가 잘 작동했을 뿐이다. 불문율은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그들이 존재하는 한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의 많은 외로운 영혼들이 위로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