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와 산다. 고양이가 넷이다. 사람 셋이 사는 집에 고양이가 넷이다. 일곱 생명은 하루하루 살아간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교감은 신비로운 일이다. 신비로운 일상은 보통의 일상이다. 네 아이의 소개를 하겠다. 설명이 길 수도 있다.
첫째는 덕수다. 덕수는 아메리칸 숏헤어 종인데 거대하다.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백호의 새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덕수와의 묘연은 8년 전으로 기억한다. 매형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덕수를 데려왔다. 이름은 그때 지었다. 덕이 있는 짐승이란 뜻. 그땐 아기였는데 이제 앳된 모습은 기억이 안 난다. 덕수는 원래 누나 손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지금도 그래야만 했는데, 조카가 태어나고 육아에 힘들다 보니 몇 년 전 우리 집에 왔다. 언제 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덕수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항상 옆에 온다. 잘 때도 옆에 와서 잔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옆에 있다. 고개를 돌리면 그쪽으로 오고 팔 베개를 해줘야 한다. 평소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자는데 덕수도 그렇다. 인간인 줄 아나보다. 덕수는 때로 새벽에 앞 발로 내 얼굴을 때린다. 뚱한 표정이다. 때린 이유는 없다. 그저 본능이다. 정말 본능일까 생각해 보는데 여전히 의문스럽다. 하지만 두 번 이상 때릴 때는 밥을 달라는 뜻이다. 덕수가 두 번 이상 때려서 나가보면 늘 밥통에는 밥이 없다. 덕수는 머리와 눈이 크다. 잘생긴 고양이다. 이름을 부르면 귀를 쫑긋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못 들은 체한다. 덕수가 사람이 아닐까 의심을 하는 세 가지 이유는 첫째 옆으로 비스듬히 사람처럼 누워 자고 둘째 새벽마다 내 얼굴을 때리고 뚱한 표정으로 ‘어쩌라고?’ 이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셋째 부를 때 귀는 쫑긋하나 절대 쳐다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차원적 도발을 한다. 누나는 어린 조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시우야 덕수 형아는 원래 우리 가족이었는데 나쁜 마녀의 약을 먹고 고양이로 변했어. 그래서 우리가 사랑해줘야 하는 우리 가족이야.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표현 중 이보다 완벽하고 절제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덕수는 넷 중 유일하게 조카와 놀아주는 고양이다. 아기들은 때론 소리 지르고 꼬집거나 과격한 행동이나 표현을 할 때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고양이들도 본능적으로 아이를 피하는데 덕수는 곁을 내준다. 조카는 한결같이 곁을 내어준 덕수를 통해 생명에 대한 존중과 타자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 묘연이란 말을 정정해야겠다. 덕수와는 인연이다. 덕수는 가끔 자유를 갈망한다.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누나다. 덕수와 봉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봉구는 몰라도 덕수는 즐거웠나 보다. 나가는 순간 건물의 복도 건 계단이건 바닥을 자신의 온몸으로 비빈다. 열심히 달린다. 고양이는 낯선 곳을 싫어한다는데 덕수는 해당 사항이 없다. 덛수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현관문 앞 미닫이 문을 스스로 여는 것으로 표출된다. 미닫이 문을 홀로 여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덕수의 의지다. 후추와 황금을 사기 위해 길을 나서던 대항해 시대 선원들이 생각나게 한다. 바깥세상에는 후추도 없고 황금도 없다. 회색 빛 도시는 거대한 아이에겐 신기하겠지만 위험하다. 나는 덕수의 의지를 매일 꺾는다. 덕수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의지가 아니야. 덕수는 넷 중 유일하게 오래 안을 수 있다. 30초. 30초는 양보해준다. 그 정도면 밥 값을 다 한 셈이다. 덕수는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쫑이라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가끔 가만있는 쫑이에게 하악거릴 때가 있다. 덕수는 잘 때 가끔 코를 곤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나는 그르릉 소리가 아니라 코를 곤다. 꿈을 꾸는 듯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덕수는 파스 냄새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엄마가 가끔 무릎이 아파 스프레이형 파스를 뿌리면 덕수가 가서 핥는다. 침 범벅이 되도록 핥는다. 유독 파스 향에 집착한다. 가끔 벌레를 잡아와 우리의 연대감을 확인시켜 줄 때도 있다. 역시 이 아이는 백호의 피가 흐르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결론을 내린다.
둘째는 봉구다. 이 아이의 이름은 나도 모른다. 그냥 누나가 지었다. 매형이 유학을 간 후 누나도 일을 하다 보니 덕수가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 가거나 하기라도 치면 덕수는 홀로 쓸쓸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생명 더 함께 하기로 했다. 누나는 어린 아비시니안 고양이를 분양받기로 했다. 누나네 집에 있을 때 봉구가 처음 온 날이 기억난다. 방사 과정에서 덕수가 봉구에게 엄청난 경계를 했다. 고양이는 자신의 집에 새로운 고양이가 들어오면 본처가 있는 집에 첩을 들이는 것 마냥 싫어한다 했는데 그랬다. 정말 작은 고양이였던 봉구는 케이지 밖을 나오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케이지에 있었다. 하루 정도 지나 겨우 덕수에게 입국 수속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봉구는 매일 새벽마다 놀아달라 한다. 문을 닫으면 방문을 두드린다. 열릴 때까지 두드려 봉구와 함께 한 날들 중 대부분은 방문을 열고 잤다. 봉구는 새벽마다 밥을 달라한다. 밥그릇에 밥은 있지만 오래 두면 향이 날아가서 그런 것 같다. 새벽에 밥을 달라 할 때는 특별한 절차가 있다. 일단 내 어깨와 머리 주위를 두어 바퀴 정도 돌고 머리를 내 얼굴에 비빈다. 이불로 얼굴을 덮으면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나는 승산 없는 전투를 매일 새벽마다 펼치고 지체 없이 투항한다. 아비시니안 고양이는 갈색인데 새벽에 어두운 방에서 보면 봉구는 저승사자 느낌이다. 봉구와 나는 전생의 고부관계가 아니었나 싶다. 봉구는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일단 뭐든 건드려보고 한다. 한 번은 이 호기심이 봉구를 사경에 헤매게 한 적이 있는데 누나는 그때 당시 덕수와 봉구를 데리고 종종 산책을 나갔다. 나가서 이름 모를 풀을 씹어 먹었는데 그날 밤 봉구는 구토하고 며칠을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는지 모른다. 위세척을 했나 그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나 다행히 지금은 건강하다. 봉구의 호기심 중 가장 놀라웠던 건 꽤 오래전 밥을 먹고 배불러서 혼자 스트레칭을 위해 팔을 쭉쭉 뻗는데 봉구가 두 발로 서서 앞 발로 팔을 쭉쭉 뻗으며 내 모습을 보고 따라 한다. 신기하다. 봉구는 식탐이 많은 아이다. 간식을 주면 가리지 않고 먹는다. 먼저 먹고 다른 아이들의 간식을 뺏아먹기도 한다. 한 번은 바스락거리는 봉지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입에 봉지를 물고 봉구가 낑낑댄다. 제 덩치보다 큰 생선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어딘가 가려한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봉구는 체구가 작아 아기 같다. 이 아이의 취침 장소는 어딘지 모른다. 어딘가에서 자겠지. 가끔은 잘 때쯤 내 다리사이나 다리에 기대어 자기도 한다. 베란다 캣타워나 엄마 침대, 거실 소파 등 다양한 곳에서 잔다. 가끔 봉구가 내 침대에 오는 날에 있는데 그날은 싱글 침대에 사람 한 명과 고양이 셋이 함께한다. 이렇게 자는 봉구의 잠을 깨워선 안된다. 잠이 깬 봉구는 저승사자로 돌변한다. 새벽에 여러 차례 깬다. 내가 물이나 우유를 마시려고 컵에 떠놓으면 컵에 고개를 파묻고 마신다. 당연히 내가 마실 물이다. 봉구는 눈곱이 많이 끼는 편이다. 눈물이 자주 나서 안약을 넣어주어야 한다.
셋째는 삼순이지만 쫑이부터 소개하겠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쫑이는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같이 일하던 팀장님이 주워왔다. 그분은 사무실에서 이따금 엉뚱한 행동을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셨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를 두 녀석 주워왔다. 내 손바닥의 절반 만한 아기 고양이가 둘이다. 그중에 하나가 쫑이다. 어떻게 주워왔냐 물으니 보이길래 주워왔단다. 그분다운 대답이다. 그렇게 사무실에 왔던 쫑이와 한 녀석은 열심히 울어대며 사무실을 누볐다. 배고팠는지 주는 음식과 물을 허겁지겁 먹는다. 팀장님께서는 고양이들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당시 우리 집에는 삼순이라는 아이가 있어서 어린 길고양이의 삶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하루 뒤였나 팀장님은 한 번 더 아이들을 데려왔다. 전날보다 더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움직이는 생명에게 배고픔은 삶의 본능이다. 먹는다는 것은 삶의 의지다. 어린 생명은 닳아버린 끈을 힘겹게 잡고 놓지 않는다. 닳은 끈이 끊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가차 없는 자연의 이치는 삶과 죽음의 넘나듦 속에서 치우침이 없다. 생명은 그저 부여잡을 끈을 뿐이다. 두 녀석은 다시 한번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졌다. 그때까지도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팀장님이 말했다. 요 앞에 주택이 있는 데 집 문 앞에는 큰 개가 있고 주인은 며칠 자리를 비운 것 같다고 했다.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며 집 앞에 가 보았다. 주택 입구에는 개집이 있었다. 개는 목줄에 묶여 집 문까지는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어린 두 생명이 있었다. 하나는 거의 초주검 상태였고 쫑이는 개가 올 수 없는 거리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두 녀석은 부모를 잃은 고아였는지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에 갇혀 있었다. 담장은 높아 감히 어린 고양이들이 넘을 수 없었고 물과 음식을 찾기 위해선 문을 나서야만 했다. 하지만 개는 이 아이들을 문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굶주림에 지쳤는지 한 녀석이 먼저 문 밖으로 나가려 하다 개에게 맞아 초주검이 된 것 같다. 큰 개는 자신의 전리품처럼 때리고 툭툭 치고 있었다. 쫑이는 굶주림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쫑이의 떨림이 보인다. 쫑이는 자신의 친구가 죽어가는 것을 보았거나 외면했을 것이다. 생명의 의지는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나서게 하지만 거대한 공포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나는 두 아이를 다 데리고 나왔다. 쫑이는 물과 간단한 음식을 먹였다. 초주검이 된 아이는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주사를 놓을 수도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아져서 스스로 물과 음식을 어느 정도 먹어야 주사라도 놓을 수 있다고 했다. 차에서 애써 물을 먹여보려 했지만 마시지 못하고 흘린다. 닳은 끈이 서서히 끊어진다. 기진한 숨소리가 희미해지고 눈꺼풀은 반쯤 감긴다. 축 늘어진 몸은 가누질 못하고 체온은 차갑게 식어간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나무 아래 보금자리를 마련해줬다. 햇볕이 잘 드는 자리다. 마시지 못한 물과 음식을 조금 넣어줬다. 배고프지 마라.
쫑이는 다시 병원으로 데려갔다. 다행히 어디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 이후 집에 데려와서 키웠다. 엄마는 이렇게 어린애를 데려오면 어떻게 하냐 했다. 거둔 생명을 다시 놓을 순 없는 일이다. 쫑이는 늘 엄마의 이불속에 있었다. 그곳이 제일 따뜻한 곳인걸 아나보다. 엄마의 팔 옆에 붙어있고 옆구리에 누워잔다. 엄마가 화장실이라도 가려하면 같이 따라간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아기들은 다 똑같다.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쫑이라 지어주고 젖병에 분유를 타서 먹였다. 엄마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 쫑이는 커 나갔다. 밥 먹는 시간,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엄마 이불속에 있다. 내 손바닥의 절반만 했던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엄마의 이불은 아들에게나 고양이에게나 따뜻하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쫑이는 엄마가 누워서 티브이를 볼 때면 항상 품에 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그르릉거리며 누워있다. 덕수, 봉구, 삼순이는 이불을 덮는 걸 싫어하는 데 쫑이는 유독 하루 종일 엄마의 이불을 좋아한다. 유년기의 추억과 따뜻함은 평생의 기억이 되나 보다. 쫑이는 길 고양이 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발톱을 자주 세운다. 우당탕탕 뛰어가다 할퀴기도 하고 한번 안을라치면 발톱에 날이 서있다. 은혜를 모르는 녀석임이 확실하다. 쫑이는 길에서 난 아이라 그런지 몰라도 봉구를 종종 괴롭힐 때가 있다. 덕수에게는 괴롭히다가 여러 번 혼난 적이 있다. 다들 잘 지내는데 가끔씩 기싸움을 하나보다.
삼순이에 대한 이야기다. 삼순이는 누나가 잠시 임시보호를 하고 있다가 같이 살게 되었다. 임시보호는 2주인데 그 기간 안에 보호자가 구해지지 않는다면 안락사하게 된다고 했다. 안락사의 의미가 모호해진다. 삼순이는 암컷인 카오스다. 카오스종은 검은색 갈색 흰색 세 가지 색인 고양이 종이다. 대부분이 암컷이라 한다. 삼순이의 이름도 색이 삼색이라 그렇다. 처음에는 삼색이라 했다가 삼순이로 부른다. 삼순이는 망약 임시보호가 종료되게 되면 다음 날 시설에서 안락사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보내지 못하고 누나 집에 머물렀다. 당시 누나 집엔 덕수와 봉구가 있었고 새 식구까지 있으니 고양이가 총 셋이다. 엄마는 누나 집에 있던 삼순이를 데려왔다. 어린 아기가 가여웠나 보다. 대략 7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삼순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우리의 말에 응답해준다. 삼순아 불러도 야옹 몸을 만져주어도 야옹 같이 놀아주도 야옹. 다른 아이들은 하루에 한두 번 울까 말까 한다. 우리 집에서 나는 대부분의 울음소리는 삼순이다. 삼순이는 나를 유독 좋아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엄마에게도 잘 가지 않고 아빠에게도 잘 가지 않고 나만 좋아한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었다. 덕수의 행동반경은 내 침대 또는 엄마 침대. 봉구의 행동반경은 집안 전역. 특정한 곳이 없다. 쫑이는 대부분의 시간 엄마 침대에 있고 내 방으론 거의 오지 않는다. 삼순이는 대부분 내 방 침대에 머무른다. 나를 좋아한다. 발 밑에서 자기도 하고 안겨 자기도 하고 내 머리 옆에서 자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안는 것은 매우 힘들다. 삼순이도 장난기가 많다. 손으로 배를 긁어주고 얼굴을 만지고 쓰다듬을라 치면 깨물고 할퀴고 한다. 놀아달라는 반응인 것 같다. 잠을 자려 치면 온 몸을 돌리고 놀아달라고 장난칠 때가 많다. 고양이를 키운 이후 잠을 많이 설치게 됐다. 삼순이는 쫑이와 사이가 좋다. 쫑이가 여기저기 싸움을 걸고 다닐 때가 있는데 삼순이에게 그런 것은 보지 못했다. 가끔 보고 있으면 둘은 사이좋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서 잔다. 삼순이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암컷이라 그런지 몰라도 목소리도 가는 것 같다. 알 수 없지만 느낌이 그렇다. 삼순이는 낯가림이 심해 다른 사람이 집에 오면 꼭꼭 숨어있다. 덕수는 손님이 옆에 오면 같이 누워있을 때가 많고 봉구나 삼순이도 처음엔 약간의 경계를 하다 평소 하던 대로 한다. 삼순이는 손님이 올 때는 잘 안 보인다. 조심성 많은 고양이다. 삼순이는 입이 짧은 편이다. 간식을 줘도 잘 안 먹을 때가 많다. 이 아이의 어릴 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덕수와 봉구는 분양받았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안다. 쫑이는 추정컨데 생후 1개월도 안됐을 즈음 왔기 때문에 잘 안다. 엄마와 나는 삼순이도 어린 아기인 줄 알았다. 우리 집에 온 이후 병원에 갔는 데, 그때 수의사 선생님이 한 6개월 이상은 된 것 같고 곧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너무 어리진 않았던 것이다. 이 아이의 삶의 시작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어떻게 보호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도 잘 모른다. 어느새 보니 우리 집에 있었고 함께 살고 있다. 삼순이는 고양이중 가장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덕수와 봉구 쫑이는 사소한 문제들을 일으키지만 삼순이는 그런 것도 없는 착한 고양이다.
고양이들에 대한 설명이 길었다. 사실 더 쓸 말이 많은데 이만 적는다. 또 이야기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통칭 ‘덕봉쫑삼’이라고 부른다. 함께 살아온 날들이 많다. 살아갈 날이 더 많길 기대한다. 모래랑 사료를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