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아직도 한낮의 햇빛은 따갑다. 마치 싱숭생숭한 기분같이 선선해서 좋았다가 따가움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꼭 그런 날처럼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일이 생겼고 나는 그 덕분에(?) 아버지 차를 운전하게 됐다. 이십구만이나 내달린 흰색 아반떼 MD를 말이다.
무엇이든 내 것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남의 물건은 물론 심지어 가족의 물건에도 욕심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버지께 들은 말 중에는
'다른 자식들은 아버지 차로 몰래 운전도 한다던데 너는 전혀 안 그러더라?'
옳고 그름 따위로 구별지을 수 없지만 남자라면 특히, 자식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보편적 일에 나는 반대인 사람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맞다. 나는 청개구리 같은 성격으로 항상 반대로 생각하곤 한다. 아무튼 타의적으로 하게 된 운전은 조금씩 자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거의 3주를 출퇴근과 아버지의 병원, 치과를 다녀오는데 이용했다. 전에 비해 살 떨리는 기분은 들지 않았고 무던히 내 갈 길을 가기 쉬워졌다 말할 수 있겠다.
오토바이를 타던 때처럼 도로에는 교통 흐름이 존재한다. 제한속도가 정해져 있지만 대부분은 다수가 암묵적으로 도로마다 만들어둔 속도와 관습 같은 게 교통 흐름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차 간의 거리는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결정되고 좌우 차선 변경 또한 속도에 따라 진입의 허용과 거절이 결정된다.
차선 변경은 차의 노란 깜빡이로 진입 의사를 상대에게 표현한다. 여기서 속도는 앞뒤 차와 같아야 하며 둘 사이로 들어갈 거리가 내 차의 길이보다 넓을수록 좋다.
대체로 좁은 경우 진입 의사가 거절될 확률이 높다. 조금 여유롭고 배려심이 깊은 뒤차 운전자가 속도를 줄여 진입을 허용해 주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을 일이 더 잦다.
만약 거절을 당했다면 다른 길로 우회하거나 속도를 줄여 거절당한 차량을 앞으로 보내고 그 뒤로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엄연히 도로에는 비언어적 표현이 존재하는 것이다.
속도와 깜빡이, 이 두 가지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급하지만 않으면 비언어적 표현만 가지고도 운전자들은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눈치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게임을 이해하지 못한 운전자들은 언젠가 사고를 당하거나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운전이라는 것이 인간관계처럼 적절한 거리와 속도를 상대에 어떻게 맞춰주느냐가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