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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J 유가장 Feb 18. 2020

꼰대의 마지막 이야기

회사를 10년 다녀보니 답이 나온다

이상하게 회사에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이 혼나는 소리가 잘 들린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운 채 그 이야기를 엿들 수밖에 없다. 혼나는 친구들을 보면 생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술집도 못 가고 저 녀석 집에서 혼술 하겠구먼.’


왜 굳이 사람 많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또 이런 이벤트가 가끔 있어줘야 회사 생활이 나름 재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도 한심하긴 하다.


그런데 그 이벤트의 주인공이 오늘은 나다.

무엇 때문에 우리 꼰대 부장이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한 손에는 문서가 있는데 아마도 나에게 집어던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부장이 나를 보며 말한다. 

“몇 번을 말해? 몇 번을 수정할 거야!”


요즘이 어떤 시국인데 마스크도 안 쓰고 침까지 미세하게 튀어서 그 침을 피하느라 뭐라고 했는지 잘 듣진 못했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일단 대답을 했다.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근데 뭘 수정하라는 거야?’


고민에 빠졌다.

‘그냥 욕을 먹고 물어봐?’

‘아니야. 저 꼰대 아직 손에 문서를 들고 있는 게 한번 날려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근데 부장님… 어디를 수정을… 어떻게…”


느낌이 안 좋다. 꼰대의 대답이 예상이 된다. 

“미쳤니?”

“다시 한번 말해볼래?”

“대학교 졸업했니?” 등등.


근데 꼰대의 표정이 오히려 인자하게 변했다. 이건 정말 소름이다.

‘뭐지?’


왜 공포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주인공을 잡으러 갈 때, 나쁜 사람의 표정은 종종 착하게 변하고 하지 않는가. 꼰대님께서 자그마하게 목소리를 낮추셨다. 방금 전까지는 기분이 나빴는데 이제 느낌이 호러블하다.

“있잖아… 내가 오늘 유 과장 문서를 봐주는 마지막 날이다. 다음 부장이 왔을 때도 똑같은 실수 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내가 오늘 조금 더 예민하다.”


월급쟁이 12년 차가 되면서 느끼는 것인데 회사에서는 앞 날을 함부로 예측하면 안 된다.

내가 12년을 다녔다고 해도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다음 문장 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누군가 나에게 분명히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화를 받아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오늘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최소한 후배한테 화를 내면서 문서 작성을 다시 하라고 시키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저 꼰대님이 나보다 더 후배를 아끼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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