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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Dec 02. 2021

평생 만날 일 있을까 했던 친구

못 본새에 너무 멋지게 컸잖아


 몇 주 전에 갑자기 안 만나던 친구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따로 둘이서' 보기엔 조금 어색하다 느꼈던 친구. 이 친구를 안 지는 10년도 넘었다.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으로 처음 만났는데, 학교가 특성화고라 3년간 같은 반에다 단체로 기숙사 생활을 해서 친구보다는 가족과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내가 기억하는 이 친구는 조용한 성격에 어떤 친구든지 웃으면서 대하는 따뜻한 모습이었는데, 맨날 보면 오히려 더 모른다고 그렇게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모습 빼고는 이 친구의 관심사가 뭐고 뭘 좋아하는지나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는 10년간 알지 못했다.


 어느 날부턴가 이 친구 인스타그램에서 카페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도 카페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가 카페 브랜딩을 한다는 거였다. 친구 피드에 친구가 직접 그린 메뉴판이 올라오기도 하고, 브랜딩 했다는 카페 인테리어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바리스타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카페를 좋아하는 걸 넘어서 그런 걸 일로 하다니 너무 멋있잖아. 나도 몇 년 전부터 카페 문화에 흠뻑 빠져있던 참이라 그 친구가 하는 일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발 들인 카페가 많아지고 커피 사진을 찍는 게 좋아서 쌓아두다 보니 나 혼자 보기에 아까운 컷들은 종종 올리곤 했는데 그걸 본 친구가 그게 어딘지 물어오기도 했다. 서로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카페를 주제로 한 이런저런 사진들이 쌓이는 걸 지켜보면서 조그만 대화가 계속 오갔고, 점점 궁금증이 커져가던 때 다른 일로 잠깐 카톡 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약속을 덥석 잡아버렸다.


 어디서 볼지도 별 고민 없이 정했다. 친구도 합정에 사무실이 있고 나도 마침 망원에 사니까, 장소는 친구가 브랜딩에 참여했다는 홍대입구역 근처 카페로. 카페는 인기가 많아서 웨이팅이 있었다. 먼저 도착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도착한 친구는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내 옆에 털썩 자리를 잡고 요즘에는 뭘 하고 지내는지 근황 토크를 시작했다. 나나 이 친구나 피차 바빠서 고등학교 졸업 후 못 본 세월만큼 쌓인 이야기가 가득이었다. 만나자마자 술술 이야기를 풀다 보니 금방 자리가 났고, 조그맣고 예쁜 디저트와 드립 커피를 시키고는 자리에 앉아서 또 쉬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친구랑은 동창이라 그런지 앳된 모습을 하고 서로 앳된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어느새 10년이 지났으니 대화 주제도 나이만큼 성숙했다. 다녔던 직장, 결혼에 대한 생각, 요즘 하는 일들, 세상 바뀌는 속도가 무섭다는 이야기 등. 고등학교에서 같은 전공을 하고 졸업해서 분명 각자 다른 길을 걸었는데, 어떤 주제를 이야기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는 게 너무 신기했다. 왜 여태 안 친했던 건지 의문을 품을 만큼 너무 잘 맞아서 놀랐다.(물론 내가 혼자 느낀 감정일 수 있다.ㅎㅎ) 돌고 돌아 카페라는 주제로 만나서 물꼬를 텄는데 그 밖의 것들로도 이 정도로 공감할 수 있다니! '관계가 변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처음 느끼는 감정에 머릿속에 느낌표가 뜨는 경험을 했다.


 어쩜 MBTI는 서로 반대. 나는 ENTJ고, 친구는 ISFP. 그럼에도 관심 있는 키워드가 겹치는 게 정말 많았다. '자기 계발', '퍼스널 브랜딩', '카페', '마케팅'. 크게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까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꺼낸 주제에도 모르는 브랜드가 없고, 모르는 유튜버도 없고, 모르는 책도, 카페도 없었다. 무아지경으로 이야기하다 친구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일을 같이 해보기로 했다. 이만큼 맞는 사람은 처음 봐서 너무 신났었나 보다. 3시쯤 만났는데 8시까지 오디오가 비질 않는 게 너무 웃겨서, 헤어지는 순간에도 웃음이 비식비식 삐져나왔다.


 이래서 사람을 만나는가 봐. '코로나 때문에'라는 말로 무수하게 놓쳤을 인연들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몰랐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좋아하는 걸 더 떠벌떠벌 광고하는 나로 재탄생했다. 이전에는 느낌 있게 나온 사진에 감각적인 몇 마디 말을 붙이는 게 멋이라 생각했다면, 이제는 이게 어째서 좋았고 무엇이 내 심금을 울렸는지를 상세히 적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다 보면 또 어떤 사람이 내 레이더망에 포착될지 모르지. 또 우연찮게 만나게 될 신선한 인연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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