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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Jan 15. 2022

저는 들깨 알러지가 있어요

들어있으면 있다고 알 수나 있었으면!


들깨 알러지인 걸 어떻게 알았냐면


 태어나서 처음 들깨 들어간 음식을 맛본 건 어린 날 고모 손을 잡고 갔던 감자탕집이었다. 고모 딴에는 놀러온 조카 좋은 것 먹이겠다고 데려갔던 맛집이었는데 그 마음이 무색하게 가게 화장실에서 막 먹은 감자탕을 다 토해내고 나서야 속이 편해질 수 있었다. 너무 어렸어서, 그리고 들깨를 먹은 게 그 때 처음이었어서 그저 속이 안 좋아 체한 걸로만 생각했지 이게 알러지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두 번째 기억은 명절 어느날. 친척들과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명절 선물로 받은 강정 세트를 하나 하나 맛 보고 있을 때였다. 아마도 들깨 강정이었을 검은 강정을 집어 먹고 나서 입 안이 아리면서 까끌까끌해지는 느낌과 함께 속이 엄청나게 불편해졌고, 그걸 본 작은 고모가 체했나보다며 등줄기를 누르면서 마사지해주었다. 그랬더니 급작스럽게 토기가 올라와 마룻바닥에 그대로 우웩. 이 때에도 그냥 명절 음식을 너무 많이 먹고 체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학교 급식에 토란국이 나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처음 보는 음식이니 저항 없이 몇 술 떴고, 점심을 먹고 나서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역시나 게워냈다. 이 순간에도 막연히 토란 때문에 안 좋았구나 생각했지, 토란국에 보통 들깨가루가 들어간다는 걸 안 건 나중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순대국 먹을 일이 늘어났다. 들깨 알러지를 알아챈 건 이 때부터였다. 순대국집 중에서도 들깨가루를 미리 넣어주는 곳, 알아서 넣어먹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들깨를 넣어서 주는 순대국을 먹을 때마다 국에 닿은 입술이 부르트고 속이 울렁거리는 걸 보고 처음으로 이게 알러지구나 깨닫게 됐다. 



들깨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다 

 

첫 회사를 다닐 때 평일 반차를 쓰고 오후 비행기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당일에 들깨 때문에 사달이 날 뻔한 적도 있다. 문제는 점심에 먹었던 백반집 반찬이었다. 난 버섯을 좋아하는데 반찬 중에 하필 버섯 무침이 있었고 또 하필 그 버섯 무침은 들깨를 넣고 무친 거였다. 들깨가 들은 지도 모르고 꽤 많이 집어먹어서 식당에서 회사에 돌아가자마자 사색이 됨과 동시에 또 게워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좀 늦은 저녁 비행기였다는 것, 그래서 점심 먹자마자 퇴근해 병원에 갈 시간이 있었다. 내과에서 처방 주사를 맞고 엎어져 쉬고 나니 공항에 갈 힘이 생겼고 무사히 뜰 수 있었다.


하루는 친구랑 저녁에 술을 한잔 하기로 해서 한 양꼬치 집에서 만났다. 특이하게도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중국식 양꼬치집이 아니라 일본식 양꼬치 집이었는데 양꼬치를 집어먹을 때마다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 이번에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양고기에 양념이 된 것도 아니었고 접시에 있는 가루 양념을 찍어먹은 것뿐인데. 깨달음은 화장실에서 왔다. 위장을 비워내고 차근히 생각해 보니 의심할 구석은 찍어 먹던 가루양념 뿐이었다.  혹시나 싶어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이번에도 역시나 범인은 들깨였다.



기름은 되고, 깻잎도 되는데 가루만 안 된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종종 직접 짠 들기름을 주실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직접 쑤어 주시는 묵을 들기름으로 무쳐서 먹는데 희한하게도 같은 재료로 만든 들기름은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잘은 모르지만 기름을 짜내면서 들깨 껍질이 걸러지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참기름보다도 진하고 향도 더 고소한 들기름을 못 먹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또 재밌는 건 들깨의 잎인 깻잎도 괜찮다.(이거 모르시는 분들 의외로 있더라!) 들깨가루보다 깻잎 들어가는 음식이 훨씬 많은데 정말 불행 중 다행이다. 내 인생에서 떡볶이 위에 올리는 깻잎, 고기 넣은 깻잎전, 쌈 싸먹을 때 먹는 깻잎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이쯤 되니 들깨의 어떤 성분이 알러지를 일으키는 건지 정말 궁금해진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 


"혹시 들깨가루 들어간 음식이 있을까요?"


이제 이 질문은 백반집, 순대국집에 가서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 유별난 알러지를 알고 있는 가족, 친구들이 식당에 먼저 물어봐 줄 때도 있다. 어떤 가게에서 이 질문을 했다가 의심의 눈초리를 받은 적도 있다. 식당 레시피를 훔쳐가려는 쁘락치로 생각하신 것 같았다. 머뭇거리면서 답을 안 하시기에 들깨 알러지가 있어서 그렇다라고 말씀드렸는데도 의아한 눈빛을 거두시지 않던 게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나만 이런 걸 묻나 싶어서. 어디 들깨 알러지 있는 저 같은 분 없나요?


사실 들깨 말고도 의심되는 알러지가 몇 가지 있다. 특히 수박처럼 씨 많은 과일을 먹으면 들깨 정도의 과격한 알러지 반응은 아니지만 입술이 따갑고 붓는 게 느껴진다. 수박, 참외, 키위, 메론 등.....거 참 까다롭네. 알러지 때문에 매번 고생하면서도 알러지 검사 비용이 만만찮아서 아직 시도해보지는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해 봐야 하나 원. 


더이상의 갑작스런 들깨 서프라이즈는 더이상 없기를 바라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누군가는 알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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