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업체 따라잡기
하지만 때가 되면 달도 기우는 법, 20세기 말쯤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방위산업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제는 방산업체도 시장의 경쟁 원리에 맡겨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경쟁력 강화 논리는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
-. 첫째, 한 번 (지정된) 방산업체는 영원히 방산업체다. 즉 기득권에 눌러 앉게 된다.
-. 둘째, 따라서 이들은 비용절감이나 기술개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적정이윤이 보장되니까 경영개선에 노력하지도 않는다.
-. 셋째, 또한 신설기업이나 중소업체가 방위산업에 뛰어들기에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그 결과, 기존 방산업체의 ‘그들만의 리그(league)’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위산업 즉 방산업체 선정도 완전경쟁체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렇게 갑론을박으로 한동안 첨예하게 대립되다가, 드디어 2006년에 이르러 정부는 전문화·계열화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한다.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에 따른 충격을 방지하기 위하여 약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8년 12월 31일부로 전문화·계열화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방산물자의 복수지정 확대 등이 가속화됨에 따라, 방산업체 상호 간의 경쟁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또한 방사청에 정부 경제부처의 관료들이 투입되면서 방위산업도 안보논리보다는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해졌다. 이른바 ‘국방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정부 방침이 실현된 것이다. 이러한 업체 간 경쟁 논리는 지금까지도 방위산업의 주요한 정책 방향으로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는데 우선 방산업계 전반에 유행처럼 퍼져 나간 저가 수주다. 이는 아무리 제 값을 받지 못하더라도, 생산라인을 멈춰 서게 하는 것보다 제조설비를 돌리는 게 그나마 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원래 자기 품목을 상대 업체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자존심도 한 몫을 했다. 이미 전문화·계열화 당시 각 업체들이 자기 지정품목에 나름의 노하우(know-how)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 경쟁원리는 결국 업체 간의 중복 투자를 야기 시킨다. 경쟁업체 간의 투자 확대를 유발하고 복수 개발을 유도하는 등 국가 차원의 비용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상대적으로 방사청 등 관계기관 입장에서는 예산절감이라는 성과를 달성한다). 그 결과 수주에서 탈락한 업체는 투자 설비를 아무데도 활용할 수 없는 그야말로 쪽박을 차게 되는 구조다. 이런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발주물량을 50 대 50으로 쪼개주기도 한다. 그래서 방산업체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시장경쟁을 추구했던, 본래의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