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익숙한 곳에서 이방인처럼
머물고 싶었지만,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정착이라는 말은 언제나 나와 거리가 멀었다. 광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전주로 이사까지 마쳤지만,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떠돌며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가족 행사까지 겹치면서, 2022년의 끝은 무겁고 어수선하게 흘러갔다.
쌓인 스트레스는 나를 짓눌렀고, “이러다 진짜 죽겠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맴돌았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가진 게 없으니 어디에 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결국, 가장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시골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마음은 여전히 어디에도 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돈도 없었고, 너무 오래 멈춰 있었다. 처음부터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 있다가 다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생활을 위해서라도 일단 무언가를 해야 했다. 당장 큰돈이 아니더라도 숨통을 틔워줄 만큼은 벌어야 했다. 전주로 다시 나가려면 준비가 필요했고, 그 준비를 위해선 먼저 손에 쥘 것이 있어야 했다.
시골 일자리 지원센터에 들렀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명확했다. 고졸, 자격증 없음, 편의점·마트·식당 아르바이트 경력 전부. 그때 마침 고속도로 휴게소 매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단한 간식을 조리해 파는 오픈형 매장이었고, 청소와 위생 관리가 주 업무라고 했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면접 본 날 바로 출근 일정이 잡혔다. 그렇게 12월부터 일하게 되었다.
그날 밤,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이제 뭐라도 시작하면 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독감에 걸렸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몸은 처지고 마음도 함께 가라앉았다. 움직이기 전보다 더 깊이 꺼진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누워 있는 시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정신 좀 차리자. 서른이 넘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몸이 조금씩 회복되자 마음도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더는 이렇게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 그래서 다시,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예정대로 휴게소에 입사해 시골에 머물면 생활비와 월세 부담을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용적인 판단.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구해두면 출퇴근이나 타 지역 이동도 가능하겠다는 계산. 그런 현실적인 생각들이 하루하루를 밀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애증의 장소였던 이곳에 눌러앉아 있었다. 그 애증 속에서 다시 버티고, 살아내야 했다.
그래서 이 글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멈춰 선 자리에서 조금씩 나를 다시 세워가려 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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