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막은 하루
12월,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새벽 7시 20분, 출퇴근 승합차에 몸을 싣고 휴게소로 향했다. 창밖에는 논과 밭이 길게 이어졌고, 하얀 입김 사이로 새벽빛이 번져왔다. 풍경은 익숙했지만, 마음은 낯설었다.
점심 30분, 저녁 30분, 쉬는 시간 1시간. 저녁 7시 45분이면 다시 승합차를 타고 퇴근했다. 주말 근무까지 포함해 주 5일 근무.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점이 처음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낯선 환경과 나이 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어색했고, 조금은 겁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 언니는 내게 의지가 되었다.
사무실에는 다양한 직급의 직원들이 있었다. 그중 두 분은 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고, 동시에 남동생 직장 상사의 친구들이기도 했다. 시골이 좁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장까지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회사 안에서조차 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분은 늘 친절하고 대화도 자주 나누며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정신적인 지주 같은 사람이었다. 또 다른 분은 당근과 채찍이 확실한 스타일이었다. 유독 나에게만 차갑고 매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속에 신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골에서 일한다는 건 각오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하면 금세 소문이 퍼졌다. 괜히 집안 망신을 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옳고 그름을 말하거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숨 막히는 듯한 좁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늘 긴장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업무는 종합세트 같았다. 간식 조리 코너를 시작으로 편의점과 카페까지 한 달 단위로 로테이션을 돌았다. 석 달이 지나 처음 시작했던 간식 코너로 돌아왔고,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코너는 휴게소 주방 다음으로 청소량이 많은 자리였다. 하루 10시간, 시작도 청소였고 끝도 청소였다. 마감 청소, 주간 청소(기름 교체 및 청소, 후드 청소, 성에 제거, 온장고 청소), 월간 청소(대청소)까지 이어졌다. 그만큼 정기·불시 위생 검사가 많았다. 누가 보아도 청소업체에 맡겨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레를 끌고 냉동창고로 가서 재료 박스를 나르고, 선입선출 원칙에 따라 정리했다. 유통기한을 체크하고 재고와 정산을 맞추는 일도 빠지지 않았다. 성수기 주말은 전쟁터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루가 흘러갔다.
그래서 파트너와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와 함께 일할 파트너는 50대가 넘은 남자분이었다. 첫날 인사를 하고 호칭을 물었더니, 본인을 ‘선배님’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나는 그대로 따랐지만, 어쩌면 그게 잘못된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달 동안은 무난했지만, 로테이션을 마치고 돌아온 뒤부터 그는 핸드폰만 붙잡았다. 청소도, 손님 응대도, 식사와 쉬는 시간조차 지키지 않았다. 바쁜 주말에는 개인 전화를 받느라 근무지를 이탈하기도 했다. 결국 고생은 내 몫이었다. 혼자 일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났다.
더 답답한 건, 그가 관리자에게 가서는 늘 내 험담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작 내가 대화를 시도하면 “너랑은 대화 안 해”라며 선을 긋고 돌아섰다. 같은 팀이라는 생각은커녕, 짐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홧김에 담당 관리자에게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며칠 뒤, 가족에게 말도 못 했다며 사직서를 없던 일로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 이야기를 관리자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이모들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모두가 고생했던 걸 알면서도, 정작 상황이 벌어지자 나에게만 인내를 요구했다.
“나이 먹은 사람이 갈 곳이 없다는데 불쌍하지 않니?”
“어린 네가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될까?”
“다음엔 안 그런다는데, 한 번만 용서해 줘.”
그때만 해도 나는 진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 입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반복되는 말속에서 귀에는 윙윙거리는 이명만 맴돌았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물뿐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리자 더 이상의 말은 멈췄다. 눈물은 상대의 입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다만 눈물도 아무렇게나 흘려서는 안 된다. 말의 뉘앙스, 손의 움직임, 눈물의 양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그날 나는 그렇게 이모들의 입을 막았다.
소문을 듣고 상황을 알게 된 주임님이 나를 불러 말했다.
“같은 월급 받으면서 너무하네요. 속 사정은 본인만 아는 거지, 가족도 모를 겁니다. 그런데 타인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또 그런 말 나오면 참지 말고 바로 말씀하세요. 어차피 우리는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 들어본 참된 관리자의 말이었다. 차갑기만 했던 태도 속에서 드물게 드러난 진심에, 나도 모르게 위안을 느꼈다.
그렇게 파트너가 그만두고 새 파트너를 구하기 전까지는 각 코너에 있던 이모들이 임시로 나와 함께 일했다. 모두가 피하는 자리였고, 결국 나는 그 책임을 대부분 떠안아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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