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직장”이라는 말
여름휴가철이 다가오자 휴게소는 점점 분주해졌다. 햇빛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고속도로 위를 가득 메운 차량들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매장은 늘 북적였고, 곳곳에서 쏟아지는 소음과 열기 속에서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휴게소에는 주방과 외부 매장까지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내가 속한 곳은 간식코너, 편의점, 카페였다. 세 코너는 모두 두 사람이 한 조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내 파트너가 그만둔 뒤로는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관리자는 어쩔 수 없이 편의점이나 카페 직원을 번갈아 내 코너로 보내야 했다.
그때마다 불만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기름 앞에 서는 것도, 일회용품 규제로 손님들과 부딪히는 것도, 술에 취한 손님을 제지하는 것도, 예고 없이 내려오는 위생검사에 대비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았다. 다른 코너에서 온 이모들은 하루이틀 버티다 불평을 쏟아냈고, 관리자들은 그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 휴게소는 근로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수습기간 3개월을 제외하면 모두 고정 근무였다. 그런데 다시 로테이션이 돌아가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파트너의 빈자리가 길어질수록 나를 향한 뒷말도 늘어갔다.
결국 관리자들은 오래 고민하다가 새 직원을 들였다. 편의점에서 일하던 이모의 친구였다.
주저한 이유는 그 편의점 이모의 근무 태도 때문이었다. 내가 로테이션을 돌던 시절, 그 이모는 늘 “여긴 꿀 직장이야”라며 자랑했다. 태양광 사업 덕에 돈이 필요 없고, 여행도 자주 다니며, 백화점 쇼핑도 마음껏 한다며 휴게소 일은 심심해서 시작했는데 이만큼 편한 일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카운터에서 계산만 보고, 매대 정리나 청소 같은 기본적인 일은 하지 않았으니 일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야간 근무자들과 주임들에게 늘 지적을 받았다.
관리 주임님은 새 파트너에게 나를 성실하고 착한 직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보였던 건 내가 세운 철칙 덕분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을 정했고, 그 선만 넘지 않으면 웬만한 일은 참고 넘겼다. 갈등을 피하며 버티는 편이었고, 그 모습이 관리자들에게는 성실함으로 비친 것이다.
그러나 그 평가는 오히려 선입견이 되어 돌아왔다. 새 파트너는 내 말을 끊기 일쑤였고, 자신은 고학력에 관리직으로 일하다 퇴임했으며 돈도 많지만 심심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친구가 여기가 꿀 직장이라고 해서 큰 고민 없이 들어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체력 소모가 큰 일은 처음이라며 힘들어했고, 나에게는 이렇게 요구했다.
“나는 나이가 많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 배워야 하는 것도 알지. 하지만 너는 동료고 젊으니까 내 정신이나 마음은 좀 케어해 줘야지 않겠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왔지, 심리상담사가 아닌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제 의무가 아닙니다. 일은 같이 하는 겁니다. 물어보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는 대화를 끊었고, 마침내 손님들 앞에서 내게 “사이코패스”라고 소리쳤다.
스트레스는 점점 커졌다. 일을 알려주면 듣지 않고 잘라버리면서, 관리자에게는 “모른다”라고 답했다. 사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나를 무시했다. 출근길이 싫어졌고, 회의가 열리면 책임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눈을 감는 것이 무서워진 것도 오랜만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출근길에 일어났다. 편의점에 시재금과 출입문 열쇠를 받으러 갔는데, 편의점 이모가 시재금 가방을 내게 던지며 욕을 퍼부었다. 나도 참지 않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라고 맞받아쳤다. 이모는 “애 좀 봐, 어른 앞에서 눈 부릅뜨고 어쩌라고!”라며 소리쳤다. 옆 카페 코너 이모들이 나왔지만, 나는 오픈 준비를 위해 곧장 관리자에게 보고했다.
다음 날, 출입문 잠금장치는 도어록으로 교체되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던 주임님들이 내린 조치였다. 순간, 이곳이 과연 일터인지 놀이터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참다못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몸무게는 44kg까지 빠졌다.
새 관리 주임님이 부임하면서 근무표는 나이 많은 이모들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짜였다. 그런데도 불만은 내 몫이었다. 식사시간이 겹치면 내 욕을 했고, 문을 쾅쾅 닫고 다니기도 했다. 손가락이 문에 끼일 뻔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주임님들과 위생 담당님이 늘 챙겨주었기에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결국 파트너 교체를 요청했다. 마침 동료 언니도 같은 이모와 마찰로 지쳐 있었고, 언니가 내 코너로 오게 되었다.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나를 향한 뒷말과 긴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편의점 이모가 왜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세웠는지는 그 무렵에야 알게 되었다. 자기 친구를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친구가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혼이 나니 화살이 나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또 하나는 주임님들이 내 또래라는 점이었다. “어린년이 벌써부터 꼬리 치면서 내 친구 욕보였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오래 일하고 싶었기에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했지만, 어떤 이모는 쌍욕을 하며 나를 무시했고, 다른 이모는 내가 무섭다며 거절했다. 삼촌들과 이모들에게도 방법을 물었지만, 처음에는 위로하다가 결국 몇몇은 나를 욕하기 시작했다. 서로 험담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험담만 퍼뜨렸다. 나이가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론은 단순했다. 참고 일하거나, 그만두거나.
관리자들의 태도도 제각각이었다. 자주 대화하던 주임님과 담당님은 “그냥 들이받아라, 싸워라”라고 했고, 예전부터 무섭게 대하던 주임님은 아예 “근무자들과 대화하지 말라”라고 했다. 극단적인 말이었지만, 그들이 몇 년간 버틴 끝에 내린 결론 같았다.
갈등이 매장 안에서만 끝났다면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손님들이 머무는 야외 테이블과 정자에서, 술을 둘러싼 마찰이 매일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쪽이 더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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