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

거창한 꿈보다, 살아냈다는 사실을 남기고 싶다

by 지화


아버지는 나에게 추가 공부 대신 사회를 먼저 배우라고 하셨다. 그 말에 처음으로 선택한 자리가 계산대였다. 그곳은 나를 단련시키는 무대이자, 세상의 첫 교실이 되었다. 억울한 순간도 있었고, 웃으며 넘겨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때는 그저 버티는 일로만 여겼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경험이 내 글의 밑거름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내 삶을 별것 아니라고 했다. 학벌이 특별한 것도, 눈에 띄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서 있던 자리와 그 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그 속에는 수없이 부딪히고, 상처받고, 또 견디며 버텨낸 내가 있었다. 그 무렵, 여동생 같은 후배가 불쑥 내게 말했다.
“언니, 그냥 인생을 글로 써보는 게 어때?”
나는 웃으며 흘려버렸지만, 그 말은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남들이 보기엔 별 볼 일 없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살아냈다는 흔적이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 블로그를 열었다. 처음엔 부수입을 기대했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글을 쓰던 공간은 낙서장에서 기록용으로, 그리고 때로는 유서 같은 자리로 바뀌었다. 웃지 못할 순간들도, 흘려 적은 마음의 기록들도 조금씩 쌓여 갔다. 이상하게도 글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단지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즈음 브런치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나를 끌어당겼다. 용기를 내어 지원했지만 여러 번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그때마다 ‘내 글이 별 볼 일 없는 건가’ 싶어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래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몇 번의 좌절 끝에, 벚꽃이 피던 계절 합격 소식을 받았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깨달았다. 계산대 너머에서 마주했던 표정들, 억울함을 삼키며 버텨야 했던 말들, 그 사이사이에 스며 있던 따뜻한 순간들까지, 모두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 삶을 하찮게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그 모든 평가와 무관하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증명하는 일이다. 내가 분명히 살아 있었고, 그 시간을 건너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작가가 된다는 건 거창한 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단순하다. 유명 작가가 되거나, 수많은 독자를 거느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낸 순간들을 글로 남기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나도 그랬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게 내가 꿈꾸는 작가의 자리다.

내 글은 화려하지 않다. 문장을 세련되게 다듬지도 못한다. 하지만 분명히 내 안에서 흘러나온 삶의 조각들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이고, 내가 사라진 뒤에도 작은 목소리로 남을 기록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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