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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배의 생각나눔집 Oct 25. 2020

중독의 서사

중독의 역사를 알면 중독에 대한 대처법이 보인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얻고도
과거에 가졌던 것을 바라기 때문에 몰락한다


담배

농경 사회가 충분히 정착되고 나서 벌어진 일들은 좀 더 명확하다.
인간의 쾌락에 도움이 되는 식물들이 빠르게 전파되었는데.
그 전파 속도는 대부분 주식용 곡물보다 더 빨랐다.

노동집약적이고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작물인 담배가, 아메리카 대륙의 옥수수와 콜럼버스 교환 이후 아프리카의 수수나 아사아의 쌀 같은 영양가 있는 곡물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자 이안 호더는 담배를 인간이 걸려든 덫이라 불렀고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사치의 덫이라 명명했다.

유용한 식물과 동물을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되자 세계 경작지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단조로워졌다 쾌락과 편의성의 추구는 생물 다양성의 적이 됐다.

가장 보편적인 위안이 된 것은 담배였다.
농부들은 다른 작물 대신에 담배를 재배함으로써

열 배나 많은 돈을 벌었다.

흡연의 매력은 신속하고 반복적인 뇌 보상이다.
흡연은 한 번 큰 보상을 주기보다 작은 보상을 자주 제공하여 동물의 행동을 조형하는 효율적인 학습형태이다.

인정하건데 흡연만큼 바르고 반복적인 형태로 뇌에 쾌락적 보상을 주는 행위도 드물다
하지만 타이밍도 한몫했다. 1640년대와 1650년대는 초기 근대 세계사에서 최악의 시기 중에서도 최악인 20년으로 평가된다.

현재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담배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역사가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으며 지금까지 담배가 살아남은 것은 필연이었던 것다.


문명의 대가 쾌락

인류가 최근 250년간 급속한 물질적 진보와 125년간의 건강 개선 및 수명 연장을 얻기까지 과거 1만 1000년 동안의 고통과 짧은 수명을 견뎌야 했다는 의미다.

이같은 트레이드오프 의 불균형 때문에 인류학자와 역사가들은 농업 기반의 문명을 역사에서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로 보게 되었다.
농업 기반의 문명은 ‘역사상 가장 긴 주택 담보 대출’로 비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집을 온전히 소유할 때까지 그 길고 고된 세월동안 어떻게 휴식을 취했을까?
그들은 새롭게 발견되어 점점 널리 보급되는 쾌락을 이용했다.
힘든 수확철의 술, 장거리 이동 전의 신선한 코카나무 다발, 게임과 춤이 있는 축제,
이 모든것이 보상과 탈출의 수단이었다.


쾌락의 대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개혁가들의 동기와 배경이 무엇이엇든지 간에 악덕과 관한 세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만 말해도 충분할 듯 싶다.

첫 번째 깨달음은 기술이 악덕이 판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중독은 산업화된 환경에서 더 위험했다. 산업화 자체가 악덕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두 번째 깨달음은 상업적 악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이고 정치적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악덕이 과거에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개인에게 해롭고 사회적으로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변연계 자본주의

선한 쌍둥이와 사악한 쌍둥이는 원래 한 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이 상품을 악덕으로 바꿀 수 있게 된 우연한 역사적 시점에 결합했다.
때때로 이 과정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변연계 자본주의가 비극인 것은 인간의 본성이 일반적으로 무해한 상업의 원칙에 악의적인 예외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문명의 대가는 담보 대출금 이자와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문명의 혜택은 나중에 산업화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과학과, 기술, 자본주의가 말 그대로 제품을 인도하게 되었을때 얻게 되었다.

탄광에서 힘들게 일하거나 화로에 석탄을 퍼 넣는 임금 노예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변연계 자본주의는 한 가지 결정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아무리 공정하고 질서 정연해도, 생산이 개선되어도,
사회적 결과가 더 좋아지기 보다는 더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건  잘막더니 이건  막질 못했어?

개혁파, 정부, 국제기구들은 약탈이 심한 외부효과를 초래하는 다른 약탈적인 시스템을 저지시켜왔다. 왜 변연계 자본주의만을 막지 못하는가?

첫째, 변연계 자본주의는 당대 인구 중에서 모든 사람의 노예를 만들거나 죽인 적이 없었다.

둘째,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개혁가들과 정부들이 분명히 변연계 자본주의를 막으려고 했고, 특히 그것이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 그러했다.

셋째, 개혁가들은 가까스로 만들어낸 모든 장애물에 대해 그들 자신의 장애물을 만났다.
그 결과 반악덕 진보주의자들은 점차적으로, 고르지 않게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


기업의 관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연계 자본주의는 필수인가?

이 모든것의 역설은 사업의 합리성이 사회의 비합리성을 야기했다는 데 있다.
사럽의 합리성은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집단적 해악과 비용을 초래했고, 그런 해악과 비용은 대부분 그것을 유발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패스트푸드가 주는 쾌락과 경제적 이익은 치명적인 질병, 조기 노화, 충치, 삼림 벌채, 대수층 고갈,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파괴 등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햄버거 1파운드를 생산하면 평균 25파운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발생했다.


아니다 방법은 있다!!

기업들은 신이 아니다. 그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수치를 쫓는다.
그들은 타깃이 많은 집단에서 습관적인 소비자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니즈가 바뀌고 그것이 결국 집닥적 해악과 비용을 초래하는것이 아닌
위생개혁처럼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는 행동들이 유도할 수 있게 수치를 만들수 있다면?
기업의 움직임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말은 쉽지!! 그럼 어떻게 할건데??

그러면 마지막 남은 카드는 하나뿐이다. 바로 교육이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사용자들에게 습관성 제품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가장 효과적인 경고는 조롱이다.

상업적인 언론의 자유라는 명백한 이슈 외에 또 한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교육이 가능한 수준의 차이다. 모든 사람이 충고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수세대에 걸쳐 빈곤, 무력감, 가정불화, 규제받지 않는 악덕이 일상화된 문화나 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은 위험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위와 의미 있는 직업, 배우자, 미래가 있는 사람들은 중독되거나 중독 상태에서 머물 가능성이 적다.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항공사 조종사와 의사들은 지위가 더 낮고 자원이 더 적은 사람보다 치료가 훨씬 성공적이다.
무언인가 잃을 게 있는지가 성공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럼 가진게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건데?

미래를 같이 꿈꾸며 학습해나아갈 수 있는 모임을 점점 키워나가며 탐닉에 맞서야 하지 않을까?


당신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물었다.
내 대답은 인생에서처럼 정치에서도 탐닉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공부를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 할수있는 요소가 정말많다
도서관에 무료도서 대출과 희망도서 신청시스템까지 있고 현재에는 코로나로 진행하기 어렵지만
공간대여도 할수있는곳이 참많다.

지금까지 중독의 역사를 훑어보았지만

그때와 지금 현재의 맥락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발달과 정보의 공유 및 돈이 없어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져서
위의 이야기가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릴수 있다고 생각하며

탐닉에 맞서 사람들과 연대하여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학습해나아가며 많은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탐닉에 이길 수 있는 교육수준으로 끌어올려 이겨내고 싶고
현재 하고 있는 독서모임이 이러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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