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
몇 년 째 가는 단골 미용실이 있다. 아니, 단골 헤어 디자이너가 있다고 해야 맞겠다. 스무살 중반, 히피펌이 하고 싶어서 찾은 미용실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그 땐 수석 디자이너셨고, 부원장을 거쳐 이젠 원장 선생님이 되셨다. 중간에 방황기도 있었다. 다른 미용실을 간 적도 많다. 하지만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고 몇 년만에 다시 이 선생님께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선생님은 늘 친절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머리를 자주 다듬는 사람은 아닌데, 대학원에 들어가고는 더욱 머리를 자르러 가기가 어려웠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앞머리는 금방 잘라줄 수 있으니 부담없이 오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한번은 학기 중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과 마음이 피폐한 상태로 미용실에 간 적이 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머리를 자르러 갔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앞머리 자르는 것으로라도 기분 전환 비슷한 걸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눈 밑이 시커먼 나를 평소처럼 맞아주셨고, 단숨에 앞머리를 잘라주시고는 돈도 받지 않고 나를 보내셨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낯설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전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달까. 평소처럼 밝게 웃으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 물어볼 수도 없어서 머리를 자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어쩐지 걱정스러웠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꽤 얼마 전까지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 잘 지내냐고 물으면, 바닥을 찍고 다시 조금씩 올라가는 중이라고 했다. 올라가는 중이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닥 근처 어딘가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였다. 나를 견디기 힘든 시간. 나를 아껴주기 힘든 시간. 그래도 어쨌거나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 주어진 일상에서 몫을 해야하는 시간. 숨고 싶지만 숨을 수도 없는 시간. 그런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상대도 그 어디쯤을 걷고 있다면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밖에.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울고 웃고 하면서 보통의 날들을 견뎌나갈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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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물기 가득한 계절이 오기 전 우리에게 주어지는 짧은 축복의 계절, 봄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 견디라고 했던가. 그러나 나는 여전히 쓸쓸한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날도 많다. 봄을 즐기는 사람들이, 노래가, 거리에 가득해도 내 마음은 긴 겨울 속에 있을 때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봄을 맞아야 하니까. 너의 봄이 지금일 때 내 봄도 지금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런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 너무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면 혹은 몰아치는 눈보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면 나 또한 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