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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농 Jul 12. 2020

때로는 성공하는 방법



7월 초. 친구가 외롭다는 연락을 남겼다. 평소 문자는 하지 않고 전화만 하던 친구가 갑자기 문자로 외롭다니.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친구의 목소리는 세상에나, 태평했다. 맥이 빠져 헛웃음 짓고는 물었다.


“너 외로워?”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외롭단다. 뜨겁지 않은 연애를 한다며 나에게 푸념을 늘어놓더니 헤어졌구나. 서로 진심으로 사귀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잘 헤어졌다는 말은 아꼈다. 친구는 헤어졌는데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래도 외로움은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툭하면 친구들이랑 노는 것 같더니 외로울 새가 있나? 순수한 궁금증에 지나가듯 툭 던진 말이 장장 50분 통화의 서막이었다.

 

장장 50분을 넘긴 통화

 

친구는 다른 지역 대학교에 가면서 새로운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모여 술자리를 갖는 쾌활한 모임이었다. 애초에 모임 구성원이었던 한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레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편의상 모임 속 친구를 A라 부르겠다. 이하 A


내 친구는 A와 비슷한 점이 많아 말이 잘 통했고, 특히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점이 잘 맞았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오글거린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남들 앞에서는 얘기도 못 꺼내고 있었는데 A와는 이야기에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A를 통해 알게 된 모임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친구는 가벼운 분위기의 모임을 받아들이고, 말하고, 즐기기가 힘들었다.


아, 이거구나. 친구가 외롭다고 느낀 이유는 남자 친구와의 헤어짐이 아니었다. 자주 놀지만 익숙지 않은 모임에 거리를 느꼈을 테다. 다들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즐거워하는데 혼자 소외감에 빠져 느끼는 쓸쓸함은 얼마나 클까. A에게 자신이 모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단다. 모임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건 약점이 되는 것 같으니, 앞으로 남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는 친구에게, 한동안 입을 뗄 수 없었다. 섣불리 “아니야.”라고 하기도, “맞아.”라고 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나도 모르는 정답을 말하기보단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순진하게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일 거로 생각한 때의 이야기이다. 도벽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속마음을 보여주었고, 내 물건을 도난당한 이야기. 비밀로 지켜달라 약속한 일을 친구가 알음알음 퍼뜨린 이야기. 자연스레 마음을 꽁꽁 닫은 이야기.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걸 깨닫고, 어릴 때부터 속마음을 말하지 않기로 연습했다. 어떤, 말하기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기 전까진 유효했다. 말하기를 좋아하던 만큼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잘하는 친구였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날, 괜히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꺼냈다. 그런 내 말에 귀 기울여 집중하는 모습에, 깊은 이야기를 해버렸다. 아, 실수했다. 대화가 끝나고 후회했다. 무심코 한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공격할 거야. 다음에는 내면을 보여주지 않아야지. 다짐하고, 또 후회했다. 다음에는 정말로 내면을 꼭꼭 감출 거야. 다짐이 무색하게 되는 횟수가 다섯 손가락을 넘어갈 때, 포기했다. 친구를 만난 지 몇 년이 지나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친구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지금 너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지.”     


속마음을 약점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중히 여겨 관계의 토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했다. 드라마 미생처럼 친구에게 정답은 주지 못해도 내 이야기를 통해 해답으로 가는 길을 보았으면 했다.

    



이후 친구는 A와의 관계를 지속하기로 했다. 모임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되, A와 멀어지지는 않기로. 쾌활하지만 불편하던 모임은 떠나보내고 자신과 잘 맞는 친구와 오랜 시간을 보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것 같다. A가 친구에게 모임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말은 모임에서 빠지라는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불편해 보이던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한 말이라고 추측되었다. 친구는 친구만의 해답을 얻었다.     


이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해답으로 가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두려운 인간관계에 실패했던 방법이 때로는 성공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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