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
교과서 밖으로 나온 거장들 : 서양미술사 600년, 65점 명화가 선사하는 '유일무이한' 만남
교과서 속에서 보았던 명작들을 직접 만나는 이례적인 기회가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바로, 서양 미술사 600년을 65점의 세계적 명화로 조망해 보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 모더니즘까지 아우르는 거장 60인의 작품(유화 63점, 조각 2점)이 모인 이 전시는 작품 가액 2조 원을 상회하는 규모 만큼이나 기획의 학술적 가치 또한 돋보이는 전시다. 특히,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개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주요 상설 컬렉션 25점을 대규모로 해외 반출한 점은 이 전시가 '유일무이한 기회'임을 방증케한다. 전시 관계자의 언급처럼, 단순히 개별 명작 감상을 넘어 서양 미술 거장들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현대 미술에 이르렀는지 그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거대한 역사적 여정을 담은 전시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입구는 비비드한 색채의 강렬한 빨강색으로 표현되어 시선을 사로 잡아 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시대를 타고 흐르는 다섯 개의 챕터 : 명화로 엮은 미술사 이야기
이번 전시는 600년의 미술사를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누고, 특히 짙은 농도의 색으로 벽면 색깔을 달리하여 시각적으로 분리한 연출했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시대는 보라색으로, 바로크 시대는 빨강색으로,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 시대는 초록색으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시대는 파랑색으로, 모더니즘 시대에는 분홍색으로 표현한 것이 그렇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채의 연출은 각 미술사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게 하면서도, 각 챕터마다의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섬세한 기획력을 보여줬다.
하나. 르네상스: 신(神)의 영역에서 인간(人間)의 영역으로
전시의 시작은 14세기부터 16세기 이탈리아에서 꽃피운 르네상스이다. 고대 철학의 재해석과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그림 속 인물들은 비로소 원근법과 사실성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그림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회화는 합리적인 원근법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 배운 키아로스쿠로 즉, 밝음과 어둠을 뜻하는 단어의 합성어이자 회화나 드로잉에서의 명암법, 스푸마토 즉, 연기가 낀 듯한 부드러운 명암 처리 같은 기법들로 3차원적인 깊이감, 즉 '환영'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와 같이 인체를 이상화하여 완벽한 균형미를 추구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달리, 보스처럼 일상과 개별적 유사성에 초점을 맞춘 북유럽의 독자적인 영역을 비교하며 볼 수 있는데, 이것 또한 관람 중 하나의 재미가 된다.
둘. 바로크 : 정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극적인 표현
다음 챕터는 17세기 바로크 시대로 넘어간다. 르네상스의 차분하고 완벽한 균형미는 사라지고, 화면 가득히 극적인 드라마와 역동성이 폭발한다. 이는, 정치적 및 종교적 격변과 경제의 다변화 그리고 유럽 열강들의 제국주의가 정점에 달했다는 시대적 배경도 주목할 만 한다. 따라서, 이 시기는 고도로 과장된 종교 작품과 동시에 일상생활을 담은 정물화나 풍속화가 공존하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인다. 특히, 종교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과 같은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 속에서 평온하게 누워있는 어린 양의 모습이 고요함과 평온함을 주지만 어쩌면 어린 양은 하나의 제사에 바쳐질 제물을 연상케 하기에 경건함과 같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편, 페테르 파울 루벤스처럼 예술적 재능을 넘어 외교관 역할까지 소화한 거장들이 등장하면서 예술가의 위상은 단순한 장인에서 '자유 예술가', 즉 현대적 의미의 '천재'로 격상된다. 또한, 네덜란드에서 라헬 뤼스흐의 정물화가 부상한 것처럼, 예술의 시선이 점차 신흥 중산층의 삶과 가치를 담은 일상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작품에서는 식물학자이자 화가였던 라헬 뤼스흐와 최근까지 역사 속에 가려졌던 야코뷔스 프렐의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셋.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 우아한 향연과 이성적인 반발
18세기는 경쾌하고 화사한 ‘로코코’ 양식으로 문을 연다. 개인적으로는 소개되는 챕터 중 가장 화려한 장식으로 세련됨과 우아함의 끝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로코코 시대에는 특히, 루이 15세 궁정을 중심으로 화려함과 장식적인 우아함이 강조된다. 유럽 부자들이 즐긴 '그랜드 투어' 덕분에 베네치아의 도시 풍경을 담은 베두테(풍경화)가 성행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건출물과 궁전을 정밀하고 가장 색채감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해당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전시관에서 꽤 오래동안 살펴보았는데, 하나하나의 색채감과 세밀하게 표현한 붓놀림 그리고 바니시를 바른 듯이 광택감이 느껴지는 작품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을 정도였고, 작품을 보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한편, 이렇게 화려함으로 칠해진 로코코 시대를 반전하는 움직임으로 이내 화려함에 대한 이성적인 반발이 일어난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균형과 이성을 강조한 ‘신고전주의’가 등장하며 로코코의 퇴폐적인 화려함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즉, 안토니오 카노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등은 다시 엄격한 이상과 덕망 있는 가치를 추구한 만큼 그 시대적 배경의 노력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넷.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 현실의 민주화와 빛과 색채의 집중
19세기는 산업 혁명과 민주주의의 확산 속에서 예술의 주제와 형식이 급진적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정치적 갈등과 아방가르드 예술과 아카데미 미술은 전례 없는 긴장 속에 놓였다. 한편, 특정한 역사적 시기나 양식보다는 자연과 인간 경험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작품으로 끌어냈다. 귀스타프 쿠르베의 대표되는 ‘사실주의’는 신화나 왕족 대신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며, 인간의 삶 그 자체를 묘사하는 시도를 한다. 이러한 흐름은 1870년대 이후 등장한 인상주의로 이어진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아카데미의 규율을 완전히 깨고, 현실 비판 대신 '빛'과 '색채' 자체에 집중한다. 이 시기 활동한 클로드 모네의 '샤이의 건초더미'나 귀스타프 구르베의 '풍경',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와 인상주의 여성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또한, 19~20세기까지 활동한 부그로와 소로야 화가 같은 작품에서 아카데미즘과 인상주의라는 양식의 유사성과 캔버스를 가득 채운 순간적인 빛의 효과와 대담한 색채를 사용한 그들의 작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섯. 20세기의 모더니즘 : 기존 규범을 넘어선 무한한 실험의 시작
마지막 챕터인 20세기 모더니즘은 그야말로 '다양성의 시대'다. 점묘주의, 야수파, 나비파, 상징주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는 주로 역사학자들이 '후기 인상주의'로 부르는 부류를 뜻한다. 인상주의의 급진적인 단절 이후, 예술은 단 하나의 이상을 쫓지 않는다.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은 파리를 중심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길을 자유롭게 실험한다. 예술가들은 20세기 초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행보를 통해 독립적인 모더니즘의 길을 걸었다. 그 당시의 화가로, 라울 뒤피의 '화가의 집'이나 '파리의 센 강'처럼 빛과 색채에 집중하여 역동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동시에 선사하는 독특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시기에는 파블로 피카소, 메리 카사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전 세계 예술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어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며, 현대 미술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자유로운 정신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600년의 미술사 흐름을 ‘음악과 미술의 공감각적 만남’으로 본 전시
이번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특별전은 600년이라는 방대한 시간을 압축해 놓은 흡입력 있는 하나의 미술사 강의같은 전시였다. 르네상스의 완벽한 균형이 바로크를 낳고, 로코코와 신고전주의를 거쳐 사실주의 다시 인상주의와 마지막인 모더니즘까지. 마치 시간이동을 한 듯한 느낌이 드는 듯 연계된 전시를 보면서 그 흐름을 한 호흡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공감각적인 전시'라는 점이었다. 여타의 전시에도 이를 구현하지만, 전시장 내에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은 반가운 영화 음악이라 귀를 사로잡는 요소였다. 또한, 음악에 신경 썼음을 보여주는 한쪽 벽면의 글귀 즉,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 음표로 그려낸 미술사"에 대한 내용에는 정예경 음악 감독은 이번 전시의 주제인 '작품과 작품, 시대와 시대의 대화와 연계성'을 착안하여 서양 미술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점과 바로크 시대 작곡가 쿠프랭(Couperin)을 오마주한 프랑스 작곡가 라벨(Ravel)의 'Le tombeau de Couperin'을 선곡한 점이 매우 인상적인 포인트라 생각했다. 또한, 20세기 모더니즘 섹션에서 마리 로랑생과 수잔 발라동의 대화를 주제로 작곡 및 연주된 피아노곡은 위대한 두 여성 화가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도 했다. 이처럼 미술과 음악이 만나는 공감각적인 연출에서 한 관람객으로서 큰 영감을 받았다.
이 전시는 단순한 명화의 나열이 아니라, 미술사가들이 수 세기에 걸쳐 분석해 온 그림에 담은 이야기를 관람객의 눈앞에 펼쳐 보여주는 밀도 높은 의미를 가져다 주는 전시였다. 미술관이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강조한 말과 같이,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핵심 컬렉션을 통해 시대별 거장들의 원본 작품을 공개한다는 점을 물론, 직접 경험한 작품들 속에서 느낀 서정적 고요함과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발견하는 즐거움과 그 인상은 배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