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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kukuna Jun 11. 2021

위기는 익숙함뒤에 숨어서

낯설고 두렵던 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위기가 따라붙는다. 위기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게 두 눈을 가린다.

기회는 '나 여기 있소' 라는 티 한번 내지 못한 채 어디론가 사라진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것이 기회였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눈앞에 왔다가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물론 이와 반대로 낯설고 두려웠던 것들에 익숙해지고 삶의 노련함과 능숙함이 생기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알아보고 잽싸게 품안으로 낚아챈다. 그들에게 기회는 허상이 아니다. 실체다. 하지만 나에겐 익숙함은 기회보다 위기에 가깝다.

어째서. 왜.

불안한 외줄 타기 같았던 어린 시절의 삶. 아슬아슬한 외발로 허공에 떠 있는 세상이라는 외줄을 겨우 버텨냈다. 어른이 되고 난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용기를 내 외줄에서 내려왔다. 내 삶은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게 불과 몇년전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어느 순간부터 내 행복과 안락함의 기준이 과거가 되어버렸다. 불행했던 유년시절 보다 지금이 나으면 나는 늘 그걸로 만족했다.

그런데 3년 전 제대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세상과 나를 비교하지 말자 마음먹고 변화를 위해 용기를 냈다. 아슬아슬 했던 유년시절의 외줄타기 같던 삶을 겨우 버텨낸 용기와는 달랐다.

1년 2년. 나름 노력했다. 노력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이 자연스럽게 노련함과 실력으로 변할 줄 알았다. 그리고 기회가 짠 하고 눈 앞에 선물처럼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변화가 빨리 나타나길 기다린 탓일까. 욕심이 과햇던 탓일까. 눈 앞에 기회가 나타나지 않으면 기회를 찾아 나서면 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나는 찾아 오지 않는 운을 탓하며 제자리에 앉아 인생 최고로 불행했던 유년시절 보다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니냐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안주함에 만족했다. 지금 어른이 된 삶은 과거에 비하면 꽤나 괜찮은 편이었으니까. 죽지 않고 살아서 먹고 자고 잘 싸고 있었으니까.

'이정도면 됐어, 뭘 그리 아등바등살아'

벌써 2021년도 반년째 접어들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한 지도 3년째다.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도전에 용기 내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과 마주한다. 

성장에 목 매달며 나를 채찍질하고 다그치며 살자는 게 목표가 아니다. 그저 어제 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 뼘 아니 손가락 한마디씩이라도 나아지길 바랐을 뿐이다.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그런 내가 차곡차곡 쌓여 진짜 내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죽음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로 살고 있지 않다. 그냥 하루하루를 시간에 휩쓸린 채 흘려보내고 있다. 변화를 꿈 꾸지 않았던 3년전 나로 회귀하고 있는 중이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 때문에 허기지고 목마른 가슴을 맥주 한 캔으로 달래며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 몇 글자 적어본다. 한 문장을 적고 다시 지난날을 안주 삼아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켠다. 그리고 또 끄적인다. 끄적이다보면 다시 변화에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을까 싶어.

다시 예전의 나로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지난날의 후회에 현실의 불안과 미래의 두려움이 덧대진다.

날이 덥다. 여름이 왔나보다. 내 마음에 덧대진 이 계절에 맞지 않는 답답한 이 옷을 벗어야할 때다. 벌써부터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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