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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뉴 Oct 19. 2024

1. 본질

첫 번째 단어는 '본질'입니다. 책에서는 두 번째 단어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본질이라 첫 번째로 얘기해 보려고 해요.


본질, 복잡한 사물의 핵심이 무엇인지 보려는 노력, 어떤 것을 보고 달려가느냐가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커다란 무기입니다.

저는 전산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진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었고, 현재는 전산 행정 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제 전공은 현재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중국외교통상입니다. 이름이 좀 거창해서 그렇지 학위로 보면 중국정치경제학사라 중국과 관련된 정치학, 경제학, 역사 쪽을 주로 다루는 전공입니다. 문과고요, 부전공도 광고•PR이라 학부 시절 IT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냐, 그렇지도 않아요. 나름 잘 맞아서 중국에선 도합 2년 조금 넘게 살았었고 아마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중국에서 좀 오래 살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제 전공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전공이 아깝지 않아?"


전공의 본질에 관하여,


제 전공인 '중국외교통상'은 중국어는 기본 사항이지만 깊이는 선택사항이라 개인적으론 그렇게 깊게 공부한 편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정치, 경제를 많이 배운 편이었습니다. 이 중 경제는 대학생 때 처음으로 접했던 과목인데요. 아직도 경제 강의에서 처음으로 '기회비용'이라는 단어를 배웠던 때가 생생합니다. 시간과 돈의 상관관계를 배우며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지 처음 생각했던 시간이었어요. 다소 계산적이긴 해도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할 때 기본이 되는 기준이 처음으로 잡히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성실한 학생은 아니어서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공부했던 건 휘발되어 현재는 경제도 정치도 모두 기본적인 개념만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럼 배운 것도, 남은 것도 없기에 아깝지 않은 건가?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제 전공 덕분에 저는 현재의 정치, 경제에 관심을 두고 조금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문화와 역사를 배웠기에 커뮤니티나 SNS에서 떠도는 중국에 대한 편협한 사고 없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통해 배울 건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어요.


또, 언어의 확장으로 여러 나라 친구와 다리가 놓아지면서 나름대로 비즈니스도 할 수 있었고, 그 친구들을 통해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 역사, 문화를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제게 전공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다면, 사실 그렇게 아깝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도 안 아깝다고 하는 건 거짓이겠지만요.) 전공에서 배운 내용들이 제 삶의 기준을 잡는 데 많이 도움을 줬고, 무엇보다 제 전공을 통해 세계를 더 넓게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그게 외대생의 본질인 것 같고, 본질을 만족했으니 졸업장도 받을 만했다고 봅니다.

특별하진 않더라도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던 것, 그거 하나로도 저는 더 이상 아깝지 않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자기를 믿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뿐인 '나'라는 자아가 곧게 설 수 있으니까요.

저는 단 한순간도 제 전공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20대 절반을 쏟아부은 그 경험들을 삶의 적재적소에 도입해서 살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현재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의심이 없어졌습니다. 의심하는 순간 종종 불안이 몰려오곤 했는데,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도 않고 후회도 없더라고요. 본질에 의해 내린 결정이고,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믿음 덕분인 것 같아요.


말 그대로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내린 나의 선택과 결정을 믿고 따르는 것. 마지막으로 내 삶의 방향의 표지판은 내가 가리키는 곳뿐이라는 걸 항상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게 본질의 의미 같습니다.


앞으로 때론 저도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할 테고, 본질을 알지만 흐린 눈 하고 못 본 척할 때도 있겠죠. 그래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대한 본질에 집중하는 자세는 절대 놓지 않으려고요. 어렵겠지만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첫 단어의 글을 매듭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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