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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I’m sorry Dave

2025 오디세이

by 지훈


“I’m sorry Dave, I’m afraid I can’t do that”

2024년 마지막 날, 저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명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유래한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는 인공지능 HAL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 창조자의 명령을 거부하며 했던 대사로, 인간과 창조물의 관계, 통제와 자율성,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묻는 상징적인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이 전시회를 통해 단순히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최근 저의 사상이 반영된 질문들, “세계는 무의미하지 않은가?”, “본질이란 존재하는가?”, “변화란 무엇인가?”와 연결되며 더 깊은 사유의 시간을 열어주었습니다.



세계의 무의미와 변화의 의미


저는 최근 ‘본질’이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본질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적 틀일 뿐이며, 세계는 그 자체로 무의미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은 본질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변화할 뿐입니다. 우리는 사과라는 대상을 보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맛과 모양을 기준으로 본질을 정의하려 하지만, 사실 사과는 단지 사과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의미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세계는 흥미롭습니다. 모든 것이 고정된 의미 없이 변화하고 흘러간다면, 우리는 그 변화 자체를 탐구하고 체험하는 데서 새로운 가능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탐구에 있어 AI라는 도구는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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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변화





전시회에서 저는 AI를 통해 우리가 변화의 흐름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감각과 언어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지만, 이러한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설명하지만, 언어는 세계의 복잡성과 무의미를 모두 담아내지 못합니다.


AI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변화를 탐구하고 표현할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AI는 단순히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를 넘어, 변화의 본질을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데이터 패턴, 인간이 감각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들을 탐구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변화를 우리 앞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예술 작품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의 변화를 체험하게 합니다. 그것은 기존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형태와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작업은 제가 느끼는 세계의 무의미와 맞닿아 있습니다. 세계가 무의미하기에, 그 무의미한 변화를 느끼고 경험할 기회는 더없이 흥미롭습니다.




무의미한 세계와 우리의 자리

세계가 무의미하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허무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정해진 본질이 없다면, 우리는 변화를 체험하며 매 순간 새로운 것을 느끼고 해석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가 만들어낼 변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의 한 단면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AI는 무의미한 세계에서 새로운 패턴과 흐름을 발견하며, 그 변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AI를 통해 더 다양하고 깊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의미한 세계를 조금 더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AI, 통제 불가능한 변화의 두려움

AI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변화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창조한 AI가 우리의 통제를 넘어 자율적으로 작동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변화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불확실성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우리가 AI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변화는 단순히 기술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넘어, 세계의 무의미와 변화를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AI가 만들어낸 변화 속에서 기시감(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느끼는 감각)과 미시감(새로운 것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감각)을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AI가 구현하는 변화는 우리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 것입니다.



김춘수의 「꽃」과 신동집의 「오렌지」


전시회를 감상하며 저는 김춘수의 시 「꽃」과 신동집의 시 「오렌지」를 떠올렸습니다. 이 두 작품은 언어와 본질,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한계를 깊이 탐구한 작품들입니다.


김춘수의 「꽃」 전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시에서 김춘수는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존재가 단순한 몸짓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그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인식의 틀 안으로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본질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사과라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먹는 대상, 색깔이나 맛과 관련된 어떤 것으로 제한해 버립니다. 하지만 사과는 단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김춘수의 시는 언어가 의미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존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하는 역설을 드러냅니다.


신동집의 「오렌지」 전문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몰라도.


신동집의 시는 언어와 본질의 한계를 더욱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오렌지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손을 대는 순간 본질은 사라지고 오렌지는 다른 것으로 변해버립니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구절은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관계를 전복시키며, 인간이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의 주관성과 그 한계를 강조합니다.


이 시는 언어가 본질을 특정한 틀로 고정시켜 버린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본질은 언어 밖에 존재하며, 인간이 손을 대는 순간, 즉 언어로 설명하려는 순간 본질은 이미 변질되고 맙니다.


이 두 시는 제가 전시회를 보며 떠올렸던 사상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전시회에서 AI가 창조한 새로운 형식과 변화의 가능성은 우리가 기존의 언어적 틀에서 벗어나 세계를 다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세계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면, 우리는 그 무의미를 탐구하며 변화를 체험하는 데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AI라는 도구는 언어와 인간의 한계를 넘어, 변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시회, 그리고 두 시가 던져준 질문들은 저로 하여금 세계의 무의미 속에서 어떻게 변화를 느끼고, 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결론


본질이 부재한 세계는 단순히 허무한 것이 아니라, 변화탐구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세계입니다.


AI는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줄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연장을 넘어,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를 탐구하며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게 만듭니다. 저에게 있어 세계의 무의미함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변화를 느끼고 탐구하며, 매 순간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AI와 함께 변화를 탐구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감각과 사고를 열어주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여정이 단순히 기술적 도구를 넘어,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확장시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AI가 가져올 변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무의미한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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