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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이야기] 학원 없는 나의 과학고 도전기

내가 주체적으로 설계한 과학고 도전기

by 지훈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의 시작

제가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처음 품은 건 유치원 시절이었습니다. 우연히 읽었던 우주에 관한 책이 제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넓고 광활한 우주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어린 저에게 황홀한 경험이었고, 이 신비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라는 미래가 너무도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물리학자’라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래 친구들이 흔히 적는 직업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이었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과학자의 꿈은 제 학창 시절 전반에 걸쳐 이어졌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노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시절,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 중 하나는 아버지와 함께했던 주말 나들이였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아버지는 저를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책방골목은 어린 저에게 새로운 세상과도 같았습니다. 오래된 책들이 가득한 좁은 골목을 걸으며 한 권 한 권 책을 고르는 시간은 늘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그곳에서 처음 접한 청소년 세계문학전집은 제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습니다.


세계문학전집에는 당시로서는 어렵게 느껴지는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책 속 주인공들의 모험과 고민을 따라가다 보면 저도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책 속에 담긴 다양한 배경과 인물들은 제가 자연스럽게 세상을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책들은 단순히 문학적 감상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모습은 어린 제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나도 저들처럼 무언가에 도전하고,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그 목표가 바로 ‘과학자’라는 꿈으로 점점 구체화되어 갔습니다.

어머니 역시 초등학교 시절 제 학습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풀었던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라는 수학 교재는 제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숫자와 기호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었지만, 매번 문제를 푸는 방법을 고민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연습은 제가 서술형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었습니다.


이러한 학습 방식은 단순히 답을 맞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 과정을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이후 과학을 배우면서 실험 결과를 분석하거나 수학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과학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발명품 경진대회에 출전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과학축전에 참가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하면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이 활동들은 실패를 통해 배울 줄 아는 법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길러 주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시절 지역 영재교육원에 입학하며 과학적 사고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영재교육원에서는 심화 이론 수업과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과학적 탐구 능력을 키울 수 있었고, 제 꿈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KBS 인터뷰를 했던 날도 기억에 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축전에 참가했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뷰를 하게 된 경험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가 꿈꾸던 과학자의 삶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국제천문연맹총회 - 이소연 박사님을 만나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도 과학자의 꿈은 변함없었습니다. 중학교에서 지역 영재교육원을 계속 다니며 과학을 탐구하고 배우는 시간은 저에게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과학고’라는 진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과학고나 영재고를 목표로 삼고 있었고, 학원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며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역시 과학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과학고 영재교육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고 영재교육원은 일반 영재교육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수업과 실험을 제공했습니다. 첨단 장비를 활용한 실험은 매 순간 흥미로웠고, 친구들과 팀을 이뤄 연구 과제를 해결하는 시간은 제게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나 즐거움과 함께 부담감도 커졌습니다. 친구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선행 학습을 통해 고등학교 수학과 과학 전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고, 저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때 부모님께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과학고 대비 학원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선행 학습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학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저는 풀이 죽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전과 성장

영재키움 프로젝트

학원을 다닐 수 없었던 저는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저는 중학교 2-1 수학 교재를 펴고 차근차근 선행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걱정도 많았습니다. ‘이 속도로 과연 과학고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저는 동네 서점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의 정석’을 사와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 막막했지만, 인터넷 강의를 결제해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 역시 고등학교 수준의 ‘하이탑 물리·화학’을 구입해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특히 KAIST 영재키움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과학고 선생님과의 상담은 제가 공부의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화학은 비교적 잘 풀렸지만, 물리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고등학교 물리의 특성상 미적분과 같은 고등수학이 기초가 되어야 했지만, 저는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물리는 잘못된 방법인 문제를 암기하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고 입시와 최종 합격


과학고 원서를 준비하며 자기소개서와 면접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기소개서에는 과학고 영재교육원에서 했던 활동들을 중심으로, 별의 생명 가능 지대를 계산하는 프로그램 작성과 스트링아트를 수학적으로 구현했던 프로젝트를 상세히 담았습니다. 이를 작성하며 저는 과학고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진솔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방문 면접 당일, 저는 중학교에서 정리한 개념 노트를 복습하며 긴장을 다스렸습니다. 면접에서는 근의 공식 유도와 구름의 생성 원리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부터, 자기소개서에 기재된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까지 심층적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을 받으며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던 순간도 있었지만, 아는 내용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답변하려 애썼습니다.


1차 합격 소식을 들은 뒤 소집 면접 준비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소집 면접 당일, 긴장된 마음으로 과학고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마지막까지 정리집을 보며 준비했습니다. 면접에서는 중학교 과정에서 심화된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며,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꿈에 대해 발표하며 과학고에 진학해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최종 합격 발표일, 도서관 컴퓨터 앞에서 합격 소식을 확인한 순간은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의자를 뒤로 밀다가 선반 유리를 깨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그날의 기쁨은 오래도록 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학원과 자기주도 학습


과학고에 합격한 후, 부모님의 권유로 다시 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원에서는 과학고 진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을 운영했으며, 과학고 진도를 빠르게 따라가기 위해 고등학교 심화 과정을 미리 배우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학원에서는 “텐투텐”이라고 불리는 강도 높은 학습 스케줄을 운영했는데,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학은 수학 II까지, 과학은 물리 II, 화학 II, 생명과학 II 진도를 빠르게 나갔고, 매 수업 후에는 많은 양의 숙제와 추가 학습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선행 학습이 제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서 실력이 늘어나는 듯한 성취감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학원의 진도가 너무 빠르고 학습량이 방대하다 보니 따라가는 데 점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중·하반으로 나뉜 학원 반에서 중간반에 겨우겨우 남아 있는 제 모습이, 더 높은 반에서 선행을 잘 따라가는 친구들과 비교되며 점점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학원의 분위기 역시 경쟁이 치열해, 자연스럽게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매일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고 복습하는 데도 몇 시간을 더 투자해야 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강제적으로 학원 수업이 중단되고 집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공부한다는 것이 막막했지만, 학원에서 느꼈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제게 맞는 학습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진도를 나가고, 필요한 부분을 인터넷 강의나 책을 통해 보충하며, 제가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채워나갔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으로 전환한 뒤, 학원에 다닐 때와 비교해 학습 효율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는 학습 방식이 제게 맞았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학업뿐만 아니라 제 삶 전반에 걸쳐 중요한 교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과학고 재학 당시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풀어보겠습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

과학고를 준비하거나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학원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자신의 학습 스타일과 목표를 스스로 고민하며 선택하세요. 학원이 과학고 준비 과정에서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학원은 단지 도구일 뿐입니다. 학원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거나, 자신만의 학습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면, 과감히 학원을 떠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 학원에서는 흔히 과학고에서 성적을 받으려면 선행이 필수라고 말하며 압박감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과학고에서 고등학교 수학과 과학을 빠르게 배우는 만큼, 선행 학습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행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입니다. 선행 학습은 단순히 진도를 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심화 개념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과학고에 진학한 후에는 자신의 학습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고의 수업 진도는 빠르고, 친구들과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과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학습 방식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면, 과학고에서의 학습 역시 충분히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과학고를 준비하면서 느낄 수 있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주위 친구들과의 비교나 성적에 대한 압박이 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꿈을 향한 도전은 절대 쉽지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성장과 성취는 여러분에게 큰 보람과 자신감을 안겨줄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길을 믿고 끝까지 노력하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꿈은 여러분의 노력만큼 가까워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은 단순히 성적 이상의 가치를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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