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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 이야기] 네? 제가 중앙대에 갈 수 있다고요?

나의 과학고 1학년 이야기

by 지훈

과학고 입학과 첫 시작


겨울방학 동안 잠깐 학원에 다니며 준비했지만, 과학고 입학을 앞둔 나는 기대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내가 선행한 것은 수학 수(상)과 수(하)를 중학교 3학년 때 혼자 인강으로 공부했던 것과, 학원에서 겨우 3개월 동안 수학 수 II까지를 빠르게 훑은 게 전부였다. 다른 친구들처럼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하며 실력을 다져온 것도 아니었고, 과학고라는 이름에 걸맞은 특별한 준비가 없었다.


입학 초기, 나는 스스로에게 높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카이스트, 포스텍 같은 곳은 애초에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고, 그저 자퇴하지 않고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5~6등급 정도의 성적만 받는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학교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곳이었기에,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있었다.



입학 후 첫 시험과 상담

과학고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학력 점검을 위한 모의고사를 치른다. 내가 입학한 해는 2020년, 코로나19가 막 시작되던 시기라 일정이 미뤄져 6월쯤 시험이 진행되었다. 시험 후 담임 선생님은 학생 개개인을 불러 상담을 진행했다. 각 과목별 점수와 등수를 기반으로 현재 학업 상태를 점검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자리였다.


상담 결과, 놀랍게도 나는 하위권이 아니었다. 중위권에 속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구나. 열심히 하면 더 올라갈 수 있겠다.’ 이 작은 성취감은 큰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함께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싶어졌다.



중간고사와 성적 상승


중간고사가 끝난 뒤 다시 상담이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4등급 중반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중앙대는 충분히 갈 수 있다”라고 격려하셨고, 더 열심히 한다면 조기진학을 통해 더 좋은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은 내가 그동안 해온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성적을 더 올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을 찾아가 질문했다. 하루 동안 배운 내용을 그날 바로 복습하려고 애썼고, 공부법에 확신이 없었던 나는 선생님에게 주기적으로 찾아가 조언을 구하며 방법을 점검받았다.



멀티 페르소나의 시작

그러나 이러한 내 노력은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선생님께 아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학교 선생님께 의지했던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잘 보이려는 행동’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점점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친하고 믿을 만한 친구 앞에서는 편안한 나의 모습을 보였지만, 겉으로만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 앞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선생님 앞에서는 모범생처럼 행동했다.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나의 모습이 생겨났고, 지금 돌아보면 이때부터 내 안에 여러 ‘페르소나’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 같다.



계획과 이벤트

나는 집 근처 문구점에서 스터디 플래너를 사와 하루하루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나씩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게임의 도전 과제를 해치우는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과도한 계획을 세웠던 날에는 그것을 다 실천하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하기 일쑤였다. 계획이 빗나간 날에는 자존감이 떨어졌고, ‘내가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단조로운 하루에 지치지 않기 위해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기대감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한 주나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일을 정하고, 그것을 계기로 하루를 견디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급식에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을 기대하거나, 생명과학 실험 동아리에서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하는 것, R&E 활동을 준비하는 것으로 소소한 보상을 만들었다. 이 방법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만약 그 이벤트가 무산되면 더 큰 절망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했다.



성적 향상과 새로운 가능성


1학년 2학기 성적이 나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진짜 해낼 수 있구나”라는 확신을 가졌다. 3등급 초반이라는 결과는 단순히 점수가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복습, 선생님께 질문하러 갔던 수많은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 순간이었다. 성적표를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모님께 기쁜 소식을 전할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부모님도 나만큼이나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 진짜 열심히 했구나. 네가 이렇게 해내는 걸 보니 정말 대견하다”며 내 노력을 칭찬하셨다. 그 칭찬은 나에게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심어줬다. ‘이제 더 올라갈 일만 남았겠지.’ 나는 스스로에게 그런 확신을 심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가올 일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저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믿었지만, 과학고의 특수한 환경과 조기진학이라는 목표는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더 복잡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조기진학 자격과 새로운 목표

내 성적은 조기진학 자격을 얻기에 충분했다. 조기진학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친 뒤 바로 대학 입시에 도전할 수 있는 과정으로, 3학년 과정의 상당 부분을 2학년 때 선행 학습해야 하는 제도였다. 이 과정은 단순히 성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압축된 학습량철저한 시간 관리, 강한 심리적 내구력을 요구했다. 심지어 조기 진학 타이틀을 가지더라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2학년 1학기 내신을 반드시 잘 챙겨야 했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기회다”라고만 생각했지만, 준비를 시작하면서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학습 계획을 더 세부적으로 작성하고, 주간과 월간 목표를 설정하며 하루하루를 쪼개어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학업량이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더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었고, ‘이 모든 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져 갔다.



다가올 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성적 상승으로 얻은 자신감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그 자신감은 점점 나를 더 높은 기대치로 몰아넣었다. 조기진학이라는 도전은 나에게는 기회였지만, 동시에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헛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하면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불안은 여전히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조기진학 준비에 돌입하면서 나는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 정보를 알아보았다. 더 이상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학습량이었기 때문이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일정이 더 빡빡해졌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와 복습에 쏟아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 묻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이런 의문들은 분명 나를 흔들었지만, 눈앞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데 걸림돌이 될까 봐 일부러 외면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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