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순』 - 모순의 우리들

모순 그리고 행복

by 지훈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모순 - 양귀자

안진진. 그녀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곧 그녀 삶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모순의 집약체다. ‘안’이라는 부정과 ‘眞’이라는 진리의 조합은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불확실성과 확실성,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모순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상징한다. 이름이 곧 운명이라면, 안진진은 태초부터 모순 그 자체를 숙명으로 품고 태어난 것이다.


1. 이름의 모순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p15


안진진의 이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안’이라는 부정의 접두어다.

‘안’은 부정과 거부를 의미하며, 그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암시한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질서와 안정된 체계를 불신한다. 이는 그녀가 타인의 평가와 사회적 잣대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가려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은 고통스러운 모순을 동반한다.


반대로, ‘眞’은 진리와 확실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진리를 갈구하지만, 진리를 발견하려 할수록 더 큰 혼란과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안진진은 이 모순 속에서 성장한다. 세상이 말하는 진리가 그녀에게는 무의미할 뿐이고, 그 대신 자신만의 확실성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진리를 향한 갈망과,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공존하는 상태야말로 그녀 삶의 본질이다.


또한 ‘진진’이라는 반복은 그녀가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며, 그 탐구가 끝없는 여정임을 나타낸다. 진리란 고정된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유동적이고 변형 가능한 것임을 그녀의 이름 자체가 말해준다.


2. 환경의 모순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p.232


안진진의 삶은 그녀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시작되며, 그곳은 모순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녀의 어머니와 이모는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단지 10분의 차이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어머니의 삶: 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과 살아온 여성. 그녀의 삶은 외부에서 보면 불행의 연속으로 보인다. 그녀의 모든 선택과 행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처럼 보이지만, 안진진은 어머니가 가진 강인함과 의지를 통해 삶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다.

이모의 삶: 안정적인 직업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해외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자녀를 둔 삶.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인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정적인 삶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공허와 불안이 숨어 있다.


두 여성의 삶은 안진진에게 인생이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며, 단순히 외부의 평가나 환경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 진진은 두 여인의 삶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환경이 인간의 본질을 결정짓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3. 아버지 : 진정 모순의 인물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 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 삶이었을까. p268

누구나 똑같이 살 필요는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인정하지만, 그렇지만 하필 아버지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고. p.92


안진진의 아버지는 자유를 추구하는 철학적 인간이지만, 동시에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며 가정을 황폐화시킨 모순적인 존재다. 그는 가족에게 끊임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진진에게는 삶을 깊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준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진진이 세상의 잣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는 우리에게 폭력과 철학이라는 모순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모순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증명했다.


4. 행복의 모순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p64


우리의 삶 속에서 행복과 불확실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우리는 흔히 안정된 삶, 미래가 보장된 삶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진은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취약하고 허구적인지를 깨닫는다.


행복이란 단순히 안정된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나만의 확실성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안정된 환경은 때로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며, 본질적으로 우리가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다.


진진에게 사랑은 또 다른 모순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가장 나 자신다워지기를 원하지만, 사랑은 타인을 통해 나를 비추는 과정에서 더 큰 혼란과 갈등을 가져온다. 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기준과 관계 속에서 나를 속박하기도 한다. 진진은 이런 사랑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간다.


5. 모순을 넘어서: 아모르파티와 카르페디엠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173


안진진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삶의 모순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이라 본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처럼, 우리는 자신의 모순적 삶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목적을 특정한 방향이나 목표에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 순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자유를 느끼고 행복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카르페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을 실현해야 한다. 우리에게 현재는 불확실성과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것은 고통과 희망이 교차하는 장소이며, 우리가 자신만의 평가와 창조를 통해 새로운 확실성을 만들어내는 장이다.


Final : 모순 속에서의 자유와 행복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p303(작가의 말 중)


안진진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여성의 인생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 즉 불확실한 세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녀의 삶은 끊임없이 평가와 창조를 반복하며, 모순 속에서도 진리를 찾으려는 몸부림 그 자체다.


행복은 안정에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본성을 인정하고, 그 본성에 따라 자유롭게 평가하고 창조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온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삶의 모순을 사랑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로 향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keyword
지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KAIST 직업 학생 프로필
구독자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