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원합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잘 해보겠습니다.
“뭐야? 또 알바 지원?”
“마음먹은 김에 시작해야지!”
“아 맞다. 너 저번에 면접 본 그 있잖아. 미친 사장 있던 편의점. 저기 칠성 마트 골목 맞지?”
“거기 맞아. 왜?”
“헐. 너 못 봤어? 거기 이로운 알바 하던데? 담배 사러 갔다가 완전 깜놀. 날 알아보는 눈치던데 설마 내가 핀다고는 생각 못 하겠지? 내가 담배랑은 좀 안 어울리긴 하잖아. 그치?”
“걔가 누군데?”
“얘가 지금 뭐래? 한성고 이로운 몰라?”
“이로운...?”
일 층엔 오래된 레온 사인이 번쩍거린다.
뭘 굽는다는 건지 ‘구워요’란 글씨에 허리를 힘껏 꺾은 S라인 여성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 요상한 핑크 간판이 달려있다. 작고 까만 입구로 들어가 이 층을 지나 삼층에 오르면 녹슨 철 대문이 있고, 삐거덕 소리가 요란한 문이 열리면 로운의 옥탑방이 보인다.
많은 이가 옥탑방 로망을 꿈꾸지만, 출처도 불분명한 잡동사니들이 나뒹구는 허름한 옥상에 자리한 방 한 칸. 알바를 끝낸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로운은 불 꺼진 방에 몸을 뉘었다.
10/20 오후 7시-여성 한 분 원해요.
10/20 아침 9시-세 분 정도면 좋을 거 같아요.
10/21 오후 5시-저녁 식사 원합니다. 한 분.
10/21 새벽만 원해요-남성 한 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방 안, 로운의 핸드폰 액정이 번쩍거린다.
“죽는 마당에 저녁 식사라니. 생각만 해도 부대끼네.”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켠다.
단출한 집안 살림. 방 한편에 내내 펴져 있는 엄마 제사 때 쓰던 작은 제기 상 위엔, 먹고 남은 생수 한 병과 티브이 리모컨이 올려져 있다. 로운은 달력을 힐끗 보고는 지나간 9월 페이지를 뜯어버린다.
2025년 10월 20일 월요일, 저녁 7시 46분.
로운의 버릇은 날짜를 알고 나면 곧바로 시계를 본다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이 좋은데. 전부 이른 시간에 그 지랄을 하고 싶을까.”
로운의 핸드폰 액정 속엔 모르는 사람들이 올린 모집 글들이 넘쳐난다. 업로드되면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 뒀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알람에 핸드폰이 불이 날 지경이라 며칠 전부터 알람을 꺼두었다. 그렇다고 로운의 의지가 꺾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날의 기억에서 아직 못 벗어난 것이다.
“뭐야? 너? 어린애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성인인증 필요하잖아. 어떻게 한 거야?”
“죽는 마당에 범법행위를 따지는 거예요? 그만해요. 형.”
그날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지만, 편의점에서 우연히 그 애를 본 것이 인상적인 날이었다.
‘이루리’ 보고 싶던 그 애를 보게 되었을 때 로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할 명분이 생겼네.’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로운은 방바닥에 어지럽게 흐트러진 옷가지를 주워들었다.
옷을 하나둘 개고 집 안 정리를 시작했다. 세간살이라 할 것이 없어서 생각보다 빨리 정리가 끝났다.
상자 하나엔 옷가지, 또 다른 상자엔 나름의 역할이 있던 물건들이 담겼다. 식탁이자 책상이던 작은 제기 상도 고이 접어 상자와 나란히 두었다.
옥상으로 나간 로운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눈물 나게 예쁘네.’
높은 건물이라고 찾을 수 없는 낮고 낡은 건물들이 즐비한 잿빛의 허름한 동네에 붉은 낙조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동네 전체가 연한 핑크빛으로 예쁘게 물들었다.
살고 싶게 만드는 것들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길로 로운은 집에서 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저녁 7시.
어느 모텔 앞에 섰다. ‘썬 모텔’이란 글자 간판에 듬성듬성 불이 켜졌다.
멀리서 보면 ‘씨 모텔’ 같아 보이기도 했다. 로운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용~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뭐 일행은 주차 중이세요? 같이 왜 안 들어와?”
60대 정도로 보이는 빨간 입술의 주인아줌마가 로운을 작을 창틈 사이로 힐끗거린다.
얼굴은 참기름을 바른 듯 번쩍거리고 짝짝이 퍼런 눈썹 문신이 도드라져 보였다.
짧은 커트 머리를 어떻게 파마한 건지.
뽀글뽀글 볼펜 용수철을 닮은 머리카락이 주인아줌마의 두피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아. 좀 늦는다고 해서요.”
“일행이 여자야? 남자야?”
“남자요.”
“아이고 우린 여자 둘은 받는데 남자 둘은 안 받아요. 저번에 뭣도 모르고 남자 둘을 받았다가 침대에서 뭔 지랄을 했는지 온통 피범벅이야. 미친놈들이 문신을 뜬 거야. 뭘 한 거야. 아이고 남사스러워!”
“전 안 그래요.”
두피 아줌마가 로운을 얼굴을 유심히 훑더니 못 이기는 척 입을 뗀다.
“진짜? 아이고 그럼 삼촌. 문신 뜨거나 뭔 지랄하면 안 돼! 알았지? 삼촌 얼굴이 하도 잘생겨서 내가 믿는 거야.”
누가 봐도 장사가 안되어 보이는 여관에 가까운 허름한 모텔. 손님이 있을 리 없었다.
두피 아줌마는 목욕탕 캐비닛 열쇠와 비슷하게 생긴 팔찌형 열쇠를 작은 창 사이로 내어주었다.
“303호로 가세용~ 잘생긴 삼촌.”
좁은 엘리베이터 안, 오래된 세탁기 속 냄새가 났다. 썬은커녕 오래 묵혀둔 빨래의 꿉꿉함이 엘리베이터 곳곳에 내재되어 있었다. 두피 아줌마가 말한 뭔 지랄이나 문신보다 더 한 일이 곧 썬 모텔 303호에서 일어나겠지만, 로운은 구태여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따지면 미안할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집주인 아저씨, 편의점 사장님, 두피 아줌마, 그리고...
303호 앞에 선 로운이 손목에 끼고 있던 열쇠를 벗어 문을 열었다. 자두색의 큼직한 꽃문양이 수 놓인 극세사 이불이 곱게 침대를 덮고 있었다. 같은 계열의 커튼이 303호의 칙칙함에 힘을 실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시계를 봤다.
저녁 7시 12분.
약속 시간까지 13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썬 모텔은 노후뿐 아니라 방음에도 약했다. 로운의 신경은 온통 그 발소리에 집중되었다.
301호, 302호, 303호..
정확히 303호 문 앞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똑똑’
로운은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만 열어주고 바로 뒤돌아 침대로 돌아왔다.
그 사람과 눈을 맞추면 안 될 것만 같았다.
303호 안으로 들어온 남성은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다. 검정 모자를 푹 눌러쓴 탓에 눈을 맞추려야 맞출 수가 없었다. 남성은 로운이 미리 침대를 선점한 탓인지 갈 곳을 잃고, 로운과 적정거리를 유지한 채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앉아요.”
로운이 먼저 말을 건넸다.
“네...”
남성의 목소리는 피부색처럼 투명했다. 그 순간 로운이 남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남성의 모자를 빠르게 낚아챘다. 놀란 남성은 짧은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얼굴을 쳐들고 로운을 쳐다봤다.
“뭐야? 너? 어린애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성인인증 필요하잖아. 어떻게 한 거야?”
“죽는 마당에 범법행위를 따지는 거예요? 그만해요. 형.”
얼굴을 마주한 남성, 아니 남자애의 하얀 얼굴엔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색이 다른 여러 겹의 멍들이 자두색 극세사 이불처럼 남자애 얼굴을 덮고 있었다.
“너 몇 살이야?”
“그건 왜요? 그런 거 묻지 말고 우리 할 거 해요. 제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중학생 같아 보였다. 순간 편의점에 삼각김밥을 자주 사러 오던 언제 어디서나 시끄러운 사춘기 남자애들 얼굴이 떠올랐다. 로운은 변성기도 채 지나지 않는 그 애 목소리에 엄마 생각이 났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안전한 곳에서 마음껏 행복해야 할 나이.
이 애는 무슨 이유로 이토록 불행한 얼굴을 하고 위험한 썬 모텔에 오게 된 것일까.
“당장 돌아가. 어린애랑은 같이 안 죽어.”
“왜요? 같이 죽기만 하면 되지. 나이가 무슨 상관인데요? 저 이만큼 가지고 왔어요. 제발요.
네? 저 오늘 여기서 안 죽으면 내일 그 새끼들 손에 죽어요.”
남자애가 입고 온 옷가지의 많은 주머니에서 알약이 쏟아져 나왔다.
진통제, 감기약, 수면제. 여러 종류의 알약이 족히 50알은 넘어 보였다.
“제가 이거 모은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혼자 죽으려고 몇 번 해봤는데 잘 안돼요. 형! 아니 선생님! 저 좀 죽게 도와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부탁을 이토록 매몰차게 거절한 적이 있던가. 쓸데없는 생각이 잠시 로운의 머리를 스쳤다. 흐느끼는 아이의 눈과 코와 입에서 뜨겁고도 매운 무언가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작은 몸속에 가득 차버린 절망감이었다. 죽고 싶어 우는 아이. 그런 아이와 같이 죽겠다고 썬 모텔을 찾아온 로운.
9/12 밤 10시/남성 한 명 원함.
-안녕하세요? 저 참여하고 싶어요.
-시간 맞춰서 지선동 썬 모텔로 오세요. 호수는 그날 채팅에 남겨둘게요.
-시간 변경 안 되나요
-잠자는 시간을 원해서 시간 변경은 어려워요.
-전 일찍 잠을 자서요. 7시 30분으로 변경해 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로운은 남자애의 첫 번째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만나게 된 로운과 세진. 그리고 썬 모텔 3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