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별천지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어. 너무.
동네를 오가다 눈여겨봤던 새로 생긴 디저트 카페.
루리는 그곳 창가에 홀로 앉아 카페 안을 두리번거렸다.
지영이 도착하려면 아직 삼십 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카페에 자리 잡은 건,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는 걸 지영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핑크와 민트가 뒤섞인 앙증맞은 카페 안, 이질감 없는 또래들처럼 루리 또한 자신에게 청춘의 발랄함이 묻어나길 바랐다. 그걸 느낀 지영이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하지 않게.
잠시 후, 통창 넘어 베이지색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한 여자가 카페를 향해 걸어온다.
뾰족한 앞 코가 인상적인 적당히 높은, 도도한 검정 구두 소리가 창을 뚫고 들리는 것 같았다.
‘또-각 또-각’
“어머 루리야. 잘 지냈어?”
인사와 동시에 지영은 있는 힘껏 루리를 껴안았다. 정확히 2년 만이었다.
지영에게 안기는 순간, 루리는 어릴 적 아빠와 살았던 고향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이모. 언제 한국 들어왔어?”
“이제 한 달쯤 됐지. 이모가 마감 때문에 너무 바빠서 우리 루리를 이제 보네.”
지영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작가다.
서른이 넘어 낸 첫 에세이가 소위 대박이 나면서 ‘고졸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경력 단절에 놓인 여성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다.
다들 제2의 노지영을 꿈꾸며, 한동안 기혼 여성들 사이에서 ‘글쓰기 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영은 미혼이었다. 지영의 말을 빌리자면 화.려.한.싱.글.
이제는 지영이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지영의 작품 중 루리가 가장 좋아하는 ‘다시 찾아온 두 번째 스무 살’은 얼마 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지영이 마흔이 되었을 때 자신을 위로하고자 쓴 소설이었다.
사실 소설보단 에세이에 가깝지만, 지영은 결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사심이 만들어낸 ‘픽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흔 살 여자의 버킷 리스트.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을 꾸밈없이,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생각보다 멋들어지지 않는 마흔의 이야기가 큰 사랑을 받을수록 생각지 못한 페미니즘 이슈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고, 한동안 지영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아이고~ 우리 루리 얼굴 좀 보자~ 요즘 어때?”
“왜 그렇게 쳐다봐? 부담스럽게~ 이모는 그게 문제야. 뭐든 너무 과해!”
“이모가 미국에 있는 동안, 루리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나쁜 계집애! 이모 전화도 안 받고!”
“시차가 좀 차이나? 전화할 땐 받는 사람 생각을 좀 하지 않나? 그렇게 막무가내로 새벽에. 그것도 연타로. 전화하면 받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이모 알지? 아침잠 많은 거. 하도 안 받아서 알람까지 맞춰놓고 전화해도 안 받는 건 어떻게 설명할래?
뭔 놈의 출판사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메일로 안부를 물어야겠어?
메일이라면 지긋지긋해. 하루에도 수십 통씩 날아오는데, 네 메일도 몇 번 같이 지워버렸어. ‘어머! 어떡해’ 하다가도 그럴 때마다 통쾌해! 아주!”
“유치해. 정말.”
루리란 어린 꽃 위로, 지영이란 단비가 기분 좋게 내렸다.
단비 사이로 루리의 큰 두 눈이 반짝거리다 이내 환한 빛을 내뿜고, 두 볼은 봉숭아 물을 들인 듯 생기가 돌았다. 오랜만에 지영을 마주한 루리가 마침내 분홍 꽃처럼 활짝 피었다.
“이모 영화 봤어?”
“당연히 봤지. 두 번. 처음은 유진이랑 보고, 또 한 번은 혼자 봤어.”
“뭐야? 감동 주네. 이게!”
“왜 그래. 또? 그 느끼한 눈은? 유진이랑 봤을 땐 유진이가 좋아하는 카라멜 팝콘만 잔뜩 먹었는데, 며칠 지나니 치즈에 푹 담근 나초가 너무 먹고 싶어서 혼자 또 간 거야.”
“어휴, 증말~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니! 그래서??”
“뭐가 그래서?”
“영화 보고 느낀 점은??”
“솔직히?
난 활자 러버라 확실히 책보단 여운이 덜하다? 그리고 나한테 미.안.했.다.”
“나도 내 책이 낫다고 생각하는 일인이지만, 영화가 낫다는 사람도 많아. 역시 대배우야.
감정 표현을 너무 잘했어. 영화 보고 그렇게 많이 울긴 처음이었다니깐.
한참 우는데 현정이가 뭐랬는지 알아? 나보고 주책이래!
‘주책’ 두 글자에 흐르던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니깐. 그래서 며칠 있다가 몰래 혼자 다시 보러 갔어.
그땐 누구 눈치 안 보고 양껏 울었어. 아 참. 그건 그렇고 내 영화가 널 미안하게 할 일이 뭐가 있니?”
“별.천.지!”
“그게 뭐야?”
“정말 이모가 쓴 거 맞아? 누가 써준 거 아니고??”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작게 말해!!”
“그거 있잖아. 선영이 혼자 부산 갔을 때.
여태껏 누군가와 함께했던 일들을 오로지 혼자 해보면서 그러잖아. ‘고개만 돌려도 온통 별천지’라고.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나한테 너무 미안한 거야. 난 지금껏 별천지 속에 날 데려가 본 적이 없어.
온통 별천지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어. 너무.”
“음. 내가 쓸 땐 단순히 술에 취해서였어.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아서 남들처럼 맥주 나발을 부는데, 반병도 안 마셨는데 이상하게 머리가 막 빙빙 돌아. 근데 너무 예쁘게 도는 거야.
해운대를 감싼 온 불빛이 별천지처럼. 그날이 그랬어. 네가 기대한 그런 별천지는 아니지?”
“선영이가 이모 맞지? 그래서 이름도 비슷한 거지?”
“눈치챘어?”
“영화를 본 400만 관객이 전부 눈치챈 거 알지? 이모만 죽어라 아니라고 하는 거야. 지금.”
“나쁜 계집애! 모르는 척 좀 해주지. 난 선영이가 좀 쪽팔려.
마흔이 된 날, 스무 살에 느꼈던 거지 같은 불신이 또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거야.
열아홉이던 내가 하루아침에 스물이 됐을 때, 내가 정말 어른이 맞나 싶어서 그길로 술집에 갔어. 덜덜 떨면서 호기로운 척 주위 어른들처럼 막 술을 퍼마셨지.
근데 마흔이 돼도 똑같은 거야. 내가 정말 어른이 맞나 싶더라고.
술집은 밥집보다 더 많이 드나드니깐 이젠, 어른인 걸 증명할 길도 없어. 그래서 무작정 미국으로 간 거야.”
“그랬구나...”
“사람들한테는 우주에 관한 소설을 쓸 거라고 했어. 나사에 자문하러 간다느니, 휴스턴 대학 석사과정을 밟는다느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가면서 비행기를 탔어.
내 고유명사 고졸 타이틀이 부끄러워서 남들 몰래 방통대를 겨우 졸업한 내가 뭔 석사야.
스토리 자체가 너무 허접하지 않니? 이래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야.”
“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
“너무 신기한 게 뭔지 알아? 아무도 의심을 안 한다는 거야. 전부 내가 공부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놀라웠어. 아직도 내가 어린 네 앞에서 내가 쓴 시를 읊어대던 방구석 작가였다면, 누가 그걸 믿어 줬을까? 출간 작가가 된 지 고작 십여 년 흘렀는데, 내 과거가 꿈같아. 원래 아니, 태생부터 유명 작가였던 것처럼 재수 없는 착각 속에 살아. 이건 비밀인데 너니깐 말할게. 사실 이모 여기서 도망친 거야.”
“정말 공부는 하나도 안 했어?”
“우주에 관한 책을 엄청 많이 읽은 정도?”
“왜 갑자기 겁이 났어?”
“음.. 넌 정말 못 속이겠다. 쬐끔 한 게 철만 대따 들어서는 징그러워 정말.
다시 돌쟁이가 된 기분? 걸음마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았어. 처음부터 전부 다시.
사람은 혼자 살 순 없다지만 그간 너무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살았어. 혼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
그게 뭐라고. 부산도 겨우 혼자 갔어.
글은 써야 하니깐 노트북을 챙기긴 했는데 아무것도 못 쓰고 그냥 왔지 뭐. 너무 겁이 나서.”
“그래도 용케 2년을 먼 타국에서 혼자 살다가 왔네?”
“야. 부산이 뭐냐! 일본이나 뭐, 어? 태국 이런 데 있지? 이젠 전부 껌이야!”
“우리 이모. 딴사람이 됐네?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
소란한 사십 대를 맞이한 지영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이었으나, 걸음마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아슬아슬하고 지겨운 인생, 루리 인생과 똑 닮아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둘은 서글픈 인생의 동지란 걸 잘 알고 있었으며, 사랑을 넘어선 전우애도 많은 부분 이 둘의 관계에 깔려 있었다.
사실 지영은 루리 엄마의 베프이다. 어린 엄마였던 루리 엄마의 유일한 친구.
지금도 종종 루리에게 엄마의 소식을 전해주는 소식통이자, 루리의 정신적 지주이다.
지영의 존재는 루리에겐 안식처이며, 험한 인생을 살아가는 마지막 비밀무기와도 같았다.
루리 아빠가 말하던 인생의 ‘필살기’가 루리에겐 바로 지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