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우와 루리

열 개의 행복

by 옥유

요란한 도마 소리가 온 집안에 퍼졌다.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가 틀림없다.

된장찌개를 이틀째 먹고 난 뒤였다. 형우가 할 줄 아는 찌개는 단 두 가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뿐이다. 찌개뿐인 단출한 상차림이지만 조리대 위는 이미 전쟁을 방불케 했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양파 껍질과 대파 꽁다리, 삐뚤빼뚤 잘려 나간 불쌍한 두부, 이미 상판에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한 김치 국물까지. 누가 보면 형우가 잔칫상을 차리는 줄 알 것이다.


“아빠. 오늘 김치찌개지? 뭐야? 웬 앞치마?"

“옆집 삼촌이 줬어. 오랜만에 시장 갔다면서 사는 김에 내 것도 같이 샀대.”

“노랑은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삼촌은 무슨 색이야?”

“삼촌은 파랑인가? 아빠가 노란색 한다고 했지. 여기 걸어두면 루리도 설거지할 때 하면 좋잖아. 너 노란색 잘 어울리니까, 앞치마하고 설거지할 버릇 좀 들여! 맨날 앞섶 다 젖은 채로 잠들어서 감기 걸리지 말고.”

“알았어. 근데 오늘 찌개 냄새가 여느 때랑 좀 다른데??”

“아빠가 처음으로 참치 말고 돼지고기 넣어봤어. 너 그거 좋아하잖아. 시내 김치찌개 맛이랑 얼추 비슷해! 다들 그러던데, 다시다만 들어가면 김치찌개는 게임 끝이래.”


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찌개를 끓이는 형우의 뒷모습을 루리가 식탁에 앉아 한참 바라본다.

웬일 인지 형우가 흥얼거린다. 아내가 떠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적막과 절망의 공간, 루리의 커다랗고 뜨거웠던 태양은 모든 게 시들고 식어버린 잿빛 그늘로 변해 버렸다. 볕 한 줌 들지 않는 흑백의 집안에서 루리 역시 색을 잃어갔다.

오랜만에 태양같이 쨍한 노란색을 마주한 형우의 콧노래가 루리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빠, 그럼 내가 계란말이 할까?”

“그럴래? 할 수 있겠어?”

“이거 왜 이러셔! 나도 이제 아빠가 그렇게 말하던 행님이야!!”

“우리 루리 행님되는 걸 아빠가 제대로 보질 못했네. 이제 아빠가 빼놓지 않고 루리만 볼게!”


‘빼놓지 않고’라는 말에 형우의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아내가 떠난 후, 루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죄책감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14년을 함께한 아내가 하루아침에 떠난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지금껏 답답함에 미쳐 살았다. 아내를 찾느라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여보, 제발. 나 여기서 살다간 언젠가 죽어. 그러니... 제발 날 좀 보내줘.”


그날의 잔상이 형우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제발.’

‘제발이라니.’

자신의 전부라던 루리까지 버리고 아내는 대체 어딜 간단 말인가.

왜 그토록 잔인하게 우리 곁을 떠나고 싶은 것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오만가지 생각이 형우의 몸에 꽈리를 틀고, 서서히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아빠?.”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오늘 진수성찬인데. 아빠가 먼저 한술 떠야지.”

“아이고... 잠깐 딴생각을 했네. 처음 해보는 음식을 하느라 너무 집중했나.”

“뭐야 크크. 내가 만든 계란말이도 먹어 봐.”

“와! 너무 맛있는데. 처음 해본 거 맞아? 다 컸네. 우리 딸.”


형우와 루리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작은 식탁에 형우의 빨간 찌개와 루리의 노란 계란말이가 놓였다. 알록달록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저녁 밥상이다. 노란 앞치마와 참치가 아닌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앞으로 잘 살겠다는 형우의 굳은 다짐처럼 느껴졌다.


“루리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뭐야? 밥 먹다가 이 철학적인 질문은?”


하마터면 매운 국물이 식도를 역류해 코로 나올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국물이 조금 섞인 듯한 매콤한 콧물을 한 번 들이킨 뒤, 루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행복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거 아닐까?”

“누구나 갖고 싶은 거라... 루리도 행복을 갖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럼 자주 있지. 누구나 꿈꾸는 행복이란 게 있잖아. 아빠는 없어?”

“꿈꾸는 행복? 당연히 아빠도 있지.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거든.

근데 얼마 전 그날은 종일 지옥이었어. 그래서 그날 정말 미친 듯이 천당에 가고 싶더라.

그런 게 꿈꾸는 행복일까?”

“그게 언젠데? 종일 지옥 같았어? 왜? 누가 뭐라고 했어?”

“뭐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나. 그냥 그때 감정만 남은 거지. 점점 더 큰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아빠는 그냥, 나이만 먹나 봐,”


고해성사 같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었다. 어린 딸에게 자신이 미숙한 어른이란 걸 무덤덤하게 시인하고 나서 먹는 김치찌개가 얼마나 시원하고 달달하던지. 그러나 루리의 얼굴엔 설핏 실망이 스쳤다.


“어른이 되면 뭐든 좀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종일 지옥이라니 정말 너무 절망적이다. 우리 아빠 힘들었겠네, 그래도 아빠 나한텐 여전히 큰 어른이야.”


어린 딸이 어른에게 당신은 어른이 맞다고 위로를 건넨다. 그 어른은 어린 딸에게 자신이 아는 어른의 실체를 알려주고 싶어졌다. 무덤덤한 시인 끝에 이어진 심심한 위로, 그 뒤로 무장 해제가 된 것처럼 형우는 어른들의 비밀을 술술 발설하기 시작했다.


“루리야, 뭐든 너무 많이 알면 더 무서운 거야. 어른이 된다는 건 말이지.

어릴 때부터 쥐고 있던 내 무기들을 하나씩 꺼내서, 불특정 다수와 맞서 싸우는 일이야.

나도 한때는 ‘필살기’란 게 있었는데, 그것마저 소용없어지면 결국 모든 걸 다 써버리고

얇디얇은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랄까. 그땐 아무 무기 없이 그냥 버티는 거야.

어른들이 아이보다 덩치만 클 뿐이지, 사실 겁쟁이가 훨씬 많아.

티브이만 봐도 온통 죽으려고 애쓰는 어른들 뿐이잖아.”


며칠 전,

학원 가는 길에 루리는 뉴스 속 한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풀대는 살구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고층 빌딩에서 투신 소동을 벌인 것이다.

차량 19대 인력 71명이 동원된 ‘난간 위 긴박했던 90분’이란 헤드라인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 건 사실이었다. 댓글엔 온통 지원 인력에 대한 고마움과 여자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죽으려면 제발 혼자 죽어라’는 댓글에 내심 동의하던 루리는 문득 그런 자신이 무서워졌다. 죽고 싶은 여자를 향해 모두가 죽으라고 다그치는 형상이었다.

세상에 겁먹은 겁쟁이는 어른뿐만 아니다. 학교만 가보아도 친구들 말속에 죽음은 수시로 등장하는 단어이며, 그 순간 심정을 대변하는 일종의 표현과도 같은 말이다.


“아냐. 그래도 내 생각엔 어른들이 훨씬 더 강해. 지금 난 딱히 필살기라 할 것도 없어.

어릴 적부터 나도 나름 큰다고 애썼는데, 막상 어른에 비하면 모든 게 시시해. 우린 어른처럼 소리도 못 내보고 죽는 거야.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조금 더 용감해 보일 뿐일지도 몰라.”


서로의 행복에 대해 말한 그날,

루리가 처음으로 형우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날이었다.

자신에게도 꿈꾸는 행복이 있다는 걸 아빠에게 티 나게 뱉고 나니, 마음 한편이 조금 후련했다. 눈치 빠를 형우가 루리 말속에 떠난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서려 있단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날, 형우는 루리에게 ‘열 개의 행복’에 대해 말해 주었다.

행운과는 또 다른 행복.

그것은 누구나 평등하게 한 손에 다섯 개씩, 두 손에 열 개를 쥐고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를 달고 태어나잖아. 네 엄마도 널 낳고 가장 먼저 물은 말이 너 손가락 발가락 열 개 있냐는 말이었어. 사람은 누구나 열 개의 행복을 달고 태어난대. 사람마다 열 개를 쓰는 방법은 모두 달라도 주어진 크기는 같다는 거야.

큰 행복만 좇는 사람은 두세 개를 합친 행복을 누리고, 작은 행복도 누릴 줄 아는 사람은 하나를 열 개로 쪼개기도 해. 그러니깐 세상에 완전히 불행한 사람은 없어. 마음먹기 달렸지.”


아빠가 엄마의 이야기를 꺼낸 일도 놀랍지만 그건 루리가 온전히 행복하길 바라서였다. 자신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을 아빠는 그저 내버려두지 못했다. 루리가 주어진 행복을 오래도록 누리길 바라는 모성보다 애틋한 부성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까맣게 잊고 살았던 열 개의 행복을 루리는 이제 누리고 싶어졌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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