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루리

by 옥유

“야! 이루리, 얼른 일어나! 오늘 편의점 알바 면접 본다며?”


“아 맞다! 편의점! 지금 몇 시야?? 근데 넌 또 왜 우리 집에 있어?”


“히히 나 어제 너희 집 근처에서 과음을 좀 했지 뭐야. 집에 가려니 지하철은 끊겼고, 택시를 타자니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아~ 뉴스 봤지? 연쇄 납치 사건!

글구 너도 알다시피 내가 술이 들어가면 네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고!.”


“안달은 무슨, 할증 붙은 택시비가 아까워서 온 거겠지! 있는 놈들이 더 한다니까 진짜.

날 보고 싶어 왔으면 네 성격에 분명 날 흔들어 깨웠겠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와선.”


“야! 너 친구한테 도둑은 좀 심하지 않냐! 나 고양이 무서워하는 거 잘 알면서! 그니깐 그냥 귀여운 강아지 정도로 하자~! 오케이? 글구 말 나온 김에, 나 아니었으면 너 또 늦잠 자서 알바 면접은 날렸을걸?

근데... 너 어제도 수면제 먹은 거야...?”


유진은 루리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 같은 존재다. 전부는 아니지만 루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둘은 중학교 동창이었고, 잠시나마 예고 입시를 함께 준비하며 동고동락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루리도 유진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루리는 방바닥에 놓인 유진의 악기를 한번 슥- 쳐다보더니, 분신 같은 검은 보부상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급히 집을 나섰다.


‘이 속도로 가면 십 분이면 충분해. 이루리. 이번엔 제발~! 그래도 명색이 면접인데 머리라도 좀 말리고 나올 걸 그랬나?’


루리의 어깨가 축축하다. 어깨까지 내려온 젖은 머리카락에서 하얀 티셔츠로 스며든 물기가 등허리를 타고 내려오는 것만 같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편의점 앞에 도착했고, 종종 거울 앞에서 지어 보이던 표정을 장착하기 이른다. 두 눈을 치켜뜨고 입꼬리를 한껏 올린 후에 루리는 편의점 문을 열었다.




띠리링~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야간 알바 면접 보러 왔는데요.”


짧은 인사를 건네고 보부상 가방을 한참 뒤적거리고서야 많은 이력서 중 하나가 루리의 손끝에 닿았다.


“저... 여기 이력서요.”


“아, 저도 알바생이라.. 사장님은 십 분 정도 걸린다고 하셨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네. 제가 실수를...죄송합니다.”


부드럽지만 어딘가 퉁명스런 말투였다. 정신을 차리고서야 루리의 시선이 알바생 얼굴에 닿았다.


‘아. 누가 봐도 알바생이잖아. 왜 저런 얼굴을 사장님이라 착각했을까. 제발 정신 좀 차려. 이루리....!’


뭐든 시작도 하기 전에 덜렁대는 건 루리의 긴장 척도가 맥스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불씨 같던 불안은 어김없이 순간의 적막을 데려왔고 이내 고질병처럼 ‘멍 때리기’가 시작됐다. 얼마 후,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듯 의식의 흐름을 벗어나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은 순간, 루리는 자기 시선이 알바생 하얀 손에 오랜 시간 머물렀단 걸 깨달았다.


‘어? 저 손, 어디서 봤더라? 분명 낯익은 손인데?’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이 낯익는 건 만무하지만 정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손이 틀림없었다.


띠리링~


편의점 유리문에 붙어있던 세 개의 금색 종이 서로 엉키며 울리는 건 누군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늦어서 미안해요! 어? 남자분이 아니네?”


“아. 사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네? 저 그때 여자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아, 그랬나? 우리 당근으로 연락했죠? 왜 난 남자라고 착각했지? 아이고, 미안해서 어쩌지? 야간 근무는 워낙에 위험 요소가 많아서 아가씨처럼 여리여리한 여자분은 좀 그래!”


“아... 네. 알겠습니다.”


이력서 든 루리 손이 자꾸만 어색해진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수치심 같은 것들이 젖은 머리를 더 축축하게 만들고, 얼굴 근육은 제멋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처음 지어 보는 어색한 웃음이 서서히 루리 얼굴 위로 번졌다.


‘당장 돌아서 여길 나가야 해! 이루리! 지금 상황에선 인사 따윈 안 해도 돼!’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가씨. 내가 미안해서 그런데 마실 거라도 하나 가지고 가요! 응? 온다고 고생했을 텐데.”


“아니요.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띠리링~

전혀 안녕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루리는 마음과 달리 두 번이나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이 정도면 유진이 말한 대로, 루리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 아니라 지랄병이다.

공고를 보고 몇 시간 고민하고 마음먹기까지 루리에겐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루리가 야간 알바를 지원했단 말에 유진은 결사코 루리를 말렸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응? 어두워지면 길거리도 못 돌아다니는 애가 캄캄한 밤에 집도 아니고 밖에서 일한다는 게 말이 돼? 잠잘 때도 불이란 불을 다 켜고 자는 애가 야간 알바가 가당키나 하냐고! 혹시... 그때처럼... 네가 또 그러면... 내가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는데. 응?”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살기 급급해서 야간 알바를 지원하긴 했지만 루리도 자신이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 혼자 잠들었던 그날- 그놈이 아빠를 향해 도끼를 들었을 때 마침 루리도 잠에서 깨어났다. 비어있는 아빠 자리에 소름이 돋았다.

이른 새벽. 기다리던 아빠 대신 경찰이 루리를 찾아왔고, 그렇게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그날 이후, 루리는 불을 켜고 살아야 했다.




“아직 안 갔어?”


“어? 면접은?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날 남자로 착각했나 봐. 여자는 안 뽑는대.”


“뭐? 그걸 말이라고 해? 너 가기 전에 여자라고 말 안 했어??”


“말했지. 하여튼 그렇게 됐어.”


“세상에 미친놈 천지네. 근데 지금 내가 ‘휴- 다행이다’ 하면 네가 속상하겠지?”


“너 집에 안 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 안 그래도 집에 가려니 너무 귀찮았는데! 마침 나 오늘 레슨 취소야! 완전 잘 됐지~? 오늘 너랑 종일 붙어있어야겠다! 하룻밤 더 자고 간다. 오케이~?”




그날은 루리가 처음 죽으려 했던 날이었다.

루리가 어둠 속에서 죽음을 택한 이유는 순전히 아빠를 위한 일이었다. 죽음 앞에서 느꼈을 아빠의 두려움과 가장 닮은 두려움으로 죽는 것이 루리가 찾은 추모의 방식이라 한다면 어느 누가 이해해 줄까.

가장 공포스럽게 죽어야 했다. 불을 끄자마자, 보이지 않는 환영의 손아귀에 루리 몸이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그리고 루리 옆, 나르던 종이 한 장.

최대한 담백한 유서를 남기고 싶었지만 실은 루리의 마지막을 알릴 사람도 부탁할 사람도 미안한 사람도 유진이 유일했다.


유진.

우선 미안해. 넌 내게 유일한 사람이야.

통장에 돈이 좀 있어. 나 바다에 뿌려주고 남은 건 내 마음이야.

그동안 고마워, 잊지 못할 거야.


구겨진 종이 속, 루리의 마지막이 될 뻔했던 그날의 흔적을 다시 읽어 보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담백은커녕,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은 것들에 대한 미련이 그득그득했다.

특히 ‘잊지 못할 거야’ 그 마지막 말은 두고두고 유진을 괴롭게 할 말이었다.

‘날 잊지 말아 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날 루리를 발견한 유진은 그날을 잊지 못했다.

칠흑 같은 어둠, 차가운 방바닥, 루리의 차가운 손, 방 안을 가득 메운 차가운 공기, 따뜻함이라곤 하나도 없는 생의 마지막을 유진은 두 눈으로 보고야 말았다.

그 이후로 둘은 약속이나 한 듯 그날의 일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너랑 오랜만에 맥주 마시니깐 증말 꿀맛이다!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설마 그깟 알바 하나 떨어졌다고 지지리 궁상인 거야?”


“아냐 그런 거.”


“그럼 뭐야. 요즘 힘들어? 주인집에서 보증금 올려 달라 했다며. 그것 때문에 급하게 알바 알아본 거야?”


“아니. 이제 몸도 많이 좋아졌고, 다시 일해야지. 유진이 다 네 덕분이야.”

“뭐야? 갑자기?? 내 덕분이라면 말이지. 널 걱정하는 날, 조금만 생각해 줄 순 없겠니?”


“네 맘 잘 알아. 근데... 이제 안 죽고 싶으니까...”


“뭐야? 이 감동적인 멘트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태어난 김에 그냥 살아보려고.”


“잘 생각했다. 이루리! 장하다 장해! 그럼 그냥 사는 거 말고, 태어난 김에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꼭 행복해! 네가 느끼기엔 벌써 스물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겨우 스물이야. 죽을 때 죽더라도 너희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다던 ‘열 개의 행복’을 다 누려보자고!”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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