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시 읽기 #1 이병률 <고양이가 울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동네 골목에 살았다
검은 비닐봉지와 살았다
검은 봉지 부풀면 그것에 기대어 잠들었고
검은 봉지 위로 빗물이 떨어지면
그것을 핥아 먹으며 살았다
어느 날 검은 봉지가 사라졌다
바람에 날리기도 하였을 것이고
누군가 주워가기도 하였을 것이나
아주 어려서부터 기대온 검은 봉지를 잃은
고양이는 온 동네를 찾아 헤매다
죽을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검은 봉지를 형제 삼아 지내온 날들
고양이가 울었다
잠든 형제를 위해 자꾸 자리를 비켜주던 날들
뼛속으로 뼛속까지 바람이 불었다
소방서에서 동물 구조출동으로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다친 길고양이는 일상적으로 구조해온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달랐다.
특별히 다를 건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 어렸고, 또 귀여웠다.
어리고 연약한, 그리고 귀여운 대상에게 상냥하게 대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기는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는데, 그 가벼운 움직임 하나 하나가 보살펴주는 입장에서는 축복이다.
불편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존재가 보살피는 사람의 소유욕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이 얽혀 소방서에서 이 아기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도맡아서 기르는 사람이 러시안블루 종의 이 고양이를 두고 이름을 '블라디미르 푸틴'이라고 지어버렸다.
.. 다행히 애칭은 그나마 생김새와 걸맞게 '푸티', '쁘띠' 등이 되었다.
푸티와 함께한 시간은 채 2주도 되지 않았다.
집을 만들어주고, 꼬박꼬박 배변을 시키고, 고양이 분유를 사서 먹이는 등
처음 키워보는 사람들 치고는 이래저래 노력했지만 2주 만에 아기 고양이는 생을 마감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다음에는 무엇을 사줄까,
이 아기 고양이는 어떻게 클까, 크면 말은 잘 들을까 등 온갖 기대에 가득 찬 상상을 했다.
우리는 이 고양이한테 뭘 그리 기대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서로에게 '검은 비닐봉지'가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그리며 살았다. 그런 것에 기대고 낭만을 품으며 살았다.
바람에 날리고, 누군가 쉽게 주워갈 만큼 그 본질은 가벼웠더라도 허무하진 않겠지만
역시나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그 '날들'때문에 '죽을 것처럼 아픈'걸 피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다.
푸티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너'도 나한테는 확실히 그랬다.
인정하기 싫지만 너의 본질도 '검은 비닐봉지'처럼 가벼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에게 기대어 잠든 날들, 너를 생각하며 보낸 날들, 너와 함께 한 날들.
그 시간이 쌓여 너는 이상이 되고, 꿈이 되고, 신앙마저 되어갔다.
그래서 나 역시 온 동네를 찾아 헤매었고, 죽을 것처럼 아프기도 했다.
뼛속에서 뼛속까지 바람이 불었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그랬다.
기대어 산다는 건 내 상황이 동네 골목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내가 미숙하고 어린 짐승이기 때문이었다.
약하고 불안하고, 기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곧이 될 수도 있고,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될 거다.
이 동네 골목을 떠날 거고 어리다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게 커버릴 테지.
그 날을 위해 오늘 고양이는 울었고, 죽을 것처럼 아프고, 온 동네를 찾아 헤매었다.
뼛속에서 뼛속까지 바람이 불었던 성장통을 지나고 있다.
이제 기댈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찾는 안목을 기르거나
스스로가 낭만과 환상의 원형이 되어 일어서거나 할 일만 남았다.
다행히 최초의 상실은 아닌 만큼 나도 아주 어리지는 않다.
아, 그러니까 푸티.
너에게 기대려만 하고 기댈 곳이 못되어줘서 미안해.
어깨에 올라와있는걸 좋아하는 푸티.
we witn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