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시와 같은 사진을 찍을 것"
수업에서 교수님은 내 사진을 보고
미적 센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미적 감각이 뛰어난 거랑
미적 가치가 있는 거랑은 다른 거라고.
감각이 없다면 가치를 구현할 수도 없겠지만
가치 없는 걸 잘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이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앞으로의 과제였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서.
흔히 쓰는 신상란에 취미는 문학,
특기는 촬영/편집이라고 쓴다.
자연히 목표는 시와 같은 사진,
소설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다.
아직은 그렇다.
사진이 영상보다 조금 더 쉽다.
잘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래서 어려워질 때까지 찍으려고 한다.
콧대가 좀 꺾여봐야겠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접한
고은 시인의 '만인보'는 충격이었다.
만 명에 대한 시라니...
이토록 성실한 인물지는 상상조차 못했었다.
그때부터 마음 한 켠에 늘
만인보를 엮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내 방식으로,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그때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는 너무 서툴렀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러니까 시와 같은 사진을 찍을 것.
'사진, 사람, 사람'은 사진으로 엮는 만인보다.
덧.
쓸데없는 얘기지만
내 사진은 예의 바르다.
영상도 그래 왔다.
그러지 못한 사람이
예의 바른 채를 하고 있다는 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거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인지.
지금의 경우에는 겁내고 있어서.
예의 바르지 않을 때까지,
숨기고 겁내지 않아도 될 때까지
찍고 또 찍을 거다.
예의 바르게 하는 이유가 있다면
예의 바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만들면 되니까.
이유가 생길 때까지 남아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