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힙스터인 당신과 내가 알아야 할 것들
0. 시작
일본 대중음악사에는 ‘씨티팝’ 이라는 장르, 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이 있었다. 1970년~1980년대에 중흥했던 스타일로 - 대표적으로는 마리아 타케우치(‘Plastic Love'로 잘 알려진) , 그리고 그의 남편이자 프로듀서인 타츠로 야마시타가 중심이 되는 -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던 기조였다. 그 이름에 걸맞게 시티팝은 고도 성장기의 도쿄 등지에서 유행했던 장르로, 서구의 재즈·펑크·디스코 등의 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실험음악이었다. 신디사이저와 같은 전자음악들을 기반으로 쿨함과 낭만을 코드로 짜여진 그루브는, 구매력이 높아진 일본 대도시인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이 주된 배경이고, 쿨한 사랑을 하는 남녀가 시티팝의 단골 소재였다. 지금에야 식상한 가사들 - 예컨대, (“사랑 따윈 그저 게임일 뿐 / 즐긴다면 그걸로 된거야”) 이 청량감 있는 여성 보컬들을 통해 사회 전역에 흩뿌려졌다. (“이제 곧 아침, 가까워지는 이 냄새 / 혼자만의 드라이브 / 그저 문뜩 떠오른, 한밤 중의 조-크”) 누군가는 그런 '쿨한' 조류를 서구에 물든 치기어린 삐딱함, 또는 늘상 있는 젊은 세대의 반항심 따위로 뭉뚱그려 격하했겠지만, 그러한 스타일의 유행은 분명 당대의 어떤 어렴풋한 생각, 혹은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 시대는, (나는 외로워도 슬퍼도) 이 사회는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라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발전해나가야만 한다는 것’.
당위는 언제나 그렇듯 태생적으로 불안을 내포한다. 쿨해야한다는 것은, 걱정을 들킬까 불안함을 의미한다. 낭만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불안함을 의미한다. 씨티팝이 유행하던 시기는, 한 마디로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거품 낀 시대였다. 어쩌면 당대의 젊은 세대가 향유했던 것은 시티팝이 표상하는 쿨한 라이프 스타일 그 자체가 아니라 - 그 이면에 도사리는 몰락의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능숙하게 덮는 찬란한 일상에 대한 안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거품이 꺼진 후, 시티팝은 ‘시부야 계’ (하우스 일렉트로니카 중심음악)에 대세를 내어주고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저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그때 그 시절’을 상징하며 남게 될 이 장르는, 그러나 뜻밖에 장소에서 소생된다. 구미권의 힙스터들을 중심으로, 전자음악계의 실험적 문화사조 - ‘베이퍼웨이브’라고 불리우는 -를 통해 복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복고 열풍이 거세지면 유행을 탄 베이퍼웨이브 장르는 그 자체가 지닌 과도한 키치성 때문에 한 철 장사에 그치는 듯 하였으나, 이를 통해 현재로 호명되어 온 시티팝이라는 장르는 최근 대중음악계에 꽤나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닌 게, 대표적으로 윤종신과 같은 싱어송 라이터는 ‘시티팝을 추억한다’ 며 곡(“Welcome Summer”, 2017)을 발표했고, 전자음악 좀 만진다 싶은 아티스트들은 죄다 시티팝 풍의 그루브를 조직하여 인디 씬이나 소위 ‘힙스터’씬에서 기량을 뽐내고 있다.
이렇게 파생된 음악들은 물론 BTS나 대형 기획사 아이돌 음악에 비해서는 시장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재호명된 ‘시티팝스러움’이 유튜브나 ‘힙한’ 젊은 공간(예컨대 을지로)에서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유투브에서 무려 40년 전에 발매된 ‘Plastic Love'를 들으며, 이렇게 말한다.
“일본 버블 경제시기의 풍요와, 아릿한 감성이 느껴진다.”(추천수 50)
그러자 누군가는 이렇게 자문한다.
“왜 우리는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본의 70-80년대가 그리운 거지?” (추천수 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