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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현 Mar 06. 2022

꽃샘추위 견디기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그때는 그렇게 썼었다. 글에 대한 빚은, 글로 갚아야만 한다, 고

정확히 1년 전, 영화 <소울>을 본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에만큼은 여전히 동의한다.


요즈음에는 약을 먹지 않고도 잘 잔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소량의 안정제를 복용해왔다. 부정적인 생각과 불면증에 대한 의사의 처방이었다. 꾸준히 복용해왔기 때문일까, 나는 이제 약을 먹지 않고도 잘 잔다. 이따금씩, 다음날의 출근이 걱정되거나 할 때 만 빼면.


병원에 처음 간 날, 나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 인생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습니다. 무언가 의미를 발굴하고 싶어서, 찾고 싶어서 쓰던 글이 오히려 목을 옥죕니다. 글 쓰는 순간은 즐겁지만 그걸 생각하면 잠이 안 오고, 잠이 안오면 글은 더 안써지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관두자니, 내 인생이 결국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남기지 않고 끝날 것이 두렵습니다.”


의사는 대부분 그냥 내 말을 들었다. 나는 문득 이런 내 나약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 시원하게 말하고 나자 더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말했다. 의사는 힘들면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나는 그런 말을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힘들수록 더 무언갈 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만약 내가 지금 하는 것을 그만둔다면, 나는 결국 아무것도 없게 될거라는 불합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다행히 안정제는 효과적이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자 나는 점점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고, 운동이나 요리, 식단 같은 일상의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글은 의식적으로 쓰지 않았다. 그리고 책도 의식적으로 피했다. 당시 내겐 일종의 활자공포증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쓴 책을 읽으면, 남들은 이 시간에 이렇게 무언갈 써서 남기는데 나는 대체 뭐하고 있는거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자괴감에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급했었다. 그때 쓴 글을 읽어보니, 이럴수가. 어떻게 이렇게 호흡이 가쁜 글을 썼을까? 글을 읽는 내내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제발 숨 좀 쉬면서 말해!’ 우습게도 그때 나는 스스로 꽤 침착하게 자기 객관화를 하며, 느린 호흡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아래 문장같은 글을 쓸 때도.


 나의 불꽃의 한 부분인 ‘글쓰기’. 글을 쓰면서도, 쓰지 않으면서도 늘 무서웠다. 내가 나의 불꽃을 지킨다는 고귀한 취지로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잘라내고, 보여지고 싶은 부분들만 부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결과물은 여지없이 그랬다. 찢고, 지웠다. 도피하고자 글을 쓰지 않고 파산신청을 했었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글에 대한 빚은 글로 갚아야만 한다는 것을, 불꽃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음을, 늦게나마 배웠으니까.


위 문단을 읽고 나는 당시의 내가 스스로 몰려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되, 그것을 여전히 부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니까 당시의 나는 내 내면에 발생한 문제상황을 직시하고 있으나, 그 상황을 규정함으로써 사태의 해결을 이르게 선언하고 싶어했다. 나는 조금 더 솔직했어야 했다. 그렇게 빨리, 상황을 단정 짓지는 말았어야 했다. 나는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너는 정말로 글쓰기를 좋아하니? 라고.


지난 내 글에는 가쁜 호흡이나 문장부호의 불필요한 남발 등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불꽃을 ‘글쓰기’라고 단정 지은 데에 있었다. 그 글에서 나는 내게 더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좋아한 것이 ‘글쓰기’ 였는지, 아니면 ‘글을 쓰는 나’였는지.


지난 몇 달간 약을 먹고, 운동을 비롯해 다른 새로운 취미들을 즐겁게 배우며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나’라는 자아에 과도하게 집착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쓰기 외에서 삶의 진실이나 기쁨을 발견할 수 없을 거라 믿었다. 지금에야 우습게 들리지만, 정말로 그랬다. 글쓰기 외의 활동들을 평가절하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그렇지만 나는 운동을 하고 근육을 키우며 색다른 성취감을 느꼈고, 영양학과 요리를 공부하며 내 몸에 대해 이해하는 기쁨을 누렸다. 다양한 사교모임에 참석하며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재미를 느꼈다. 지나가는 계절과 변하는 날씨의 색깔을 보고, 냄새를 맡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약의 효과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몸의 뻣뻣해진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좋아하는 일이 싫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다른 좋아하는 일들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일들을 싫어했다. 그러자 좋아하는 일이 잘 안 될때마다 좋아하는 일과, 그 일을 좋아하는 나를 탓하고 힐난하게 되었다. 감정과 감각이 협소해졌다. 생각하고 느끼는 범주가 점점 좁아지게 되었으니, 무언가 자연스레 쓰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건 당연했다. 그때의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붙들고, 계속 하면 될 거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글쓰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약 반 년을 자유롭게(?) 지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유튜브랑 인스타만 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운동만 했다. 어떤 날은 술을 진탕 먹고 뻗었다. 어떤 날은 문득 여행을 떠났고, 정처없이 걸었다. 언제부턴가 잠이 솔솔 잘 왔다. 어느 날 뜬금없이 재미있는 꿈을 꾸고 일어나 그것을 이야기로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펼쳤다가, 이내 접었다.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조금 추워서 이불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지난 달, 오랜만에 병원을 찾았다. 3개월 만이었다. 의사는 내게 잘 지냈냐고 물었다. 나는 잘 지냈다고, 정말 잘 지낸다고 답했다. 의사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약은 줄일테니까, 언제든지 상담이 필요하면 또 예약하라고. 나는 마지막으로 의사에게 물었다.


“요즘 문득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조금 무섭습니다. 글을 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예전처럼 돌아가면 어떡하지, 하고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의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이제는 재현씨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글쓰기 때문에 아팠던 건 아니라는거, 이제는 아시잖아요. 저라면, 저라면 써볼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진료실을 나와 집으로 왔고, 채소와 닭가슴살로 요리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잘 잤다. 그리고 며칠동안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달라진 것이라면 조금 더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는 점 정도. 그리고 인스타를 보다가 어린이책 번역 수업이랑, 소설 창작 수업도 신청했다. 여전히 조금 겁이 나긴 하지만, 재미있어 보여서. 나는 꽤 오랫동안 무언갈 배우는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그리고 그걸 다시 기억하게 된 지금을, 아끼지 않고 누리고 싶다. 내게는 더 이상 글쓰기만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수많은 불꽃들이 있다. 나는 그 불씨들을 지키고 싶다. 나는 가장 우울한 순간에 그들에게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내 마음을 천천히 뎁힐 것이다. 이따금씩 추워지더라도, 그 온기를 잊지 않는 한 괜찮을테니까. 


3월이 되었고, 나는 기대 반 걱정 반 마음으로 주말 내내 아직은 추운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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