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디함과 클래식의 차이
두바이쫀득쿠키.
요즘 유난히 자주 들리는 말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하다가, 어딘가에서 아삭거리고, 다시 초콜릿이 밀려온다. 겉은 찹쌀떡처럼 쫄깃하지만, 단면을 가르는 순간 전혀 다른 식감이 튀어나온다. 초콜릿의 진한 풍미 속에서 느껴지는 그 아삭함. 쫄깃함과 아삭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대비다.
사람들은 그 정체를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피스타치오라느니, 견과류라느니.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무엇이냐보다, 맛이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쫀득함과 아삭함 사이,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단맛. 그래서 더 궁금해지고, 그래서 더 줄을 서게 된다.
요즘 MZ들이 열광하는 트렌디함의 정점. 두바이쫀득쿠키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설명이 필요한 맛보다는 직관적인 맛이 더 좋다. 무언가를 먹으며 만든 사람의 의도를 굳이 떠올리게 되는 것보다, 입에 넣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와닿는 그런 디저트 말이다. 군대에도 그런 간식이 있다. 줄을 설 필요도, 긴 설명도 필요 없는 맛. 포장을 뜯는 순간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는 달콤함.
수많은 군인들의 기억이 겹겹이 쌓인 간식.
초코파이다.
초코파이는 1974년에 국내에 처음 등장해, 어느덧 반세기를 훌쩍 넘긴 레전드급 과자다. 두 개의 동그란 비스킷 사이에 푹신하고 쫀득한 마시멜로를 듬뿍 넣고, 그 위를 초콜릿으로 감쌌다. 한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하고, 안은 말랑하다. 달콤함이 분명하고, 망설일 틈이 없다.
아마 모든 군인에게는 각자만의 초코파이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군인에게 초코파이란, 가장 고되었던 훈련병 시절을 버티게 해준 보상이자, 힘들고 팍팍한 군 생활 속에서 종교행사를 통해 처음 마주한 ‘달콤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처음 입대해 맞닥뜨린 규율과 통제로 가득한 훈련소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피곤했다. 개인의 영역은 철저히 배제된 단체 생활. 같은 옷, 같은 식사, 같은 근무, 같은 훈련, 같은 잠자리. 훈련소의 하루는 그렇게 모든 것이 공평했다. 하루 중 가장 마음 편한 시간은 밥을 먹을 때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 뿐이었다. 그 시간을 제외하면, 쉴 틈 같은 건 없었다. 특히 식사시간은 늘 기다려졌다. 비록 반찬은 늘 부족했고, 밥만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활동량이 워낙 많았기에 잘 먹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달콤함’이었다.
이상하게도 군대 식단에서는 ‘단 음식’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가끔씩 나오는 ‘고구마 맛탕’ 정도였고, 그마저도 흔한 메뉴는 아니었다. 그걸 제외하면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던 중, '당'을 채워줄 시간이 다가왔다. 입대 후 처음으로 종교행사에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훈련병들 사이에서는 종교행사에 가면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날을 앞두고 다들 묘하게 들떠 있었다.
처음으로 선택한 곳은 원래 신앙을 가지고 있던 교회였다. 교회에 들어서자, 이곳은 군대와는 별개의 공간인 듯했다. 익숙한 찬양 소리와 잔잔한 피아노 건반 소리가 굳어 있던 마음을 천천히 풀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경건해진 마음으로 앉아 있던 나에게 주어진 초코파이 두 개는, 그야말로 영혼을 달래주는 선물이었다. 입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버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초코파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입대한 이후 어딘가에 묻어두고 있던 ‘단맛’이라는 감각이 그제야 되살아났다. 몸 어딘가가 천천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집을 떠나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단했던 탓일까. 초코파이 두 개에, 나는 잠시나마 치유를 받았다.
종교행사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묘하게 무거웠다. 무엇보다 나를 녹여주었던 그 ‘달콤함’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이제 막 일요일이 끝났을 뿐인데, 벌써 다음 종교행사가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초코파이를 다시 먹으려면 또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괜히 서러웠다.
한 상자가 열두 개라던데, 그날 받은 두 개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무 생각 없이 한 상자째 꺼내 놓고 마음껏 먹어보고 싶다는, 그 시절다운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뿐만 아니라 중대의 모든 훈련병들이 초코파이라는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새 귀에 쏙 들어오는 소문 하나가 돌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종교행사 장소로 교회를 선택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종교이기도 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고르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몰리다 보니, 교회에 가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초코파이는 두 개가 전부였다. 반면 불교는 달랐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서, 초코파이를 네 개나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이번 주에는 제가 불교 탐방을 다녀오겠습니다. 그냥 한 번도 안 가봐서 체험만 하고 오는 겁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초코파이를 위해 잠시 종교를 바꾸었다. 그냥, 잠시 방황했을 뿐이다.
처음 가본 불교는 20년간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꽤 낯설게 느껴졌다. 반야심경은 신기했고, 교회보다 훨씬 고요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경건해졌다. 무엇보다 교회와 달리 방석에 앉아 법회를 드려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허리가 끊어질듯 아팠다.
그래도 괜찮았다. 초코파이만 네 개를 먹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일방적인 설법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으로 진행되었다. 스님께서 질문을 던지면, 훈련병이 자신의 생각이나 깨달음을 말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스님 옆에는 초코파이 상자가 천장에 닿을 듯이 높이 쌓여 있었다. 설법시간에 자신의 깨달음을 전한 훈련병에게 상품으로 초코파이를 주는 것 같았다.
그날의 설법 주제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 즉 아낌없이 베푸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 스님이 나에게 초코파이를 아낌없이 '보시'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교 지식이라고는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와 혜초의 천축국 정도밖에 모르던 내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한 훈련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머니와의 기억을 통해 깨달은 ‘보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해한 보시의 의미와, 어머니가 늘 강조하셨던 가르침,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깨달음으로 남았는지를 차분히 풀어냈다. 얼핏 기독교 신자인 내가 듣기에도, 그 말은 나 같은 불교 나이롱(?)신자와는 차원이 다른, 굉장히 현기(玄機) 어린 이야기였다.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깨달음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신앙적 성찰 말이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그 훈련병의 이야기가 끝나자, 설법을 전하시던 스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조용히, 감동한 듯한 눈빛으로 그 훈련병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옆에 쌓여 있던 초코파이 상자를 두 팔로 끌어안으셨다. 한 번에 안기지 않을 만큼의 양이었다. 스님의 품 안에 쌓인 초코파이 상자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상태로 스님은 아무 망설임 없이, 그대로 그 훈련병에게 건네주셨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얼핏 세어보았을 때, 여덟 박스는 족히 넘어 보였다. 무려 여덟 박스였다. 낱개로 치면 거의 백 개에 가까운 양이었다.그건, 훈련병 한 명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맙소사. 100개라니.
그 훈련병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초코파이를 소대원들과 함께 원 없이 먹겠다며 부대로 돌아갔다. 나는 혹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결국 내 손에 남은 건 고작 초코파이 두 개뿐이었다.
그렇다. 초코파이를 네 개나 받을 수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다. 초코파이를 더 받으려면, 설법시간에 깨달음이 담긴 말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 같은 나이롱 신자에게 그것은 애초에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다음 주, 나는 다시 교회로 돌아갔다. 그리고 하나님께 조용히 ‘회개 기도’를 드렸다. 고작 초코파이를 더 먹어보겠다고 잠시 불교를 기웃거렸던 내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온 것이다.
결국, 나의 짧은 방황은 초코파이 두 개로 끝났다.
시간이 지나 훈련병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초코파이의 단맛도 어느새 익숙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달콤함을 기다리며 일주일의 훈련을 버텨내던 순간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훈련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던, 그 직관적인 달콤함.
단순한 단맛을 초월하여 심신을 위로해주던 그 편안함이 말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초코파이가 러시아 군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매출은 급격히 늘었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초코파이가 주는 직관적인 달콤함은, 시대와 국경마저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전쟁 속의 위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훈련소의 일주일을 버티게 해주던 보상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어떤 군인들이 초코파이를 받아 들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또 한 주를 버텨내게 해주는 작은 위로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두쫀쿠처럼 새로운 식감과 설명이 필요한 단맛이 유행하지만, 내 기억 속 단맛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