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 진지, 근엄
"1소대장 오늘 나 대신 동석식사 들어가. 잘할 수 있지? 믿는다."
소대장 시절, 중대장님은 가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시 대대장님은 점심시간마다 각 중대장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즐기셨다. 문제는 그 자리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각 중대의 업무 추진 상황을 자연스럽게 보고받는, 이른바 ‘워킹 런치’에 가까운 자리였기 때문이다.
장교 계급 체계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소위에게 ‘중령’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상당한 부담이었다. 대대장은 대대 내 최고 계급자이자, 부대를 자신의 의지로 직접 지휘할 수 있는 영관장교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제 막 임관해 소대 하나를 맡은 소대장에게 그런 대대장과의 동석식사는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중대장님 역시 그 부담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대장님 또한 피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문에 지형정찰이나 현장 확인 같은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때때로 그 자리를 나에게 넘기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때의 나는 ‘선임소대장’과 중대장님의 ‘신뢰’라는 말에 떠밀려, 마치 소가 어디론가 끌려가듯 식당으로 향했다. 동석식사는 점심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내게는 하루 중 가장 무거운 시간이 되곤 했다.
동석식사라 해봐야 형식만 놓고 보면 별것 없다. 군대 식판에 각자 먹고 싶은 반찬을 자율적으로 덜고, 원형 테이블에 대대장님을 중심으로 작전과장, 주임원사, 그리고 각 중대장들이 순서대로 앉아 함께 식사를 한다. 일반 병사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누군가가 배식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담아야 하는 ‘자율배식’이라는 점 정도다. 그렇다고 원하는 반찬을 마음껏 먹을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상급자인 대대장님과 식사를 함께하게 되면, 신경 써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복장점검부터 시작한다. 두발은 깔끔한지, 면도는 제대로 했는지부터 확인한다. 전투화에 흙은 묻어 있지 않은지, 광은 살아 있는지도 다시 한 번 살핀다. 하급자가 식당에 먼저 도착해 상급자를 기다리는 것 역시 일종의 군대식 예절이다. 식사 시작 10분 전에는 식당에 도착해 식판을 준비하고, 대대장님이 먼저 배식을 시작하면 그제야 뒤따라 반찬을 덜어낸다. 이때도 요령이 필요하다. 너무 적게 담아도, 너무 많이 담아도 안 된다. 상급자와 식사 속도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밥과 반찬은 모두 ‘적당히’. 욕심 많아 보이지 않도록, 마치 정량배식이라도 받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담아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대장님이 먼저 식사를 시작해야 주변 사람들도 그제야 숟가락을 든다. 비단 군대뿐 아니라, 조직 사회라면 어디서나 통하는 암묵적인 규칙일 것이다. 상급자의 식사 속도에 내 보조를 맞춰야 하고, 언제 말을 시킬지 모르기에 밥과 반찬은 조금씩, 천천히 씹어 삼켜야 한다. 혹시라도 나에게 질문이 날아오면, 왼손으로 입을 살짝 가려야 한다. 말없이 체득한 예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귀는 늘 열어두어야 한다. 대화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대장님께 보고할 만한 내용이 들리면, 전투복 윗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재빨리 메모해 둔다. 대대장님이 대대원 전체에게 공통적으로 지시하는 사항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도 흘려들을 수 없다.
나는 지금 밥을 먹는 게 아니다.
이건 밥을 빙자한 회의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1소대장, 오늘 중대는 뭐하고 있지?"
정신이 번쩍 든다. 드디어 내 차례다. 내 한마디 보고에 따라 중대장님은 물론, 중대 전체의 일과가 의미를 가질 수도,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숨을 고르고 정신을 다시 붙잡는다. 식당에 오기 전,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브리핑을 차분히 꺼낸다.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예, 대대장님. 최근 강조하신 교육훈련 지침에 따라, 중대는 오늘 ○○훈련장에서 단차 단위로 분대장 통제하 승무원 훈련을 진행 중이며, 중대장이 안전을 위해 현장 확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대대장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걸로 충분하다. 각 중대의 브리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젓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놓으며 식사를 잠시 멈추는 것이 대대장님의 습관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 나는 또 한 번 중대원들을 무사히 지켜냈다. 이 정도면, 오늘 저녁은 중대장님께 맛있는 걸 사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회의를 빙자한 동석식사가 끝나면, 나는 가장 먼저 시계를 본다. 소대장들끼리 식사를 하면 점심은 늘 ‘10분 컷’이지만, 대대장님과의 동석식사가 끝나고 나면 시계는 어김없이 1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밥 먹고 잠깐 눈을 붙여야 할 점심시간은 이미 훅 지나가 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 하루, 중대가 무사히 넘어갔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동석식사는 그 이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대장님은 여전히 식사를 하며 중대 보고를 받으셨고, 나는 가끔 중대장님을 대신해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렇게 대대장님과 식사시간에 대해 전환점을 맞게 된 계기는, 그로부터 몇 달 뒤 맞이한 어느 주말의 종교행사였다.
그날은 사단이 주관하는 교회 예배가 있었다. 대대장님을 비롯한 몇몇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장교들이 참석했고, 나 역시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자리에 함께했다. 예배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사단이 주관하는 행사답게 규모는 컸다. 사단장님을 비롯한 주요 참모들, 각 여단장까지 수많은 고위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대대 간부들 역시 대대장님을 중심으로, 붐비는 식사 장소에서 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식당을 언뜻 훑어보니, 사단장님이 앉아 계신 메인 테이블 바로 옆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는 메인 테이블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다소 구석진 자리가 남아 있었다. 사단장님에게 눈도장을 찍기엔 바로 옆 테이블이 더없이 좋아 보였다. 당시 대대장님은 사단으로 영전을 앞두고 계셨기에,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그 옆 테이블로 안내했다. 당연히 그쪽을 선택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대대장님께서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꺼내셨다.
"저쪽은 사단장님 계시니까 우린 저 구석으로 도망치자"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풉’ 하고 웃어버렸다. 늘 각 잡힌 말투에, 표정 하나 흐트러진 적 없던 대대장님의 입에서 ‘도망’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대대장님도 결국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내가 동석식사를 앞두고 괜히 복장을 다시 점검하고, 식사 속도를 재듯, 대대장님도 사단장님 앞에서는 자리를 슬쩍 피하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단 사실을 말이다.
계급의 무게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시간이 흘러, 나 역시 어느덧 영관장교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하급자와 식사를 하면, 그들이 먼저 물을 떠다주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긴다. 과거의 내가 대대장님 눈치를 보았듯, 이제는 누군가가 내 눈치를 보는 경험을 종종 한다. 아마 예전에 한 번 데인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식사 자리에서 업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위치에서 밥을 먹으며 일을 이야기하려 하면, “밥은 좀 먹자”고 칼같이 자른다. 밥을 먹는 순간만큼은 편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때가 떠오른다. 근엄하고 진지했던 대대장님에게 인간미를 처음 느꼈던, 바로 그때가 말이다. 계급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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