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호르몬 따위는 두렵지 않은
이렇게 생긴 햄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군인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PX, 그러니까 영내매점의 인기 상품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밥상에 반찬으로 오를 법한 비주얼이지만, 군대에서는 군인들의 일상적인 간식으로 통한다. 천 원 남짓한 돈으로 150g짜리 통통한 햄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고, 그 기름진 맛은 생각보다 확실하다. 얼핏 보면 아이들이 먹는 간식 소시지처럼 보여 껍질을 까서 그대로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군대에는, 이 햄을 먹는 나름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매우 간단하다. 이쑤시개나 칼 같은 걸로 가운데를 길게 가른 뒤, 전자렌지에 1~2분을 돌려내면 그럴듯한 하나의 '햄 요리' 하나가 완성된다. 방부제를 잔뜩 머금은 듯한 기름진 맛이 특징이지만, 이상하게도 속은 꽤 든든해진다. 라면과 함께라면 그 존재감은 더 확실해진다. 물론, 건강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그러나 급하다고 가열도 하지 않은 채 껍질을 까서 그대로 먹었다간, “이걸 왜 먹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냥 먹기에는 약간 비린 맛이 돌고, 금세 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을 가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빅팜 안에 든 지방이 서서히 녹으면서 비린 맛은 사라지고, 햄 특유의 녹진한 풍미가 살아난다. 이게 바로 빅팜을 제대로 먹는 방법이다. 전자레인지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군대에는 이를 대신해 줄 방법이 있다. 바로 ‘핫팩’이다.
핫팩은 말 그대로 발열 물질을 봉인한 일회용 손난로다. 군대에서는 유독 이 핫팩이 넉넉하게 보급된다. 겨울 야외훈련만 나가도 주머니 한쪽에 하나쯤은 꼭 들어 있다.
이 핫팩 두 개를 뜯어 흔들어 열을 낸 뒤, 그 사이에 빅팜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그것을 모포 안에 넣어 둔 채 30분쯤 기다리면, 믿기 어려울 만큼 뜨끈한 빅팜이 완성된다.
조리 기구가 턱없이 부족한 군대에서만 가능한, 나름대로는 근사한 ‘요리’다.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작은 수고만으로 확실한 맛이 보장된다면—그 유혹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에게 음식은 종종 기억의 스위치가 된다. 옥수수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르고, 볶음밥 한 접시에는 자취생 시절의 쓸쓸한 배고픔이 묻어 있다. 내게 ‘빅팜’은 그렇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병사 시절의 시간들이 스물스물 되살아난다. 지금은 장교로 근무하고 있지만, 군이라는 공간을 처음 마주한 건 병사 시절이었다. 2010년 이전에 입대한 나에게 군대는 무엇보다도 낯선 세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아침 6시에 기상해 구보를 하고, 식사를 마치면 오전 일과가 이어진다. 점심을 먹고 잠깐 숨을 고른 뒤 다시 오후 일과, 체력단련, 저녁 식사.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선임병들의 갈굼을 견디며 청소와 저녁 점호를 마치고 나서도 긴장은 풀리지 않는다. 새벽이라고 해서 온전히 잠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야간 경계근무가 걸린 날이면, 깊이 잠들 틈도 없이 몸을 일으켜 군장을 챙기고 칼바람을 맞으며 한 시간씩 초소를 지켜야 했다. 그렇게 하루는 끝나는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또 반복된다. 그 무렵의 나에게 하루는 늘 감당하기 벅찼다. 스무 살 언저리의 나이에 군대라는 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즐긴다기보다 버텨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군대라는 울타리는 통제와 억제로 빽빽했고, 그 안에서 개인의 감정이나 선택지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 몸의 움직임과 말투까지도 정해진 규칙 안에서 흘러갔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남은 것은 막연한 피로감과 함께 작은 위안에 대한 갈증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일종의 ‘보상’처럼 든든함을 채워주던 음식이 바로 빅팜이었다. 스무 살 언저리의 청춘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보니, 배고픔이 가장 먼저였다. 부대 인원은 150명 남짓이었지만 전자레인지는 고작 두 대뿐이었고, 그것마저도 자연스럽게 선임병들의 몫이었다. 전자레인지를 한 번 쓰기 위해 줄을 서는 일도 흔했다.
계급 구조의 맨 아래에 있던 이등병에게 빅팜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일은 '언감생심'에 가까웠다. 괜히 눈에 띄었다가는 선임병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고, '갈굼'을 받느니 차라리 배고픔을 견디는게 속편하기 때문이다.
그때 나와 같은 '짬찌(군대은어)'의 처지에 있던 동기 하나가 빅팜을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군대에서 계급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늘 눈치를 보던 시절, 그 조리법은 가히 혁신에 가까웠다. 전자레인지 대신, 생활관에 남아돌던 핫팩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경계근무 나가기 전에 핫팩 두 개를 까서 빅팜을 넣어 침낭 아래 두는 거야. 근무 마치고 돌아와서 먹으면, 그게 그렇게 꿀맛이더라.”
그 조리법을 들은 뒤로, 지옥 같던 경계근무가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추운 겨울, 눈이 하얗게 내려 침낭 속에서 절대 나오고 싶지 않던 어느 새벽에도 어김없이 경계근무 차례는 돌아왔다. 나는 알려준 대로 핫팩 사이에 빅팜을 끼워 침낭 아래에 두고 근무를 나갔다. 초소에 서 있는 동안 내내, 돌아가서 그 빅팜을 먹을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묘하게 들떠 있었다. 어느새 근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총기를 반납하고 군장을 정리한 뒤 활동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한 나만의 만찬을 준비했다. 침낭 안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뜨끈하게 데워진 빅팜의 껍질을 까서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 맛은, 동기의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그날의 고단함이 잠시나마 잊힐 만큼.
지금도 빅팜을 보면 자연스레 그 시절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날, 경계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핫팩으로 데워 먹던 그 따끈한 빅팜 말이다. 요즘의 군대는 많이 달라졌다. 전자레인지는 부족하지 않고, ‘야간 취식’을 한다고 눈치를 주는 선임병도 없다. 병사들을 위한 휴게실은 24시간 열려 있고, 전자레인지 앞에 줄을 서는 일도 사라졌다. 침낭 속에서 몰래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식탁과 의자는 늘 제자리에 있다. 경계근무 역시 많은 초소가 CCTV로 대체되며, 병사들의 부담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빅팜을 꿀맛이라 여기던 스무 살의 나는 이제 건강을 먼저 떠올리게 될 만큼 나이가 들었다. 아마 빅팜의 맛은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그 맛을 기억하는 나와, 그 맛을 둘러싸고 있던 시간과 군대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요즘의 병사들에게도 군대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돌격 직전 장교가 병사들의 입안에 한 숟갈씩 넣어주던 땅콩버터를 평생 잊지 못하겠다고 회고한 노병의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총성과 공포 속에서도 그 한입이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시대와 전장은 달라도, 군대라는 팍팍한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빅팜과 같은 음식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일종의 치료제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