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섞어버리는 매운맛의 조화
'맛다시'라고 들어본적이 있는가. 맛다시는 군대 PX(영내매점)에서 판매되던 양념장으로 대략 2010년도 초중반에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반드시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몇년 전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 '아기병사"로 유명했던 박형식이 해피투게더 방송에서 '맛다시 볶음밥'을 선보이며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맛다시는 약간 달짝 지근하면서도 유난히 강한 매운맛을 지닌다. 텁텁한 고추장과는 분명히 다르며 묽은 비빔면 소스와도 그 결이 약간 다르다. 무엇이든 이 양념장에 비비기만 하면 원래의 맛은 옅어지고, 대신 특유의 강하고 중독성있는 매운맛이 전면에 나선다. 마치 모든 음식을 하나의 맛으로 귀결시키는, 군대식 ‘마법의 양념’처럼 말이다.
맛다시를 지겹도록 먹어본 기억은 벌써 10년도 더 지난 소대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근무하던 부대는 유난히 야외 훈련이 잦았고, 그만큼 야전취사를 할 때가 많았다. 장갑차를 타고 기동하고, 진지를 점령했다가 다시 명령이 떨어지면 또다시 기동하고 점령하고 대기하는 반복. 하루의 리듬은 늘 그런 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찬을 제대로 갖추고 식사를 한다는 건 일종의 사치에 가까웠다. 식사 시간이 통째로 넘어가 버리는 날도 많았고, 밥이 오더라도 ‘반합’이라 불리는 군대식 밥그릇에 밥이며 반찬이며 모조리 때려 넣고 허기만 달래기 일쑤였다. 게다가 당시의 군대는 식사의 질이 지금처럼 좋지 못했다. 그래서 ‘훈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감정은 늘 ‘배고픔’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맛다시는 소대의 끼니를 어떻게든 ‘식사’로 만들어 주는 존재였다. 특별할 것 없는 밥과 반찬도, 맛다시 한 숟갈이면 최소한 삼킬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소대원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그리고 훈련을 버텨내기 위해 맛다시는 늘 군장 어딘가에 들어 있는 필수품이었다.
당시의 군대 문화에서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이 ‘맛다시 비빔밥’은 주로 ‘막둘’이 담당했다. 막둘이란 가장 ‘짬’이 안 되는 막내 병사와 그 바로 위 선임을 뜻하는 말로, 소대에서 가장 막내에 해당하는 인원들이다. 막둘은 그날 식사로 나온 반찬 중 비빔밥과 어울릴 만한 찬을 골라낸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같은 고기류가 나오면 금상첨화고, 콩나물처럼 수분이 적은 나물류도 무난하다. 반대로 생선 종류나 무엇을 튀긴 것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튀김류는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맛다시조차 소화하기 버거운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선별 작업이 끝나면 반찬을 담아온 큰 찬통 하나를 비운 뒤 밥을 넣고, 어울릴 만한 반찬을 모조리 투입한다. 그리고 맛다시를 쭉쭉 짜 넣은 다음 숟가락 두 개로 비벼낸다. 만약 센스 있게 참치캔이나 ‘빅팜’ 같은 햄류가 있다면 감칠맛은 한층 더해진다. 이렇게 맛다시를 넣고 모두 비벼버리면, 어떤 식단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맛은 늘 비슷해지고, 그 비슷함은 이상할 만큼 안정적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은 막둘 셰프들의 고유한 터치가 더해진 ‘비닐밥’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요리로 진화한다.
바로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맛은 차치하더라도, 개인이 비닐을 한입 크기로 찢어 쭉쭉 짜 먹을 수 있어 매우 효율적이다. 숟가락이나 젓가락도 필요 없다. 쓰레기 처리 역시 간편하다. 전방을 주시한 채로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군대에 어울리는 음식도 드물다.
맛도 나쁘지 않다. 매번 식사 때마다 거의 같은 맛이 반복되지만, 그럭저럭 참아줄 만하다. 오히려 입가에 남는 묘한 알싸함은 꽤 인상적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러나 요즘 군대 PX에서는 더 이상 맛다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는 PX에서만 구할 수 있었던 물건이었지만, 이제는 포털 사이트에 이름만 검색해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도록 먹었던 그 맛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 다시 사서 먹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전역한 청춘들에게 군대 경험이란 대개 그런 감정이 아닐까.
최근 야외 훈련에 나가 병사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비닐밥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2021년 페이스북 플랫폼 <육대전>에서 논란이 되었던 ‘군 부실급식 사태’ 이후, 군의 식단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제 병사들은 더 이상 맛다시 비빔밥을 먹지 않는다. 오히려 훈련 중 제공되는 고칼로리 음식을 피하고, 닭가슴살이나 삶은 달걀 같은 개인 식단을 챙긴다. 한때는 위생적으로 다소 불량해 보였음에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비닐밥’ 역시 이제는 옛 군대 문화가 되었다. 병사들은 한 팩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저당 간편식을 선택한다. 이는 곧, 맛다시가 더 이상 군대 식단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은 그때 그맛이 생각난다. 그 알싸한 맛. 야외의 흙먼지 속에서 비닐을 부스럭거리며 말그대로 '살기 위해' 먹었던 그맛. 우리 막둘 쉐프의 고유한 터치가 들어가 있던 그 손맛. 각기 다른 반찬의 특성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매운맛' 하나로 통일하던 그 맛다시의 위엄 말이다. 지금 내가 그리운 것은 맛다시의 그 알싸한 맛일까. 아니면 군대와 훈련이라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식구(食口)'라는 표현처럼 소대원들과 하나의 찬통에 밥을 넣고 함께 비벼먹었던 그 정겨움일까. 혹은 그리움일까. 군대는 많이 변했다. 다만 그 시절의 정겨움만큼은, 부디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