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장돌뱅이 같은 인생(人生) 그리고 군생(軍生)

by 고품격 글쟁이



"사주에 역마살이 있으시네요.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시겠어요."


스무살 무렵, 우연히 들른 사주풀이에서 한 역술가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의 나는 비교적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기에, 그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오히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러저리 떠돌아다니는 운명"이라는 뜻을 지닌 역마살이 조금은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발길 닿는 데로 자유롭게 초원을 헤메는 유목민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마살을 몸소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비로소 군인이라는 직업을 택하고 10년이 지난 뒤였다. 그 10년동안 나는 실로 무수한 곳을 옮겨다녔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직업군인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근무지 이동'으로 인해 말이다.


첫 부임지는 경기도 포천이었다. 다만, 주된 훈련지는 철원이었기에 포천과 철원을 쉼없이 오갔다. 1년 남짓한 소대장 임무를 마친 뒤에는 대전으로 이동해 2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포천과 철원의 혹독한 추위에 단련된 나에게 대전은 유난히 따뜻하고 좋은 도시로 기억된다. 이후에는 경기도 이천 장호원이라는 곳에서 군사영어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초급장교 주제에 대전 근무와 영어반이라는 혜택을 누군가(?) 질투했는지, 다음 발령지는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강원도 양구'였다. 심지어 이곳은 6.25전쟁 이전에는 북한땅이었던 곳이다. 90년대 군번을 가진 옛날 부사관 분들은 자기들은 양구 다리조차 없던 시절, 배타고(?) 들어왔다고. "실미도 가는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곤했다. 양구에 잠시 자리를 잡으며, 역시나 주변 지역인 춘천과 인제를 쉼없이 돌아다녔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강원도의 겨울은 정말 매서웠다. 포천과 철원도 추웠지만, 양구의 추위는 그 결을 달리했다.


양구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그만큼 초급간부는 물론, 진급을 목표로 하는 많은 중견간부들이 근무한다. 밤 8시가 되면 지역 대부분의 거리는 일제히 불이 꺼진다. 낮에도 군인들을 제외하면 사람의 발길은 드물지만, 밤이 되면 그 고요함은 더욱 짙어진다. 어떤이는 이 척박한 양구에서의 시간을 술이나 게임으로 달래기도 한다. 그만큼 외롭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나는 그 시간을 영어공부로 채웠었다. 군사영어반을 마치고 간 영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양구에서 2년을 마치고 서울의 한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다. 서울은 매우 바쁜 도시였다. 그러나 그 시기는 내게 쉼없이 달리던 말을 잠시 역참에 세우고, 스스로를 정비할 수 있었던 '쉼표'의 시간이었다.


어느덧 서울에서의 대학원 생활이 끝났다. 다음 부임지는 양구만큼이나 추운 강원도 화천이었다. 산천어 축제로 유명한 이곳 역시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었다. 메서운 추위와 높은 산세, 척박한 도로와 드문 인적까지. 화천은 놀랍게도 양구와 닮아 있었다. 더욱이 그 시기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였다. 화천은 무엇보다 '공기' 하나만은 유난히 좋은 청정한 곳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잠시 전염병을 피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화천은 천상 '서울여자'인 아내가 감당하기에도, 당시 18개월에 불과해 약간의 열만나도 병원을 자주 찾아야 했던 아이가 지내기에도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 사실상 고령인구가 많은 의료 불모지에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경북 영천을 거쳐, 다시 강원도 홍천으로 향했다.

전국을 오르내리며 살아가는 삶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 있었다.


가족과 아이에겐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갈수록, 쉼없이 달리던 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역참 같은 곳이 어디인지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아내의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보면, 세장이 나온다. 군인인 나를 만나 6년 동안 벌써 4번의 이사를 했다. 그런데 초본이 세장이 나오는 이유는 나를 만나기 이전에도 이사가 잦았다는 뜻이다. 초본을 자세히 보니 서울 안에서도 이곳 저곳 옮겨다녔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아내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장인어른의 사업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혼해 이제는 한곳에 정착하며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역마살을 제대로 지닌 군인을 만나 전국일주를 하게 되었다며, 아내는 참 감사하다고(?) 말한다.


2026년은 붉은 말의 해, 병오년이라고 한다. ‘붉은 말’이라는 말을 듣자 자연스레 삼국지의 적토마가 떠오른다. 적토마의 주인이었던 여포는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었고, 관우는 주인을 바꾸지 않은 채 적토마를 타고 유비를 찾아 나서며 다섯 관문을 지나 여섯 명의 장수를 베었다. 그만큼 적토마는 힘차고 역동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적토마는 '기수'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목적과 방향, 나아가 종착지까지 완전히 달라졌다.


나 또한 내 인생의 역마살 한 가운데에서 2026년을 붉은 말을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주인을 바꾸며 방향을 달리했던 적토마처럼, 또 하나의 선택 앞에 서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주마가편을 할 것인가. 아니면 쉬어갈 것인가.


그러한 의문을 남겨둔채, 아직도 나는 달리는 말위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앞만 보며 달리지는 않는다. 언젠가 역마살이라는 말을 한 곳의 역참에서 내려놓고 잠시 쉬어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