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아빠,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정체성.
"아빠 나도 크면 아빠처럼 군인이 될거야."
"응?? 왜???"
"군인이 되면 아빠를 매일 볼수 있잖아."
새해를 맞아 이제 6살이 된 아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스스로를 천상 대문자 'T' 로 여기던 나조차 순간 할말을 잃었다. 군인이 되겠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안돼!"라고 외치려던 찰나, 뒤따른 아들의 논리에 말문이 턱 막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때때로 어른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마음을 건드린다. 세상에 아직 때묻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순수해서 일까. 이유야 어떻든, 아빠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아직 초등생도 되지 못한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한 아이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2025년을 되돌아보면,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사관학교에서의 약 3년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4월에 육군대학에 입교하며 우리 가족은 '생이별'을 했다. 아내는 연고 하나 없는 낯선곳에서 남편을 타지에 떠나보낸채, 홀로 아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며 남편없는 삶을 견뎌냈다. 아이는 한동안 아빠를 찾았고, 10분 남짓한 짧은 영상통화에서도 울먹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육군대학에서의 성적은 영관급 장교의 향후 진로에 매우 중요했기에, 나는 그런 가족의 아픔을 온전히 들어주지 못했다. 평일은 새벽 3~4시까지 공부하다 자기에 바빴고, 가족을 만나러가는 금요일의 주말시간 마저도 부족한 수면을 채우기에 바빴다. 성적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나는 육군대학 6개월 기간동안 늘 날이 서있었고, 가족은 그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10월, 육대를 마치고 부대발표가 났다. 행선지는 강원도 홍천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우리는 곧장 함께할수 없었다. 그놈의 관사 대기기간 때문에 비로소 12월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온전히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 돌이켜보면, 2025년 한해동안 아들에게 아빠란,
자주 만날 수 없는 다소 머나먼 존재였던 셈이다.
나는 왜 "군인이 되겠다!"는 아들의 말에 반사적으로 "안돼!"를 외치려했을까. 요즘 매스컴에서 정책의제로 떠들어대는 초급간부와 중견간부의 처우개선 문제 때문이었을까. 혹은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부족하다고 말하기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넉넉하다고 할수 없는 봉급 때문이었을까. 잦은 이사, 가족과의 이별, 두집살림, 혹은 위수지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이라 하면, 결국 나랏일을 하는 직업 아닌가. '애국심' 그리고 국가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자부심' 그것만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닌가. 잦은 이사와 다소 열악한 처우개선 문제는 보수를 올려주면 해결되는 것 아닐까. 그래 요즘 말로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그놈의 '금융치료' 말이다.
아니. 결코 그렇지 않아.
나는 그것이 빙하 위에 드러난 표면의 얼음 같은, 그런 단순한 금전적 문제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보수의 많고 적음, 수당의 유무로 군인과 군인가족들이 겪고 있는 애환이 모두 설명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 군 조직은 중견간부가 이탈하고 초급간부가 더이상 모집이 안된다. 이것은 병사 월급 향상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직업군인들의 돈을 더 올려주면 해결될 것이다. 이 얼마나 복잡한 맥락을 편리하게 해석한 결론인가. 과연 군인들이 그토록 단순할까.
다시 되묻는다. 나는 왜 아들의 선언 앞에 선뜻 답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군인으로서 살아온 나와, 졸지에 군인을 만나 군인가족이 된 아내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온 아픔을 아들만큼은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들만큼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더 높은 꿈을 꾸길 바라는 아빠로서의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군인들이 지키는 그 자유민주주의를, 아빠가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지켜야하는 그 숭고한 가치를, 내 아들만큼은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로서의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마음 말이다. 지금도 군인과 군인가족들은, 이러한 아픔을 감내하며 힘겹게 군생활을 이어간다. 그런 아픔을 단순히 돈으로만 재단하려는 시도야말로, 군인이라는 존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아직은 내가 군인이자 아빠, 그리고 남편으로서 미성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군인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를 가진 사람이며, 동시에 아빠이자 남편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아들에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군인이라는 길을 자랑스럽게 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원해 본다.
* 이 글을 읽는 육해공군 군인여러분, 군인가족 여러분 존경합니다. 우리 존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