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삶: 선택. 희생. 그리고 인간성에 대해서
군인에게 희생이란 단어는 어쩌면 '군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하고 합리화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른 출근과 늦은 야근, 부족한 수면, 잦은 이사,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비상 대기까지. 군인에게 주어지는 책임감은 늘 무겁다. 군생활을 10년이 넘도록 해오며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아직도 낯설다. 군에 문외한인 가족은 이를 여전히 버거워하지만 나는 늘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만두면 우리 가족은? 우리 아이는? 군생활을 시작했고, 20년을 채워야 연금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부여되는데, 그전까지 군인으로서 희생해야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마치 하나의 기계가 움직이기 위해 수백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나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군에서의 진급, 그리고 더 나은 자리를 가기 위한 타인과의 경쟁. 교육기관에서 높은 성적을 받기 위해 남을 앞서야 하는 위계 시스템. 이 모든 것은 시스템의 틀안에 주어지는 것이며, 개인은 그 안에서 살아남야했다. 이겨낸 자에게는 진급과 함께 정년 연장이라는 혜택이 주어지며, 도태된 자에게는 낙선과 함께 불투명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피하기 위해 군인은 모든 것들을 감수하며 묵묵히 오늘을 살아간다. 그렇다. 군이라는 시스템에 살아가기 위해서 군인이자 동시에 한 인간인 '나'는 나를 죽이고 조직에 나를 맞추는 어쩔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이러한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겪는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내가 느낀 이 영화는 두 가지의 메시지가 있었다. 첫째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자연, 그중에서도 '나무'라는 생명의 근원을 훼손하며 생존을 이어가는 모순성을 다룬 것이고, 둘째는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을 상실해 가며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의 이중성을 다룬 것이다.
영화 속에는 나무, 제지전문가, 가장, 나무로 지은 집, 화분과 분재, 나무로 된 탁자, 종이, 시가 등 여러가지 상징적인 장치가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배경 속 사물이 아니라,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한 일종의 매개체다. 인류라는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 그 뒤에 숨어있는 추악한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해 말이다.
주인공 만수(이병헌)는 제지 전문가이며,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두 아이, 아내, 그리고 두 마리의 개까지 포함된 자신의 작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실직의 위기를 딛고 새 출발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다소 그로테스크하다. 그는 엉뚱하게도 다른 제지 전문가들을 '사라지게' 만들어야, 자신이 그 자리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물론 이는 영화 속에서 박찬욱 감독이 메시지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직관적 비유일 뿐이다. 조직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가 반드시 버려져야만 하는 모순성. 그 잔혹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만수는 유력한 후보인 다른 제지전문가 범모(이상민)를 찾아간다. 그러나 범모 역시 비루한 삶을 버텨내고 있었고,
만수는 그의 대사 속에 같은 종이를 다룬 업계 종사자로서의 묘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다.
"내는 이래 살수 밖에 없어. 나는 전문가야. 기술자야"
"집은 장인 꺼라 못 팔고 짐은 허리가 아파서 못날라"
어떤 하나의 직업에 20년 이상 매달려 다른 길이 없다는 범모의 울부짖음은 묘한 아련함을 남긴다. 그의 말 속에는 나는 전문가이자 기술자라는 특유의 아집과 강한 신념이 느껴졌다. 만수는 고개를 깊이 끄덕이며 공감을 표한다. 군인 또한 다르지 않다. '연금 20년'이란 울타리 안에 스스로를 가두다 보면, 군을 떠나 다른 곳을 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방황하게 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말하듯, 우리는 결국 '군'이라는 같은 시스템안에 존재하는 이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실직' 자체가 문제가 아닌, 실직을 대하는 그 '태도' 자체가 문제라는 만수 아내의 외침 또한 너무나 와닿아 새삼 처절하게 느껴졌다.
만수는 범모의 처지에 대한 공감하면서도, 자신을 범모에 투영하며 혼란을 느낀다. 아직은 완전히 상실하지 못한 인간성조차 놓아버리지 못한 채 방황하던 그는 결국 범모를 사라지게 만드는 우발적 상황을 겪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만수가 한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그는 그다음 제지전문가 고시조(차승원)를 찾아가며, 상황은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고시조 또한 제지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신발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는 힘든 삶 속에서도 중2병 딸에게 용돈을 건네주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만수는 잠시 고민하지만 범모때 달리 이번엔 본능에 몸을 맡기며 능숙하게 시조를 사라지게 만든다.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 만수에게 남은 것은 아들의 비행과 이를 감싸려는 아내의 노력 뿐이다. 혼란 속에서도 만수는 상황을 잘 수습하고, 시조를 자신의 정원에 묻은 뒤 그 위에 사과나무를 심으며 작은 희망을 꿈꾼다. 그로테스크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명언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가족들은 만수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만, 가정의 행복을 위해 이를 묵묵히 감수하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포기했던 아내의 댄스파티, 테니스 등과 아들의 넷플릭스, 고기반찬, 딸의 첼로 연주 등은 이런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만 할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수는 마지막으로 남은 제지전문가인 선출(박희순)을 찾아간다. 선출은 작중 가장 성공한 펄프맨이다.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삶, 위스키, 캠핑, 짚차, 그안에 녹아있는 직업으로서의 종이, sns속 그는 누구도 부러워 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선출을 마주한 만수는 그 역시 평범한 제지맨으로서의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장면에선 우리의 일상에도 맞닿아있는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생각났다. 소셜미디어속 휴대폰이라는 작은 '창'안에서 보이는 화려한 삶. 과연 그들의 일상도 정말 그러할까. 적어도 선출의 모습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만수는 그동안 앓고있던 충치를 스스로 발치하고, 아내와의 오랜 약속인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금기마저 깨트린다. 이러한 모습은 만수에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 인간성을 스스로 내려놓았음을 뜻한다. 만수는 그동안과는 다르게 철저하고 계획적으로 선출을 '사라지게' 만들고, 오랜 숙원을 모두 마친 그는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만수는 온갖 더러움을 견디며 결국 원하는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리는 이제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자리였다. 삭막한 공장속에서 그는 여전히 파이팅을 외치며, 제지의 오랜 방식대로 막대기로 종이를 두드린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 만수가 얻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떠나보냈던 반려견마저 가정으로 다시 돌아오며 영화는 겉으로는 헤피엔딩을 맞는듯 보인다. 그러나 그안에 숨겨진 메시지는 처절하고 비극적이다. 무자비하게 나무를 벌목하며 클로징되는 영화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선택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마주한다.
그 안에서 최선 또는 차선의 결정을 내리고, 그 안에서 겪는 시행착오들을 "어쩔수가 없었다"라는 말로 합리화하곤 한다. 과연 그때 나의 선택은 정말로 어쩔수가 없는 것이었을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그리고 내 선택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보았다면,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졌을까? 그로인해 나는 또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면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 누군가한테 "어쩔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정말로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을까? 그가 내린 최선의 선택에 나는 정말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일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동안 수많은 생각이 들어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앞으로도 나는 군생활을 이어갈테고, 군생활이 마무리 될 즈음에는 또다른 제2의 인생을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그때도 수많은 선택 앞에 서겠지만, 그 선택이 과연 최선일지 혹은 어쩔수가 없는 상황에서의 유일한 답지일지 지금은 알수없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것을 다짐한다. 왜냐하면, 이제 나의 선택은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삶의 방향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부끄러운 선택지는 주지말아야 하겠다.
* 이 영화는 2차 산업혁명 속 대량생산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린 찰리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올리게 한다. 꼭 한번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