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선 점령 훈련이 기다려졌던 이유.
군대에서 훈련을 떠올리면, 몇 가지 감정이 따라온다.
힘듦, 배고픔, 두려움, 그리고 몸에 밴 흙냄새 같은 것들.
사실 군인은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무력이 허용된 집단이다. 그리고 그 승리 달성하기 위해, 평시에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훈련은 군인에게 선택이 아니라, 숙명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도 군인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다. 훈련 속에서 군인은 수면욕과 식욕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참고 견뎌야 한다. 그것이 훈련의 일부라 해도, 몸이 요구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결국 잘 먹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다시 움직이고 버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소대장 시절, 여러 훈련 중에서도 유독 좋아하던 훈련이 있었다. 국지도발 상황을 가정한 ‘차단선 점령’ 훈련이었다. 적의 소규모 특작부대가 아군 지역으로 침투했을 상황을 가정하고, 소대는 각자 맡은 진지로 신속히 이동해 일정한 구역을 점령한다. 각 진지들이 연결되면 하나의 ‘차단선’이 형성되고, 그 선은 적의 이동을 물리적으로 막는 경계가 된다.
이 훈련을 좋아했던 이유는, 시작과 끝이 매우 분명하고 깔끔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걸리면 소대원들은 즉시 완전군장을 결속하고 차량에 탑승한다. 그리고 지정된 거점으로 이동한 뒤, 하차와 동시에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진지를 향해 이동한다. 완전군장을 멘 채 약 20분가량을 걸어 올라가면, 소대가 맡은 진지에 도착한다. 진지 점령 완료 보고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감시와 경계가 훈련의 중심이 된다. 움직임으로 가득했던 시간은 끝나고, 이제는 그 자리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특히 이 훈련은 봄과 가을에 많이 진행됐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었다. 완전군장을 메고 산길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면 마치 학창시절 소풍을 가던 날의 감각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진지를 점령하고 나면, 감시와 경계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소대원들은 각자의 위치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적당한 체력을 요하지만, 그만큼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훈련이었다.
과거 화랑도의 수련 방식 중 ‘유오산수(遊娛山水)’라는 말이 있다. 산과 물을 벗 삼아 몸을 단련하고, 그 속에서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수련 방식이다. 완전군장을 멘 채 진지에 앉아 산의 공기를 마시고 있노라면, 문득 그 말이 떠오르곤 했다. 화랑들이 그러했듯, 우리 또한 20대의 젊은 청춘들이 산의 맑은 공기 속에서 같은 공간을 지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은 단순한 훈련을 넘어, 같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견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간부인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까 싶어 소대원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비슷했다. 이 훈련이 가장 깔끔하고, 그래서 좋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진지까지 완전군장을 메고 이동하며 한 차례 체력을 쏟고 나면, 자연스럽게 식사 시간이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전술적 상황을 가정한 식사였기에, 보급은 주로 ‘주먹밥’ 형태로 이루어졌다. 산의 공기 속에서 소대원들과 나란히 앉아 주먹밥을 먹는 시간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이 되곤 했다. 각자의 완전군장 안에는 PX에서 구매해 온 간식들이 하나씩 들어 있었고, 그것을 꺼내어 나누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것들을 꺼내어 나눠 먹고 있노라면, 그 시간은 마치 소풍과도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반합에 끓여 먹는 라면이었다. 예전에는 직접 불을 피워 끓여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복무하던 시절에는 손바닥만 한 캠핑용 버너가 있었다. 불을 직접적으로 피우지 않아도 되니 연기가 날 걱정도 없었다. 주먹밥만으로는 배고픈 20대 청춘들의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했기에, 우리는 각자 준비해 온 라면을 반합에 넣고 물을 부은 뒤 조용히 끓여 먹곤 했다. 김이 서서히 올라오고, 라면 특유의 향이 진지 안에 퍼지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훈련장이 아닌 또 다른 공간이 되었다. 그 맛은 단순히 라면의 맛이 아니었다. 그 시간과 공기, 그리고 함께 있던 사람들의 기억까지 모두 담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다. 아마 그 경험은,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차단선 점령 훈련은 인기가 높은 훈련이었다. 적당한 체력 소모, 맑은 공기, 반합라면, 그리고 소대원들과의 대화까지. 훈련 속에서도 나름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훈련이 밤까지 이어지면 추위로 인해 쉽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낮에 마무리되었기에 이 훈련은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했다. 특히 반합에 끓여 먹던 라면은, 평소에 먹던 라면과는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마 그것은, 그 장소와 시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맛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차단선 점령 훈련이 다시 다가왔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완전군장을 메고 진지를 점령했고,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맞이했다. 누군가는 버너를 꺼내고, 누군가는 물을 준비하며, 반합라면을 끓일 준비를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통신병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건넸다. 라면을 챙겨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버너와 가스는 소대장인 내가 챙기고, 라면은 통신병이 준비하기로 되어 있었다. 통신병은 기존에 사두었던 라면이 있는 줄 알고,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진지 안에서 즐기는 라면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산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진지에서 약 10분 정도 내려가면 작은 구멍가게 하나가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간판은 빛이 바래고 문 앞에는 오래된 냉장고 하나가 놓여 있는 그런 가게였다. 이런 곳에서는 가격표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물건의 값은 정해져 있다기보다, 그날의 상황과 주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당시 600원 정도 하던 라면도, 이런 곳에서는 2000원을 받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약간의 현금을 챙겨 내려간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라면을 구매하는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다. 라면이 들어 있는 봉지를 손에 쥔 채, 다시 진지를 향해 산길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그때, 아래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오토바이 뒤에는 낡은 철가방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순간적으로 경계심이 스쳤다.
거수자일까. 아니면 단순한 민간인일까.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그 정체는 분명해졌다. 오래된 오토바이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철가방. 그리고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익숙한 냄새. 분명 짜장면과 짬뽕의 냄새였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가 거수자가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거수자라면 굳이 진지가 있는 방향으로, 그것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올라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아저씨의 뒤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조용히 거리를 두고 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아저씨는 익숙한 듯 산길을 따라 올라가더니, 잠시 후 인접 중대의 진지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철가방을 내려놓았다.
세상에. 짜장면 배달이었다.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소대장님이셔요? 저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여기 진지가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저씨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중국집 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훈련할 때마다 군인들이 진지 점령하는 거, 다 압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아저씨는 철가방을 가볍게 두드리며 덧붙였다.
“군인들 여기서 많이 시켜 먹어요. 다음에 한 번 찾아주세요.”
그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차단선 점령 훈련의 최고봉이었던 반합라면의 의미가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반합에 끓여 먹는 라면이 이 훈련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고 믿어 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옆 진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짜장면이 배달되고 있었다. 철가방이 열리고,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손에 들고 있던 라면 봉지가 갑자기 너무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 했던가.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이 훈련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그 위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이 시간을 즐기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군대의 규정과 전술적 상황에서 보자면, 반합라면은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범위에 있었다. 그러나 짜장면 배달은 그 결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완전히 비전술적인 행동이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크게 혼날 일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짜장면이 너무 부러웠다. 진지 안에서 먹는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반합라면과는 또 다른, 긴장감까지 곁들여진 전혀 다른 의미의 맛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도 언젠가 한 번쯤 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러나 끝내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아마도 간부로서 지켜야 할 선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저 그럴 만한 용기가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합라면을 뛰어넘는 진지 짜장면의 맛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그 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텐데, 그날 철가방을 들고 산을 오르던 짜장면 아저씨는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배달을 하고 계실까.
문득 그날의 산 공기와, 철가방에서 흘러나오던 짜장면 냄새가 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