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대에서는 왜 젓가락을 쓰지 않았을까

장치와 질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권력

by 고품격 글쟁이

* 본 글의 배경은 2010년도 이전의 군대문화임을 밝힙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이 가사를 보고 특정한 멜로디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200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결을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 가사는 단순한 유행가의 한 구절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식탁 위에서까지 요구해 온 규율에 대한 작은 저항처럼 들렸다.



그렇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젓가락을 바르게 쥐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한국 사람들의 젓가락질 능력은 아시아에서도 유독 섬세하다고 한다. 콩 한 알을 집어 올리는 손끝의 정밀함은, 단순한 식사 기술을 넘어 한국인의 몸에 각인된 하나의 감각처럼 느껴진다.



“젓가락질 잘해야 밥 잘 먹냐”는 가사는 단순히 젓가락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몸에 새겨졌던 ‘잘해야 한다’는 규율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리는 식탁에서조차 평가받으며 자랐다. 젓가락질은 예절이자 능력이었고,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누군가는 젓가락질만 보아도 그 사람의 가정교육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젓가락질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숙해진 하나의 질서였다.



군대에 입대하고 나서, 훈련소에서 가장 먼저 체감한 '낯섦'은 젓가락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그 도구가, 군대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했던 일상이, 그곳에서는 규율에 의해 지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식사를 할까.

군대는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더 단순하고, 더 효율적인 도구.





바로 포크숟가락이었다.








젓가락 하나 쓰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포크숟가락은 참 기묘한 도구였다. 반찬을 집기에는 어딘가 어설펐고, 국을 뜨면 국물이 사이로 흘러내렸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번갈아 들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는 효율적이었지만, 그 효율은 어딘가 불완전했다. 너무나 불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젓가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중견 간부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자연스럽게 함께 사용했다. 병사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 소위 ‘짬’이 되는 이들만이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젓가락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허용된 사람에게만 남겨진 도구였다. 식사 도구 하나에도 서열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질서는 특별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그것은 군대라는 공간에서 새롭게 형성된 하나의 '아비투스'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당시 군대에서는 왜 젓가락을 쓰지 않았을까. 지금은 모두가 공평하게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짐작은 해볼 수 있다.



첫째로, 젓가락은 군대라는 환경에서는 ‘비효율적인’ 도구일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전투를 준비하고 생사를 가정하는 공간에서 식사의 방식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군장 속에 젓가락을 따로 챙기고, 그것을 꺼내 반찬을 집는 일련의 동작은 그 환경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전장에서는 어떻게 먹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단지 전투를 하기 위해 배를 채웠는가 하는 사실이다. 그곳에서 식사는 취향이 아니라 단순한 기능에 가깝다.


둘째로, 과거의 군대를 떠올려보면 젓가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위험한’ 도구일 수 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젓가락이 흉기로 사용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본다. 물론 그것은 과장된 연출일 수 있다. 그러나 악습이 만연하던 시절의 군대를 생각해보면, 길고 뾰족한 금속 도구를 집단생활 공간에 상시 허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로, 젓가락의 금지는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군대는 단지 공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감각을 끊어내는 곳이다. 필자 역시 그랬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해야 할 식사 시간에, 그동안 몸에 익숙해온 젓가락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작지만 분명한 낯섦이었다. 그 순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아, 이곳은 군대구나.







젓가락을 완전히 쓸 수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컵라면을 먹을 때는 나무젓가락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회용’이었다. 라면을 다 먹고 나면 반으로 부러져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잠시 쓰였다가 사라지는 도구에 불과했다.



더욱이 ‘짬’이 되는 상병 이상은 식사 시간에 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개인의 선택에 따라 쓰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허용'의 기준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 기준은 다름 아닌 ‘짬’이었다. 아니면 간부처럼 계급이 높은 경우였다.



비단 젓가락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판의 넓은 면 왼쪽에는 밥을, 오른쪽에는 국을 담아야 한다. 순서를 바꾸는 순간 어색함이 감돈다. 오른쪽에 밥을, 왼쪽에 국을 담으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과거 한 고위 인사가 군부대를 방문해 밥과 국의 위치를 바꿔 담았고, 뒤따르던 군인들 역시 그대로 따라 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게 무엇이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그것이 질서이자 규칙이다.



통제된 식사 시간, 동일한 식판, 공통된 식단, 규정된 배식, 결식 금지, 밥과 국의 위치, 그리고 젓가락이 사라진 도구의 제한까지. 이러한 식사 환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복되는 규율과 통제의 장치는 민간인의 몸을 군인의 몸으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조금씩 길들여진 몸은 어느새 군대라는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처음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규율은 습관이 된다.



처음엔 낯설었던 포크숟가락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지고, 젓가락이 없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는 순간.

젓가락 하나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는 그 순간.




아마도 헤게모니란,

그렇게 조용히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군대도 많이 변했다.

오늘날 병영의 식당은 누구나 공평하게 젓가락을 쓴다.


옛날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고.

과연 지금의 병사들도 그렇게 느낄까.
젓가락 대신, 또 다른 장치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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