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군대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떠올리면 몇 가지 장면이 유난히 선명하다. 사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의 맛은 금세 사라졌지만, 군대에서 먹었던 몇 번의 아이스크림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남아 있다. 그날의 공기와 체온, 흘러내리던 땀의 감각까지 함께 떠오른다.
먼저 부사관학교 시절, 후보생 야외훈련 중 부식으로 먹었던 ‘와’가 떠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한여름이었다. 바닐라 샤베트가 겹겹이 담긴 그 아이스크림은 이미 가장자리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속에 남아 있던 노란 샤베트 한 덩이는 코끝을 멍하게 만들 만큼 차가웠다.
뜨거움 속에서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던 차가움이었다.
두 번째 역시 한여름이었다.
생도 시절, 40도의 무더위도 훈련의 일부였다. 복귀 길은 10km. 교장의 전술도로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다. 바람은 없었다. 전투복과 군장은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후문까지 1km를 남겨둔 곳에서, 발걸음이 내려앉았다.
그때였다.
생도연대장님이 빠삐코 하나를 건넸다.
그 차가움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 몸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빠삐코를 빨며 걸었다. 얼어 있던 초콜릿의 단맛이 천천히 혀끝에 번졌다.
그 침묵 속에서 모두가 같은 속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세 번째는 병사 생활 중 즐겨 먹던 ‘라보떼’다. 세 가지 맛이 층을 이루고 있었고, 바닥에 고여 있던 카라멜 시럽의 단맛은 유난히 진했다. 스푼이 마지막 층에 닿는 순간, 그 달콤함이 천천히 번지곤 했다. 지금은 더 화려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이 넘쳐나지만, 그 시절 영내마트에서 라보떼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PX 물가를 생각하면 선뜻 집기 어려운 가격이기도 했다. 그 아이스크림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 일은, 그날의 나 자신에게 허락하는 작은 보상과도 같았다.
라보떼를 사는 날은, 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가, 군대라는 획일 속에서 내가 아직 취향을 가진 개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증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군대에서 아이스크림은 유난히 각별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은 아이스크림 전용 보급선인 ‘콰르츠(Quartz) 호’를 운용하며 바다 한가운데서까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보급했다고 한다. 전쟁 한복판에서도 아이스크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총성과 포연 속에서도, 차가운 단맛은 여전히 필요했다.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병사들의 사기를 붙잡아 두는 작은 장치이자 무사 복귀를 약속하는 은밀한 상징이었는지도 모른다.
2026년, PX 냉동고에는 더 화려한 아이스크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라보떼는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예전처럼 단독의 주인공은 아니다. 하겐다즈와 베스킨라빈스, 끌레도르 같은 이름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군인들은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PX로 향한다. 사회보다 낮은 가격표 앞에서, 잠시 프리미엄이라는 이름을 손에 쥔다.
그 차가움을 입에 물고 있는 동안만큼은, 훈련도 계급도 잠시 느슨해진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군대에서 늘 즐겨 먹던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다가 잠시 멈칫했다. 군대에서는 1,500원이면 충분했던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러나 바깥의 가격표는 그 몇 배를 말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비싸진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공간이 잠시 그 가격을 낮춰주고 있었던 것임을.
군 생활도 어쩌면 이와 닮아 있는지 모른다.
20대의 청춘들은 군대라는 낯선 공간 속에서 통제된 질서에 자신을 맞춰 간다. 어느 순간, 제 값을 하던 개인은 잠시 낮아진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낼 자리가 줄어든 것뿐인데도.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값이 낮아진 것처럼 보일 뿐,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군대라는 공간이 잠시 가격표를 바꿔 달았을 뿐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잠시 가격표를 바꿀 수는 있어도, 그 가치까지 완전히 바꾸지는 못한다.
하겐다즈가 여전히 하겐다즈이듯,
그 안에 있던 우리 또한 그대로다.